[안병억의 마켓 나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유럽연합 확대

안병억 2023. 10. 2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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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유럽연합(EU)의 확대는 평화·안보·안정·번영을 위한 지전략적(地戰略的, geo-strategic) 투자다.” 지난 6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유럽이사회 비공식 회의에서 채택된 ‘그라나다 선언’에 나오는 문구다. 이번 회의에서 2030년까지 EU 확대를 매듭짓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구체적 이정표를 선언에 담지 못했다. 2013년 크로아티아의 가입 이후, EU는 경제위기와 팬데믹 같은 잇따른 위기에 대응하느라 회원국을 늘릴 여유가 없었다.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낳은 지정학적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수반들은 ‘평화 프로젝트’인 EU를 우크라이나·몰도바·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으로 확대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마켓 나우

전후 복구 비용은 현재 우크라이나 GDP의 2배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우크라이나 같은 어중간한 회색지대를 남겨두면 그런 비용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EU는 회원국의 안보를 간접적으로만 보장해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EU 회원국이었다면 러시아는 쉽사리 침략을 감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EU의 확대는 길고도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EU 가입이 요구하는 수준의 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를 회원 후보국들이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다. 전쟁 중에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병무청장 등을 교체하며 부패 척결에 나섰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2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16위. 유럽에서 러시아(137위) 다음으로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EU 자신도 정책결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외교안보정책은 회원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친러 성향이 강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가입하면 헝가리처럼 러시아 제재를 끝까지 반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교안보정책에는 다수결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U의 예산개혁은 더 어렵다. 현재 예산의 3분의 2가 회원국 농민과 낙후 지역 지원에 쓰인다. 폴란드는 농민 비중이 8.4%로 EU 평균의 2배에 달하고 낙후된 지역이 많아 EU 납부액보다 2.5배나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농업 종사자 비중은 14%로 폴란드보다 1.7배 높고 낙후 지역도 훨씬 많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폴란드는 EU 예산 순혜택국에서 순납부국으로 바뀐다. 예산정책 변경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폴란드가 거부할 유인이 매우 크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EU 가입을 신청했고, 3개월 만에 후보국 지위를 얻었다. 역사상 최단기간 안에 후보국이 됐지만, EU 가입이라는 드높은 언덕길을 이제 오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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