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매트리스' 소송 5년 만에 1심…법원, 모든 청구 기각했다

김정연 2023. 10. 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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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충남 당진시 당진 동부항만 야적장에서 보관돼 있던 라돈검출 매트리스가 운반차량에 옮겨지고 있다. 뉴스1

방사성 물질인 라돈을 방출하는 매트리스를 사용해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낸 피해자들이 1심에서 패소했다. 중앙지법 민사30부(부장판사 정찬우)는, 19일 오전 10시 ‘라돈 매트리스’ 피해자 478명이 대진침대‧DB손보‧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청구를 기각했다. 2018년 7월 소송이 제기된 지 5년이 넘어서야 난 1심 결론이다.


“당시엔 규정 없었고, 폐암 인과관계도 인정 안돼”


2018년 5월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29일 대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방문, 가정에서 수거해 온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을 측정하는 실험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2018년 대진침대가 판매한 매트리스에서 다량의 라돈이 검출되며 시작됐다. 라돈은 방사성 기체 원소로, 호흡기로 흡입할 경우 폐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WHO 1군 발암물질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대진침대가 제조·판매한 매트리스에서 라돈 피폭량이 연 기준치 이상 검출돼, 전국에서 29종의 매트리스를 수거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지금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수거한 라돈 매트리스는 총 7만 1000개가 넘는다.

라돈 매트리스를 사용했던 원고들은 각 개인에게 1000만원 배상을 요구했다. 수년간 연간 피폭방사선량 한도를 초과하는 방사선을 배출하는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침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대진침대가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방사성물질을 원료로 사용한 가공제품을 규제하는 법령이 없었고, 2019년 1월 법이 일부개정되기 전까지는 방사성물질을 원료로 사용한 가공제품 중 제조‧수출입 금지 제품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당시에는 인체 피폭량 측정 구체적인 기준도 정해진 게 없었다”며 “당시의 기술수준에 비춰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거나,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의의무 위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장 주요한 쟁점인 ‘폐암 발생과의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았다. 라돈 매트리스로 인한 연 최대 피폭량은 13mSv의 저선량으로, 수 년 정도 노출됐다고 해서 폐암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폐암은 유전·음주·흡연·식습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민법상 불법행위, 제조물책임법 위반, 주거환경권 침해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돈을 내고 매트리스를 구매한 원고들에게 불완전한 물품을 공급해 채무불이행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들은 원자력안전관리위원회가 방사성물질 가공제품 제조업체에 대한 조사, 안전조치 등을 하지 않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의무 위반이 없고, 매트리스로 인한 건강상 이상 등 손해 발생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전국 수천명 줄소송… 이긴 건 단 한 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라돈 매트리스 관련 손해배상 소송만 17건이다. 뉴스1
지금까지 ‘라돈 매트리스’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이긴 것은 1건이다. 일가족 5명이 쓰던 라돈 매트리스를 리콜해 가져간 대진침대가, 새 매트리스로 교환 또는 환불을 해준다고 하고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건에서다. 2021년 12월 서울동부지법 김성곤 판사는 “원고에게 매트리스교환·환불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당시 시세에 해당하는 금액(25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쟁점인 ‘폐암 발생과의 인과관계’는 지금까지 수사·재판과정에서 인정된 적이 없다. 2018년 6월 대진침대 본사와 공장을 압수수색 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20년 1월 “침대 라돈 방출만으로 폐암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라돈 매트리스 소비자들이 낸 여러 건의 민사소송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2021년 8월엔 원고 168명이 까사미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지난해 8월 69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모두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피해자들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황경태 변호사는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 시행(2012년) 이전엔 관련법이 없었던 건 맞지만, 사람이 쓰는 매트리스에 방사능 물질을 넣으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므로 민사상 일반불법행위”라면서 “항공기 소음, 환경 피해 등에서도 받아들여지는 위자료 청구였는데 법원이 인과관계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장기미제법관 투입… 올해 라돈 피해자 3800명 선고


현재 중앙지법에만 17건의 라돈 매트리스 관련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8월 중앙지법에 추가 배치된 장기미제 중점처리법관(정혜원 판사)이 주심을 맡아, 법정에 3명이 아닌 4명의 법관이 참석해 선고가 이뤄졌다. 민사30부는 오는 12월 14일에도 피해자 1700여명이 제기한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30부와 마찬가지로 장기미제중점처리법관 1명을 배정받은 민사 21부도 피해자 570명·75명·69명·35명이 낸 손해배상소송 사건에 대해 12월 7일 선고를 예정하고 있는 등 올해 중앙지법에서 총 38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1심 판단을 받게 될 예정이다.

김정연·문현경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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