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상담사는 방광염을 달고 삽니다

김기만 2023. 10.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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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접 운영①] 감정노동자보호법 제대로 작동하는가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에게 가장 필요하며 가장 가까운 사회 복지 제도지만 쉽고 가까운 제도는 아니다. 이럴 때 국민이 전화해 찾는 게 바로 고객센터 상담사다. 이들은 민간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를 소속 기관으로 전환해 상담을 통합 운영하기로 2021년 결정했지만 2년간이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노동기본권 향상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기관의 역할 방기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간접고용의 폐해, 상담의 전문성 담보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세 편의 연속 기고를 통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기자말>

[김기만 기자]

"저는 고객에게 언어폭력을 당했음에도 관리자에게 아무런 조치를 받을 수 없어 노동조합을 통해 용역업체인 사측에 확인했습니다. 사측 최고 관리자인 매니저는 '30분 유급 휴식시간, 심각한 경우 유급 병가 주고 치료비를 회사에서 지급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근무한 저는 그런 조치를 받은 상담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 또한 30분 휴식은 받지 못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악성 민원에 대한 조치가 이미 매뉴얼로 있었고 그 매뉴얼을 매니저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 부산고객센터 동료

"고객 폭언에 대해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요? 욕설(폭언)의 언어적 경계가 모호하고, 고객이 '혼잣말이다'라고 할 때는 경고 버튼을 누르기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설사 1차 경고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상담사는 정신적 피해 상태로 상담 종료 전까지 상담을 이어가야 합니다. 고객이 다시 한번 욕설(폭언)을 하기 전까지 2차 경고를 할 수 없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어요. 고객 대응 매뉴얼이 생겼지만, 아직 상담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는 못합니다."- 대구 고객센터 동료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는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 직군이다. 악성 민원인과 장시간 통화 이후 다시 고객의 전화를 받기 위해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료들의 사례처럼 현실은 어렵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공단) 원청과 전국 12개 민간 용역업체 어느 곳도 노동자의 건강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용역업체는 우리가 건강권을 요구할 때마다 '원청인 공단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을 반복한다. 용역업체는 언제나 단순 노무 관리만 했고, 그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빈 껍데기다. 진짜 사장이 공단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초 단위로 기록되는 감시 시스템

노동자들의 감정이 소모되는 원인 중 하나는 감시와 통제에 열을 올리는 사측의 노무 관리가 한몫한다. 공단이 고객센터를 외주화하다 보니 12개 용역업체를 실적으로 줄 세우고, 용역업체는 공단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업체 간 경쟁을 하고, 상담사를 감시·통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적을 위해 실시간 전자 감시를 한다. 상담 시스템은 모든 것을 초 단위로 기록하고 있다.

인바운드 상담시간(전화 받는 것), 아웃바운드 상담시간(전화 거는 것), 상담 종료 후 후처리 시간(다음 전화 받기까지 작업시간), 이석 시간(화장실 등 사유로 자리를 비우는 것)까지 전산 로그에 남고, 팀장 모니터엔 실시간으로 상담사의 현재 상태가 초 단위로 뜬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관리자에게 메시지가 온다. 팀별로 한 번에 화장실 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기도 하고(팀 채팅방을 열어서 화장실 갔다 올 때 채팅으로 보고함), 통화가 끝난 다음 고객의 연결까지 후처리가 조금만 길어져도 "바로 무슨 일이냐?"며 메시지가 온다.

용역업체의 실시간 전자 감시와 노동 통제 방식 때문에 기본적인 노동권과 건강권 침해뿐만 아니라 인격 모독, 직장 내 갑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상담 노동자들은 방광염, 신우신염, 각종 여성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등 질병을 달고 산다. 실적 압박과 악성 민원으로 때로는 숨도 쉬기 어렵고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이런 상담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 문제를 내버려 두면 결국 건강보험 상담의 서비스 질을 떨어뜨린다.
  
 2021년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고객센터 직접 운영으로 상담 통합해야

건강보험 공공 서비스는 일반 상품과 달리 고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지가 되는 자유로운 상품이 아니다. 상담 노동자들의 노동은 복합적이다. 우리는 국민이 고객센터로 문의할 경우 답변을 정확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의 진정한 역할이며 공단의 '공공 서비스 제공'이라는 임무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를 용역업체가 운영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도, 국민의 편의도 나 몰라라 식이 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사를 쥐어짜서 공단의 평가 기준에 맞추는 것이다. 상담사가 '오지랖'이라도 부려 상세한 상담을 하느라 전화를 많이 받지 못하면, 업체는 저성과자로 그를 낙인찍는다. 전화를 빨리 끊고, 많이 받아야 고성과자다.

그러는 사이 한 번의 상담으로 끝낼 수 있는 경우라도 고객들이 2-3차례 반복해서 전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악성 민원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반대로 상담사가 필수적인 안내를 하다가도 시간에 쫓겨 한 가지라도 빠뜨리는 경우, 그 책임과 금전 보상까지 모두 상담사의 몫으로 떠넘긴다.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5년째다. 여전히 견디기 힘든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위해 현실에서 법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사례와 같이 고객의 성희롱, 폭언에서 피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전화 끊을 권리' 행사가 초기 단계에서 가능해야 하나 3회까지 경고하게 하는 센터가 다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연구용역 결과(한국비정규노동센터 수행)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보호법 도입 후에도 고객 폭언 등이 동일하다는 답변이 31.0%다. 회사의 보호조치가 강화되지 않았다는 답변도 37.5%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단은 응대율 숫자에 집착하는 거 외에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공단이 고객센터를 직접 운영해 상담을 통합하고, 국민의 충분한 상담권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향상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에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진한 감정노동자보호법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겠으나 이를 이유로 공단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단이 고객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소속 기관 전환을 약속한 이상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향상은 그 누구도 아닌 공단의 책임이다. 더 이상 책임을 넘길 간접고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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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기만 기자는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부산지회 정책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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