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속도 내는 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CEO LOUNGE]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원전 여파로 오랜 기간 고난의 세월을 겪어왔지만 최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벗어난 후 대형 원전 수주가 날개를 단 덕분이다. 여세를 몰아 SMR(소형모듈원전), 수소터빈, 해상풍력 등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계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2분기 영업익 4947억원, 50% 늘어
두산에너빌리티 변화를 이끄는 인물은 정연인 사장(60)이다. 정 사장은 부산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두산에너빌리티의 전신인 한국중공업에서 엔지니어로 첫발을 뗐다. 다양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8년 상무로 승진했다. 이듬해는 두산인프라코어로 자리를 옮겨 운영혁신, 생산총괄 업무를 맡았다.
6년 만인 2015년 두산에너빌리티로 다시 복귀했다. 경영난을 겪어온 베트남 법인 구원 투수 역할을 맡기 위해서다. 당시 전 세계 발전 업황이 부진을 겪으면서 베트남 법인 순손실이 갈수록 불어났다. 그는 동남아시아 대형 항만 크레인을 잇따라 수주하는 등 성과 회복에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실적이 살아났고 베트남 법인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2017년 말 두산에너빌리티 보일러BU장에 올랐다. 이후 관리부문장(부사장), COO(최고운영책임자, 사장) 등을 맡으며 실질적인 경영을 이끌어왔다.
정 사장 진두지휘 아래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사업인 원전 수주가 늘며 실적이 날개를 달았다. 지난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9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4조5394억원으로 18.1% 늘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상반기 수주는 5조1641억원으로 올해 목표치의 60%를 달성한 상태다. 상반기 말 기준 16조3725억원의 넉넉한 수주 잔고를 보유했다. 충남 보령신복합 주기기 공급(3000억원),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2조9000억원) 등 국내 사업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공사(1조1000억원) 등 해외 사업 물량도 대거 확보했다. 그럼에도 정 사장은 여전히 고민이 크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 흐름에 따라 원전 수주 물량이 언제든 급감할 수 있는 만큼 수주 가뭄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차세대 원전으로 손꼽히는 SMR, 가스터빈, 배터리 재활용 등 신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쓰는 중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업은 SMR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SMR 제조 기업 뉴스케일파워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 SMR 시장 선점에 나섰다. 뉴스케일파워와 손잡고 지난해 미국 아이다호의 무탄소발전프로젝트(CFPP) 내 발전소에 사용될 소재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이 발전소는 2029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된다. 올해 말에는 SMR에 들어가는 원자로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SMR은 하나의 용기에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모두 담은 일체형 원자로다. 발전 용량은 300㎿급으로 기존 1000~1500㎿급 대형 원전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지만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설비용이 기존 원전보다 저렴하고 소형이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해 분산형 원전을 구축할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의 4세대 고온가스로 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와 지분 투자, 핵심 기자재 공급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고온의 열을 활용해 수전해 효율을 높여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를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는 ‘글로벌 SMR 파운드리(생산 전문 기업)’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도 눈길
발전용 가스터빈 사업도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270㎿급 발전용 가스터빈을 개발했다. 발전기 심장 역할을 하는 가스터빈은 초내열 합금, 정밀 주조 등 고난도 기술과 정교한 제작이 필요한 ‘기계기술의 꽃’으로 불린다. 1500도 이상 초고온 환경에서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가스터빈에만 500여개 블레이드가 달려 있는데 가스터빈에 들어가는 부품만 4만개에 달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 어느 기업도 성공하지 못한 400㎿급 수소전소터빈을 2027년 상용화한다는 야심 찬 목표도 내세웠다. 가스터빈 개발을 필두로 수소터빈 개발에도 힘쓰는 중이다. 수소터빈은 연소 가스로 터빈을 가동하는 가스터빈에 수소 연소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수소복합발전소의 핵심 설비다. 유재선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380㎿급 발전용 가스터빈 수주에 성공했고 연말까지 SMR 등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 올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1조8038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으로 주목받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도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배터리 재활용 전문 자회사 두산리사이클솔루션을 설립했다. 2021년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실증을 완료한 상태다. 사용 후 배터리 내부 물질을 열처리한 뒤 증류수를 활용해 리튬을 분리, 결정화 공정을 거쳐 탄산리튬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기존 추출 방식보다 공정이 단순해 경제적이고, 화학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공법을 통해 리튬 순도와 회수율을 한층 높였다.
내년 하반기부터 연간 약 3000t 규모 원료 처리 시설을 구축해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할 예정이다. 폐배터리 시장 전망이 워낙 밝은 만큼 내부적으로 기대가 크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올해 7000억원 규모에서 2040년 87조원으로 120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해상풍력 사업도 눈길을 끈다. 2005년부터 풍력 사업을 시작한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해상풍력 최다 공급 실적을 보유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 풍력 사업을 해온 기업들이 2010년대 들어 줄줄이 사업을 접었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실상 유일하게 풍력터빈 제조 사업을 지속했다. 지금까지 풍력터빈 R&D(연구개발)에만 약 2000억원을 투입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연내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에 5.56㎿ 해상풍력발전기를 18기 설치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해상풍력 업체 지멘스가메사(SGRE)와 손을 잡으면서 업계 기대가 크다. SGRE는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에서 21GW를 공급해온 시장점유율 1위 회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신사업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회사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 3000억원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올 2분기 말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현금성 자산은 2조80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1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규모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지만 당장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SMR, 해상풍력, 가스터빈 등 신사업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단기간 내 넉넉한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운 구조다. 정연인 사장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낼지 재계 관심이 뜨겁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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