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만원에 6박8끼, 강진의 흥에 취해볼까

백종현 2023. 10.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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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관광 일번지 강진 ① 히트상품 된 생활관광


강진 주민들로 출연진이 이뤄진 마당극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76세 어르신부터 여고생, 프랑스·일본에서 온 이주민 등 구성이 다채롭다. 2019년부터 주말마다 강진읍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는데 끼와 재주가 프로 배우 못지않다.
1993년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한국의 여행 문화를 바꾼 책으로 평가받는다. 『답사기』 1권 ‘남도답사의 일번지’에서 맨 처음 소개한 고장이 전남 강진이다. 유홍준 교수의 말마따나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던 조용한 시골’이었던 강진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 전국 명소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다산초당·무위사·백련사 등 강진의 찬란한 유산이 증발한 건 아니지만, 여행 방식은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유적지 답사보다 일주일 살아보기, 액티비티 체험, 맛집 탐방 같은 여행법이 더 주목받는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달라진 여행법,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에어비앤비 공유 숙박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남의 집에서 잠드는 여행법이 더는 낯설지 않다. 더 색다른 경험, 생생한 현지 문화를 체험하려는 여행자가 늘면서, 강진이 다시 뜨고 있다. 오늘의 여행자들은 강진에서 답사만 하고 떠나지 않는다. 일주일간 현지 주민과 한집살이를 하고, 함께 숟가락을 들고, 어우러져 흥에 취한다.

농가 40곳 매력 다양, 고르는 재미

농가에서 현지인과 먹고 자고 놀며, 지역을 체험하는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읍내 ‘힐링하우스’의 고구마 캐기 체험 모습.

강진은 생활관광의 성지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란 히트 상품 덕분이다. 말 그대로 시골집에서 6박7일간 먹고 자고 노는 프로그램인데, 일명 ‘푸소’라 불리는 지역의 체험 농가 40곳에서 손님을 받는다. 살림집마다 분위기와 손맛이 다르므로 일주일 사는 재미도 각각이다. ‘힐링하우스’처럼 텃밭에서 고구마·가지 등을 직접 채취해 먹는 농가도 있고, ‘명선하우스’처럼 너른 잔디마당을 낀 이층집도 있다. 월출산(809m) 아래의 한옥 ‘화담재’는 장독 가득히 맛깔스러운 김치와 장을 품고 있다.

‘화담재’는 맛있는 시골밥상으로 유명한 농가다. 장독 가득 맛깔스러운 장과 김치를 품고 있다.

일주일 살기 체험비는 1인 24만원(2~4명 신청)으로, 8끼의 식사(조식 6회, 석식 2회)도 포함됐다. 하루 3만4000원꼴. 가성비가 보통이 아니다.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2020년 5월 시작해 코로나 여파에도 3700명 이상이 다녀갔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에 따르면 3년간 전체 농가가 벌어들인 수익이 12억원에 이른다. 지난 6개월간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낸 농가도 있다.

‘한실농박’의 저녁상. 홍어삼합과 게장, 병어찜 등이 깔렸다.

탐진강변의 ‘한실농박’에서 직접 체험한 하루는 이랬다. 팔자 좋은 시골 개들과 뛰놀다, 감을 따 먹고, 낮잠을 때리다, 주인 할머니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밥상에는 홍어삼합과 병어찜, 간장게장 등이 깔렸다. 집주인 정은숙(68)씨는 “손님이 아들딸처럼 반갑고, 덕분에 사는 게 더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참가자에게는 주요 관광지에서 쓸 수 있는 회원카드가 주어진다. 각종 박물관 무료 입장, 가우도 제트보트 할인 등 혜택이 다양하다. 농가에만 있을 게 아니라, 곳곳을 누비며 지역을 체험해보라는 의미다.

나만의 음반 만들기 체험.

‘나만의 음반 만들기’ 같은 이색 무료 체험도 있다. 강진읍시장 인근의 음악 스튜디오 ‘전남음악창작소’가 체험 장소다. ‘코인노래방’ 같은 노래 연습실 수준이 아니다. 프로 뮤지션이 사용하는 장비를 활용해 직접 악기도 연주하고, 녹음실에서 MR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전문 엔지니어가 음원을 완성해준다.

청자 컵 만들기.

고려청자박물관에서는 청자 컵 만들기가 공짜다. 흙으로 빚은 도기 위에 취향대로 글씨나 그림을 새겨 놓으면 체험관에서 대신 유약을 바르고 구워 90여 일 뒤 완성된 청자를 집으로 보내준다.

MZ 타깃의 공유 오피스도 갖춰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워케이션 체험도 최근 시작했다. 강진군이 지난 8월 읍내에 워케이션 공간 ‘오소 스테이’를 열면서다. 노트북·태블릿 등을 빌려 쓸 수 있는 공유 오피스와 숙박 시설을 갖췄다. 농가 체험과 워케이션을 병행하는 일주일 살기 상품도 나왔다. 절반은 푸소 농가에서, 나머지 절반은 오소 스테이에서 머무는 방식이다.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01년 강진으로 유배와 기거한 주막이 사의재(四宜齋)다. 읍내에 당시의 초가와 주변 풍경을 재현한 ‘사의재 저잣거리’가 조성돼 있는데, 요즘 강진에서 가장 신바람 나는 현장으로 통한다. 주말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마당극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덕분이다.

출연진 구성이 재미있다. 전문 배우 없이 지역민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이어서다. 76세 어르신부터 여고생까지 모두 22명이다. 프랑스·일본에서 이주한 외국인 배우도 있다. 2019년부터 벌써 5년째다. 읍내에서 오토바이 샵을 운영하는 홍보배(61, 저승사자 역)씨는 벌써 2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다들 무대에서의 능청과 익살이 전문 배우 못지않다. 일본에서 이주한 안도 아이리(49, 포졸·아낙 역)씨는 “주민들과 함께해 즐겁고, 관광객을 직접 맞이하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조만간 공연은 토·일요일 하루 두 차례씩 벌어진다. 공연 뒤에는 배우들이 저잣거리 곳곳에 흩어져 관람객을 맞는다.

임석 강진군문화관광재단 대표는 “일주일 살기나 정기 공연보다 사람과 정이 강진의 주력 여행상품”이라면서 “주민 주도형 생활관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강진=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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