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 의료 생태계 살려 수도권 ‘의료 블랙홀’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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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 상경 치료’ 2조, 지방은 의사 구하기도 힘들어
지방 국립대 병원 육성 발표…지역 균형 의료 계기 되길
어제 정부가 지방 국립대병원을 육성해 필수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의료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지역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며 “국립대병원을 필수의료 분야의 중추로 육성하고 재정 투자와 규제 혁신을 통해 치료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국립대병원을 수도권 상급 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총인건비와 정원이 규제된다. 이를 풀면 정부의 투자가 늘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국립대병원을 주축으로 지역 병원과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소관 부처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이다.
지방 국립대병원 육성은 옳은 방향이다. 지역 의료 공백 탓에 수많은 환자가 수도권 종합병원으로 상경해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최근엔 고시원이나 원룸을 얻어 생활하는 ‘환자촌’ 현상마저 벌어진다. 지난해 ‘빅5 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의 비수도권 환자는 71만여 명이나 됐다. 이들이 쓴 치료비만 2조1800억여원이다.
지역 병원에선 전문의 등 인력이 부족해 수도권 상급 병원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경남의 한 도립병원은 2019년 운동부하 검사기와 부정맥 진단기 등 2억원 상당의 장비를 들여놨지만 전문의가 없어 제대로 써보질 못했다. 지난 4월 경남 산청보건의료원처럼 3억~4억원의 연봉을 내걸고도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는 지역의료원이 부지기수다.
지역 의사 수급 난항의 이면엔 서울의 ‘의료 블랙홀’ 문제가 있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47명에 달하지만 경북(1.38명)과 충남(1.54명) 등 11개 시·도는 2명도 채 안 된다. 소득과 물가 수준 등을 감안하면 지방이 생활에 더 유리하지만 서울 집중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대(경기도 시흥), 연세대(인천시 송도), 고려대(경기도 과천) 등 9개 대학이 수도권에만 11개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총 6600개 병상이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병상 수가 평균 200~300개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규모다. 병원이 모두 들어서면 의사 3000명, 간호사 8000명 안팎이 필요할 것으로 의료계는 추산한다. 이때가 되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의사 수급은 훨씬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토의 고른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듯 지역 균형 의료정책도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쏠린 종합병원 설립을 방치한다면 ‘환자촌’ 현상과 같이 시장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수도권 ‘의료 블랙홀’을 막고, 인력과 인프라를 지방에 분산할 수 있는 지역 균형 의료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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