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이폰, 이번엔 ‘한 방’ 맞나 했는데…
애플의 완벽주의는 유명하다. ‘궁극의 정교함’을 통한 ‘단순함’을 추구하는 만큼, 아주 작은 부품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부품 제조사 사이에서 “애플의 품질 기준은 유난히 높아 맞추기 힘들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애플의 제품을 쓰면서도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애플의 완벽주의에 금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새롭게 선보인 아이폰15에서 연이은 결함이 발견되면서다. 일각에서는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애플도 인정…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난 9월 22일 애플은 미국과 영국, 일본, 중국 등 1차 출시국에 아이폰15를 공식 발매했다.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아이폰15 시리즈 발열 논란이 불거졌다. 중국 IT 전문 유튜버 Geekerwan은 아이폰15 프로 모델로 300니트 밝기와 25도 실온에서 고사양 게임 ‘원신’을 플레이했을 때 제품 온도가 30분 만에 48.1도까지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조건에서 아이폰15 프로맥스 모델도 45도를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냉각 솔루션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후 해외 IT 관련 매체 사이에서도 아이폰 발열(overheating) 키워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아이폰 시리즈가 출시 초반 ‘품질 이슈’에 휘말린 건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단순 최적화 실패라는 평가부터 애플 실리콘(칩 설계) 경쟁력 약화, 위탁 생산을 맡은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의 3나노 공정 품질 문제 등이다. 아직 확실한 발열 이유로 확정된 건 없다. 다만 최적화 실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련 업계 평가다.
애플은 논란 초기 침묵을 지켰다. 외신의 비판이 이어지고 나서야 아이폰15 시리즈 발열 현상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발열 증상을 해결하겠다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iOS 17.0.3)를 진행했다. 애플은 업데이트 버전을 배포하며 “버그를 수정하고 보안을 업데이트했다. 또 아이폰이 예상보다 더 뜨겁게 실행되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미국 IT 매체 지디넷은 “열화상 카메라 ‘FLIR’로 업데이트 전후 아이폰15 시리즈 온도를 측정한 결과, 이번 업데이트로 발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품질 이슈가 이게 끝이 아니다. 일부 사용자는 최근 아이폰15 볼륨을 크게 높이면 소리가 왜곡된다고 주장한다. 또 딱딱거리고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지적한다. 아직은 아이폰15 스피커 자체 문제인지 소프트웨어 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애플은 스피커 문제에 대해 딱히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변색 논란도 있다. 애플은 ‘티타늄’ 소재를 아이폰15 시리즈에 첫 도입했는데, 일부 사용자는 “제품 측면을 만졌더니 음량 조절 버튼 주변 색이 변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애플은 이와 관련 “피부 유분으로 외부 밴드 색상이 일시적으로 바뀔 수 있다”며 “물을 약간 적신 보푸라기 없는 천으로 닦으면 복원된다”고 해명했다.
“과도한 우려”…논란 속 흥행 이어져
시장 관심은 아이폰15 시리즈 판매량에 집중된다. 애플은 매년 하반기에 주력 제품을 출시하고 그 성과가 한 해 실적을 좌우한다. 하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마주했다. ‘품질 논란’도 문제지만, 중국발 악재도 이겨내야 할 관문이다. 중국은 아이폰 1차 출시국 중 한 곳이다. 애플에 중요한 시장이라는 의미다. 실제 아이폰 판매량 통계를 보면, 미국과 유럽에 이어 중국이 세 번째 판매국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는 자국 공기업·공공기관 직원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중국 정부는 아이폰 대신 자국 기업 화웨이 신규 스마트폰을 쓰라고 주문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법률·규정·정책을 발표한 적 없다”면서도 “중국 정부는 사이버 정보 보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기업·공공기관 직원 수는 50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애플 입장에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국면에서 불거졌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법(CHIPS Act)을 발효하는 등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이자 중국도 ‘강공’으로 대응하는 형태다. 애플 입장에서는 미중 갈등 불똥이 갑작스레 아이폰15로 튄 셈이다.
다만 증권가는 과도한 우려라는 평가를 내린다. 현재 수준 이상 사용 금지 확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장 애플이 중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며 창출하는 일자리가 700만개를 넘어선다. 금지 조치를 확대하면 중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중국 정부가 ‘금지령’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폰15 관련 중국인 호응이 여전하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애플은 지난달부터 중국 내 아이폰15 시리즈 사전 예약을 진행했는데 곳곳에서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예약 1분 만에 모든 예약이 마감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내 여전한 애플 인기를 조명하며 “정부 규제와 화웨이의 도전 속에서도 중국 소비자들이 아이폰15를 사기 위해 몰려든 것은 애플에 대단히 고무적인 신호”라고 평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6일부터 사전 예약이 시작됐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아이폰15 사전 예약에 대한 관심은 전작보다 높았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어떤 기업보다도 충성심 높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당장 판매량이 급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르는 경우가 잦은데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언제까지 이를 상쇄할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사이익’ 누릴까
TSMC ‘3나노’ 경쟁력 의구심
아이폰15 시리즈가 연이은 악재를 마주하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반사이익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폰15 판매가 흥행하며 삼성 스마트폰 반사이익은 사실상 미미할 전망이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수혜를 입을 대목은 ‘파운드리’ 부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일각에선 아이폰15 프로·프로맥스 모델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A17 프로’ 제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A17 프로 위탁 생산을 맡은 곳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경쟁사 TSMC다. TSMC는 A17 프로 생산에 3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적용했다. 나노는 10억분의 1m 크기로, 나노 앞에 붙는 숫자가 작을수록 ‘첨단 기술’이다. 삼성전자도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FET) 방식의 3나노 공정 기술력을 강화해왔다. TSMC가 A17 프로에 3나노 공정을 적용, 가장 먼저 대량 양산에 성공하며 “대세가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근 A17 프로가 탑재된 아이폰15 시리즈에서 발열 문제가 불거지며 신뢰도에 문제가 생겼다. 경쟁사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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