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불안·광기… 글로 쓸 수 없는 것을 쓴다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민음사, 540쪽, 1만7000원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4)의 장편소설 ‘멜랑콜리아’가 번역돼 나왔다. 포세가 1995년 발표한 ‘멜랑콜리아 Ⅰ’과 이듬해 나온 후속작 ‘멜랑콜리아 Ⅱ’를 합쳐 한 권으로 출간했다.
포세는 1983년 첫 소설을 발표했고, 1990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했으며, 1994년 첫 희곡을 내며 극작가로 전환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포세가 3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기 전에, 전업 소설가 시절의 막바지에 완성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포세 문학의 주제, 서술 기법, 예술적 목표 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소설로 꼽힌다.
‘멜랑콜리아’는 아주 낯선 소설이다. 읽기 자체가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같은 문장, 같은 얘기가 수도 없이 반복되는 게 우선 당혹스러운데, 그 반복에 어느 정도 적응될 때쯤이면 반복되는 문장이 시처럼, 또는 연극 대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이야기는 아주 조금씩 더해진다. 나아간다 싶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뚜렷한 서사도 없다. ‘멜랑콜리아 Ⅰ’은 한 젊고 가난한 화가가 예술아카데미에 가지 않고 하숙집에서도 쫓겨난 후 화가들이 모이는 술집에 가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다.
다만 주인공인 ‘라스 헤르테르비그’ 캐릭터는 잊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다. 헤르테르비그는 19세기 말에 실존한 노르웨이 풍경화가다. ‘멜랑콜리아 Ⅰ’에서는 ‘뒤셀도르프, 1853년 늦가을 오후’ ‘가우스타 정신병원, 1856년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1991년 늦가을 저녁, 오사네’, 이렇게 각기 다른 시공간을 가진 세 개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앞의 두 시공간은 헤르테르비그가 살아갔던 곳이다. 우울과 불안, 망상을 가진 그는 동료 학생들의 괴롭힘에 미술 공부를 포기하고 1854년 고향에 돌아온다. 그리고 1856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이후 사망하기까지 가난하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그의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풍경화는 사후에 인정을 받아 오늘날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 번째 시공간은 작가 포세의 세계로 ‘비드메’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이상한 내용과 스타일의 소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얘기한다.
소설을 읽고 나면 스웨덴 한림원이 포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이라고 평가한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된다. ‘멜랑콜리아 Ⅰ’는 미쳐가는 사람, 미쳐버린 사람의 이야기다.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의 비논리와 망상, 강박, 집착, 불안 등을 글로 표현했다. 미친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포세는 그 목소리를 전한다. 그 목소리는 비로소 들려지게 된다. 이를 위해 포세는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혁신적인 산문”을 창조했다.
‘멜랑콜리아 Ⅱ’는 헤르테르비그가 사망한 해인 1902년 노르웨이 서남단에 위치한 스타방에르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를 앓는 허구적 인물인 ‘올리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올리네는 끝없이 남동생 헤르테르비그와의 추억을 소환하는 데 이를 통해 헤르테르비그라는 인물이 좀더 또렷해진다. 포세는 여기서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의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고통, 수치 등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 노인들 역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속하며, 포세는 소설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을 번역한 손화수는 “저자는 문학을 통해 정상성이나 차분함에 다가서기보다, 변화무쌍하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인간 내면의 비밀, 어둠, 광기를 표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작가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설 속 인물 비드메는 오슬로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서 헤르테르비그의 그림 한 점에 사로잡혀 그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보르그외위섬’이라는 제목의 그 그림 앞에서 비드메는 “신성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한순간의 깨달음”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글로 쓸 수 없었던 그 무엇, 신성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글로 쓰기로 한다. “그 무엇”에 대한 글쓰기가 ‘멜랑콜리아’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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