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생존자들, '영웅의 제복' 입고 한 자리

장희준 2023. 10. 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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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위한 연회식, 생존자는 이제 11명뿐
강희열 "바라만 보던 제복…동지들 만나 기뻐"
유영복 "잊지 않고 챙겨주니 감사하고 행복해"
깜짝 감동편지 "어르신들 덕분에 자유 누려요"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북한에 억류된 채 수십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국군포로 생존자가 정부에서 마련한 '영웅의 제복'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국군포로가족회와 국제 구호단체 '따뜻한 하루'는 19일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국군포로 생존자를 위한 연회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리를 거둔 유영복 어르신과 김성태 어르신, 또 강희열 어르신 등 7명이 참석했다. 정전협정 이후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한 귀환 국군포로는 80명, 이 가운데 생존자는 11명뿐이다. 이날 자리에는 지방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4명이 빠졌지만, 7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 해도 처음 있는 일이다.

국군포로가족회와 국제 구호단체 '따뜻한 하루'가 19일 개최한 연회식에서 국군포로 생존자 7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장희준 기자 junh@

이날 연회식이 마련된 배경에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북한에서 49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린 한병수 어르신이 지난 8일 향년 92세로 작고했을 당시,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정부에서 마련해준 제복을 살아생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토로한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6·25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의 영웅들' 사업을 통해 올해 4월부터 참전 유공자 또는 유족을 대상으로 제복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군포로를 위한 행사를 마련하거나,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를 따로 모시는 일도 없다 보니 90세를 웃도는 대부분의 국군포로 생존자는 제복을 받고도 입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온 것이다.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는 "우리 아버지들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펑펑 운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다같이 얼굴 보고 맛있는 음식 드시면서, 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고자 모셨다"고 설명했다. 연회식은 올 초부터 국군포로 생존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해온 따뜻한 하루 측이 함께 추진했다.

19일 국군포로 생존자가 모인 연회식에서 유영복 어르신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장희준 기자 junh@

강희열 어르신은 "우리 귀환용사들을 초청해주신 데 대해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또 행복하다"며 "보훈부에서 제복을 받은 뒤로 옷장에 걸어두고 매일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우리 동지들과 함께 제복을 입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참 행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민국 육군 상사, 강희열! 감사합니다, 충성!"이라고 참석자를 향해 경례하기도 했다.

유영복 어르신은 "북한에서 47년이나 잡혀 있다 보니, 한국 사회를 전혀 몰라 보상금을 다 잃고 수급자로 지내기도 했다"며 "따뜻한 하루와 인권단체들이 우리를 후원해주고 배려해주신 데 대한 감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 어르신은 북한 당국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다만 보상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군포로가족회는 김정은을 상대로 한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생존자를 모시고 추가 소송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연회식에 모여 밝은 표정으로 오랜 시간 미뤄온 회포를 풀던 어르신들 역시 "같이 해보자"며 소송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19일 국군포로 생존자를 위한 연회식을 후원한 개인 후원자 부부와 초등학생 자녀가 국군포로 어르신께 보낸 편지. 사진=장희준 기자 junh@

연회식이 끝날 즈음 '깜짝 손님'도 등장했다. 신분을 밝히기를 꺼린 개인 후원자로, 국군포로 생존자가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따뜻한 하루 측을 통해 이날 연회식 비용을 후원한 것이다. 그는 직접 마련해온 건강식품과 영양제 등을 한 분씩 챙겨드리면서 "어르신들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살 수 있다"며 "만나 뵙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 이 후원자는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와 함께 작성한 손편지를 하나씩 어르신들께 나눠 드리기도 했다. 후원자 가족은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저희가 이 땅에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희생과 헌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오래 오래 사세요"라고 적었다.

한편, 1953년 휴전회담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집계한 국군 실종자는 8만2000여명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북측이 최종 인도한 국군포로는 8343명에 그쳤다. 당초 포로 수만 명을 잡았다고 선전하던 북한이 전후 복구 등에 노동력을 동원할 목적으로 그 수를 터무니없이 줄인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2007년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1770명으로 추산됐다. 생존자 560명에 사망 910명, 행방불명 300명이다. 이 시점 이후로는 정부가 파악한 생존자 현황이 없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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