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져라, 작품을 태워서라도… 예술과 자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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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구매'가 '소각'으로 잘못 번역된 것은 아닌지, 인쇄상의 오류가 아닌지 의심했는데 그건 정말 작품을 불태우는 행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은유나 상징의 표현도 아니었다. 정말 불태운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로버트 재단의 창작 프로그램에 초청받은 작가 안이지는 '전시회 마지막 날에 작품 하나를 소각한다'는 재단의 규칙에 당황한다.
게다가 소각할 작품은 작가 본인이 아닌 재단에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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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지음, 은행나무, 340쪽, 1만6800원
“혹시 ‘구매’가 ‘소각’으로 잘못 번역된 것은 아닌지, 인쇄상의 오류가 아닌지 의심했는데 그건 정말 작품을 불태우는 행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은유나 상징의 표현도 아니었다. 정말 불태운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로버트 재단의 창작 프로그램에 초청받은 작가 안이지는 ‘전시회 마지막 날에 작품 하나를 소각한다’는 재단의 규칙에 당황한다. 게다가 소각할 작품은 작가 본인이 아닌 재단에서 선택한다. 심지어 재단의 주인 로버트는 사람이 아닌 개다. 안이지는 재단의 실체를 의심한다.
그러나 로버트 재단의 제안은 예술을 포기할 뻔한 시점에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 있다. 팬데믹 기간 생존이 어려워진 작가들은 예술하는 삶을 멈춰야 했다. 안이지는 음식 배달 라이더 일을 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개가 작품을 보는 눈을 가진 걸까.
작가 윤고은은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현실 속 부조리를 과감하게 얘기해 왔다. 이번 장편소설 ‘불타는 작품’에서 그는 지금 시대 예술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불타는 순간 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작품을 불태우는 파괴적인 행위를 통해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위상은 올라간다.
‘개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라는 작품의 골조만으로 영미권 출판사들의 관심을 받은 이 소설은 2025년 상반기 ‘아트 온 파이어’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출간된다. 영국 출판사 스크라이브의 편집자 몰리 슬라이트는 “예술과 자본주의의 역학관계 속 부조리를 풍자하고 탐구한 이 작품이 흥미롭고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2008년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 등을 썼다. 이효석 문학상,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 등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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