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왜 폭력과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김남중 2023. 10. 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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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최소한의 중동 수업
장지향 지음
시공사, 300쪽, 1만9000원
폭격을 당한 이스라엘 가자지구 내 알리 아랍 병원의 환자와 부상자들이 지난 17일 가자지구의 다른 병원인 알 시파 병원을 찾아 복도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이 이날 알리 아랍 병원을 공습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측은 병원 폭격은 하마스의 오폭이라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져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날마다 중계되는 이 새로운 전쟁은 중동과 이슬람이라는 낯선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침 적절한 책이 나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이 쓴 ‘최소한의 중동 수업’은 21세기 현대 중동을 읽어내는 데 필수적이면서도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중동에는 20개국이 있고 이들 나라에 아랍, 튀르크, 페르시아, 유대, 쿠르드 민족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를 믿으며 산다.” 중동은 국가도, 민족도, 종교도 복잡하다. 저자는 먼저 중동 국가들을 제한적 민주주의국가(이스라엘, 튀니지),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이집트, 이라크, 튀르키예, 이란 등), 개방적 왕정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등), 취약한 독재국가(시리아, 리비아, 예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각 국가의 특징과 역량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한다.

이어 중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다룬다.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양분되는데, 끊이지 않는 폭력과 분쟁의 원인이 ‘이슬람 문화’ 자체라고 주장하는 쪽과 ‘식민 지배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번 전쟁에 대해서도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느냐는 뜨거운 논쟁거리다. 저자는 두 시각을 모두 비판하면서 국가 안의 권력 지형을 살펴보는 비교정치학에 의한 중동 읽기를 제시한다.

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개혁 개방, 아랍과 이스라엘의 데탕트를 선언한 아브라함 협정, 아랍의 봄 혁명,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이슬람주의와 테러리즘 등 최근의 굵직한 중동 이슈들을 다루며 현대 중동을 그려나간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 왕정 국가들의 파격적인 개혁 개방 정책이다. 이들 나라는 탈석유, 탈이슬람 개혁을 시행하는 한편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에 합의함으로써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을 선언했다. 저자는 걸프 산유국의 개혁에 대해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MZ세대의 요구와 아랍의 봄 혁명으로 위험을 느낀 왕실의 치밀한 생존 전략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한다.

2020년 8월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 없이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은 없다는 아랍 세계의 오랜 금기를 깨뜨린 사건이었다. 저자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전략적 연대는 무엇보다 미국의 ‘중동 떠나기’를 대비한 자구책”이라며 “아브라함 협정과 놀라운 아랍-이스라엘 데탕트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바로 요동치는 중동 지정학이 있다”고 분석한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은 현대 중동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혁명에도 불구하고 중동에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다. 이집트는 한 해 만에 군부 권위주의로 돌아갔고 리비아, 예멘, 시리아는 독재보다 더 나쁜 내전에 휩싸였다. 유일하게 튀니지만 민주화에 성공했다. 저자는 중동에서 민주주의 이행은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면서 중동의 민주화 이행을 위해서는 군부의 중립, 현실 정치 경험이 풍부한 시민사회라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동을 특징짓는 이슬람주의와 테러리즘을 다룬 장에서는 이것이 종교나 민족 문제일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 문제라는 걸 알려준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 정부에 대한 반대로 시작됐다. 중동의 대중은 독재 정권이나 정실 자본가, 서구의 후원을 받는 시민사회 대신 이슬람식 개혁을 주장하는 조직을 대안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중동 이슬람 세계의 시민은 더 이상 이슬람주의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50여년 전에는 변혁의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으나 오늘날은 극단주의 세력에게 사상적 뿌리를 제공할 뿐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책은 지금 벌어지는 전쟁의 배경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 이들의 무력 충돌은 거의 매년 익숙한 스토리를 따라 전개돼 왔다.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군경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를 빌미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한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향해 대대적인 공습을 벌인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중재에 나서고 양측은 휴전에 합의한다.

이번 전쟁이 같은 시나리오를 따를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충돌의 배경에 두 나라의 정치 실패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팔레스타인에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 영토를 내준 후 이스라엘 사회는 빠르게 보수화되었고, 결국 극우 민족주의자 네타냐후의 총리 복귀를 불렀다. 팔레스타인 역시 서안 지역을 통치하는 정치조직인 파타흐와 가자 지구를 지배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조직인 하마스로 분열해 갈등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서 ‘평화와 영토의 맞교환’을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짓고 있다. 하마스는 자신의 선제공격이 불러올 이스라엘의 가공할 반격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로켓을 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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