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6연속 동결…이창용 "금방 1%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9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했다. 지난 2ㆍ4ㆍ5ㆍ7ㆍ8월에 이은 6연속 동결이다. 금통위원 6명 만장일치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전쟁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데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그널도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금리를 한 번 더 올려 시장에 충격을 줬다간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데다 서민들의 이자·빚 부담이 커지는 걸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한은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19일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높아진 국제유가와 환율의 파급영향, 이스라엘ㆍ하마스 사태 등으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높아짐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수준(2%)으로 수렴하는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지난 8월 경제전망에서 내년 말 2%대 초반 수렴을 내다봤는데 그 속도와 시기가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향후 3개월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다른 1명은 오히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021년 8월 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 향후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가장 큰 변수는 중동 전쟁으로의 확전 여부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에 이란이 개입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오르고,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하락(블룸버그 이코노믹스)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은 금리 인상 요인, 경제성장률 하락은 금리 인하 요인으로 상충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전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상황이 악화돼 물가는 올라가고 성장이 나빠졌을 때 교과서적인 원칙은 물가에 방점을 두는 거지만, 실제 어떻게 정책을 할지는 구체적인 숫자가 나와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달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한은도 금리를 묶고 ‘관망’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ㆍ미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인 2%포인트를 3개월 가까이 유지하고 있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자금 유출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 총재는 “미국이 작년에는 빠르게 금리를 올렸지만 이제는 포즈(동결)하거나 한 번 정도 더 올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다는 점에서 안정되는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데 대해선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단계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 원인은 결국 부동산 가격에 있다고 짚으면서 “통화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오르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영끌ㆍ빚투’ 심리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다. “자기 돈이 아니라 레버리지(대출)로 투자하는 분들이 많은데, 금리가 다시 1%대로 떨어져서 비용 부담이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고를 드린다. 그렇게 금방 떨어질 것 같지 않다”면서 상당기간 긴축 기조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시장에선 한ㆍ미 기준금리가 사실상 최종금리에 도달했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금리인하 시점은 내년 1분기에서 내년 3분기로 대폭 늦춰 잡는 추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대로 갈 것 같다”며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 물가 하락 속도가 늦어지면서 환율이 지금보다 더 뛸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희·오효정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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