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취향 파악, 요즘 20대는 이렇게도 합니다

정누리 2023. 10. 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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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으로 보여지는 나... 온라인에서의 이색적인 상호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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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누리 기자]

 요즘엔 당근마켓, 인스타그램, 유튜브 알고리즘 등을 통해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한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1월 열린 한 유튜브 행사장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내가 어릴 적 즐겨하던 온라인 게임에는 '별칭' 시스템이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내 닉네임 앞에 '10살에 곰을 잡은', '고대 유물 감정가', '미식의 달인' 등등 타이틀을 붙여준다.

얻기 어려운 희귀한 칭호를 달았을 때 나는 왜인지 뿌듯한 마음이 들어서 사람들 보라고 광장 한복판에 이유없이 서 있기도 했다(그러면 놀랍게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남들과 차별되는 나만의 개성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도 이색도전을 즐긴다. '대형면허를 만점으로 딴 20대 여성'이라든가, '당근마켓에서 월 300만 원을 판 이용자'라든가. 나를 소개하는 칭호들이다.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타이틀이 있다.

우리는 소개팅을 할 때도 보이지 않는 타이틀을 찾으려고 애쓴다. 서핑을 좋아한다면 활동적이겠거니, 독서를 좋아한다면 사색적이겠거니 유추하는 것. "무슨 노래 들으세요?"가 최근 몇 년 동안 MZ세대의 유행어였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악 취향이 똑같으면 막연히 공통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기에 상호작용 속에서 단서와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을 즐거워한다.

"너도 그 사람 팔로우해?" 
 
 어플리케이션
ⓒ Unsplash
 
그런데 최근 청년들 사이에 새로운 단서가 생겨났다. 당근마켓, 인스타그램, 유튜브 알고리즘 등이 그 예다. 우리는 SNS 활동을 통해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한다.

"당근마켓 거래온도 99도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나가봤더니, 물건을 사면서 새 봉투에 빳빳한 돈을 쫙 뽑아서 오더라"는 전설은 이미 유명하다. 반대로 거래온도가 30도 이하인 사람을 보면, 아무리 내 앞에서 말을 부드럽게 하더라도 '대체 왜 온도가 평균 이하일까(보통 시작지점은 36.5도)'라며 의구심을 가질 테다.

인스타그램은 아예 팔로우 추천 기능을 통해 이러한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관심있는 계정을 팔로우함으로써 피드를 꾸미고, 그 목록을 공개할 수 있다. 상대방은 나와 같은 계정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친근감을 느낀다. 나와 친구들은 "너도 이 사람 팔로우해?"라는 말로 자주 대화를 시작한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배우 강동원이 최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출연해 자신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여줬다. 건강, 사회, 골프 분야의 영상으로 가득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40대 답네. 친근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말 무의식 그 자체인데 선뜻 공개하는 게 대단하다", "건전한 영상만 있어서 호감이다"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알고리즘 하나로도 사람들은 많은 것을 유추하고 판단한다. 알고리즘이야말로 '조작되지 않은 본연의 취향'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언젠가 기회가 되어 지인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나는 보통 여행, 연애, K-POP 등을 주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유튜브 추천 영상에도 이런 분야의 영상 투성이다. 반대로 이공계를 전공한 친구의 시청리스트는 주로 과학, 경제, 다큐 등의 콘텐츠였다. 이 분야의 영상이 이토록 많은 줄 몰랐다. 자신의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것은 각기 다른 대륙이 만나는 것과 같다.

어플 토스나 당근마켓은 일찌감치 이러한 상호작용을 주목해 '타이틀'을 부여한다. 토스에는 소비태그가 있다. 숙박 어플을 자주 이용한 사람에겐 '호캉스 러버' 칭호를, 책을 많이 구매한 고객에겐 '독서는 마음의 양식', 택시를 자주 탄 소비자에겐 '프로 택시 라이더' 등 태그를 부여한다.

마찬가지로 당근마켓에도 활동 배지라는 것이 있다. 판매글을 500개 이상 작성한 사람에겐 '판매의 달인' 배지를 부여한다. 이용자는 이로써 자신도 몰랐던 생활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매력 어필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더 중요한 건
 
 어플리케이션
ⓒ Unsplash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사생활이 온라인상 어디까지 노출되어 있는 걸까, 걱정도 든다. 휴대폰을 켜 보면 가끔 '혹시 날 도청하고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내 고민과 상황을 속속히 알고 있는 듯해 깜짝깜짝 놀라고는 하는 탓이다.

더불어, 상대에게 부여된 별칭 타이틀을 상대를 재단하는 수단이나 기준으로 쓰는 것은 곤란하다. 성격유형검사인 MBTI가 유행했을 때 자기 성격을 쉽게 표현할 수 있어 좋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지만, 16가지 유형에 함부로 자신을 욱여넣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듯 말이다.

우리의 온라인상 활동의 흔적은 서로의 대화를 풀어나가기 위한 소재이자 이야깃거리이지, 결정적 호감이나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역할까지는 아직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눈을 마주친 채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아닐까.

이런 점을 주의한다면 온라인 세상과의 상호작용은 상대와 서로 마음을 열기 전 나눌 수 있는 유쾌한 '노크'가 되어줄 것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의 칭호는 몇 개일까? 상대방에게 이 칭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가장 자신 있는 칭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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