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박경수의 마지막 불꽃, 꿈은 이뤄질까?
[케이비리포트]
▲ 프로 21년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KT 주장 박경수 |
ⓒ KT위즈 |
KT 위즈 내야수 박경수(39·우투우타)는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LG 트윈스 시절에는 성실한 플레이에도 확실한 주전감으로는 아쉽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꾸준히 기회를 받기는 했지만 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LG 시절 박경수는 2할 초중반대의 타율에 간간이 장타를 때릴 수 있는 수비 좋은 2루수였다. 백업 선수로는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박경수에 대한 기대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박경수는 성남고 재학시절 공수주를 겸비한 대형 유격수로 주목받았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겸비한 타격에 빠른 발을 앞세워 그라운드를 휘저었으며 수비 또한 빼어났다. LG 또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2003년 1차 지명으로 그를 선택했다. 유지현을 능가하는 특급 내야수가 등장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박경수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기간 포함 2014년까지 10년을 넘게 있었음에도 터질 듯 터지지 않았다. 잘하는 듯하다가도 한 번 부진에 빠지면 슬럼프가 길었으며 종종 부상 악령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20대가 지났고 박경수의 커리어도 그렇게 저물어가는 듯했다.
▲ KT 이적 후 거포 2루수도 변신한 박경수 |
ⓒ KT위즈 |
체격을 키우면서 주력은 다소 느려졌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확 달라졌다. LG 시절에는 세자릿수 안타를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2008년 95안타가 최다였다. KT에서는 달랐다. 이적하기 무섭게 125안타를 생산해내는 등 5시즌 연속으로 100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홈런과 타점이다.
박경수는 LG에서 뛰던 시절 두자릿수 홈런, 50타점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시즌 기록한 8홈런, 43타점이 시즌 최다였다. KT에서는 첫 시즌부터 기존 기록을 가볍게 넘어서 버렸다. 22홈런, 73타점으로 거포 2루수로 거듭났다. 해당 시즌 포함 6년 연속으로 두자릿수 홈런, 5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같은 선수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성적 향상이었다.
박경수는 KT 이적 후의 맹활약으로 인해 팀 레전드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노장이 된 현재는 한창때만큼의 타격을 기대하긴 어려워졌지만 팀 내 상당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등 당분간 그를 능가하는 2루수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KT팬들 또한 그를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식한다. KT를 넘어 KBO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FA 영입 사례로 꼽힌다. (이하 인터뷰는 구단 협조를 통해 진행)
▲ 지난 8월 20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 박경수 |
ⓒ KT위즈 |
- 지난 8월 2일 개인 통산 2000경기 출장과 900사사구(778볼넷+122HBP)를 동시에 기록했습니다. 2000경기 출장을 당일에 알고 있었나요? 더불어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요?
"음… 2000경기는 올 시즌 시작할 때부터 가능성이 있었기에, 꼭 달성하고자 했던 마지막 개인기록이자 목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900사사구는 몰랐고요. 마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마찬가지로 뜻깊은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하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15년 KT로 이적 후 시즌 22홈런을 때리는 등 타자로서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사실 저도 신기합니다. 팀을 옮기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를 악물었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타격 매커니즘을 정립해서 나만의 것을 확실히 하자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였어요. 그저 그런 선수로 남기 싫었는데... 이적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달라진 환경과 더불어 간절함이 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KT로 팀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몸을 키웠다고 들었는데, 의도적으로 장타력 향상을 목표로 한 것인가요?
"맞아요. 리그 2루수 중에서 다른 선수들과 차별된 저만의 강점을 만들어내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당시 다른 팀 2루수들 가운데는 3할을 꾸준히 칠 수 있거나 도루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죠. 정말 집중하고 운까지 따라주면 3할을 못 칠 것도 없지만 저의 영역은 아닌 듯싶었어요. 저는 교타자가 아닙니다. 한두 시즌은 몰라도 꾸준한 3할? 지금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네요. 도루같은 경우 할 수는 있지만 막 몰아서 하기는 어렵고요. 저만의 경쟁력을 고민해보니 답은 장타력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제 야구 스타일이 그랬기에 그 점을 강화하고자 몸도 키웠고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됐죠."
- 역대 2루수 레전드 계보에 들어갈 만한 선수다는 평가도 적지않습니다.
"아! 그건 아닌 듯싶어요. 겸손한 게 아닙니다. 정말 레전드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장타력과 홈런을 보여주기는 했어요. 하지만 리그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선수들은 그 기록을 3, 4년 만에 해내기도 하죠. 그런 선수들이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레전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레전드로 봐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죠. 아니다는 것을 제 스스로가 너무 잘 알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 프로 18년 차인 2020년 11월 9일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출장하여 프로 18년 차 만에 첫 가을야구를 경험했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그때 심정은 어땠나요?
"돌이켜보면 플레이오프 첫 경기 때보다 플레이오프 직행 결정이 됐을 때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대전 원정경기였어요. 지고 있었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2위가 결정됐죠. 순간 드디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겠다는 기쁨에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 2021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박경수 |
ⓒ KT위즈 |
- 2021시즌 한국시리즈 무대서 맹활약을 펼쳐 MVP까지 받았습니다. 4차전 이후 부상으로 더 이상 뛸 수 없는 아픔도 겪는 등 시련도 있었으나 우승의 순간 목발을 짚은 채 기쁨을 함께 나눴어요. 당시 심정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한국시리즈 MVP도 예상했나요?
"2차전에서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호수비를 펼쳤고 3차전에는 홈런을 쳤습니다. 비록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스토리상 적지 않은 임팩트를 남겼죠. 때문에 잘하면 저도 MVP 후보에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내심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가을야구 한 번을 못 가봤던 선수가 가을야구 진출 2번째 해에 우승과 MVP를 받은 것이기에 더 이상 소원이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승 확정 때도 (유)한준이 형과 서로 고생했다고 울면서 안았어요.
당시를 회상해보면, (황)재균이가 주장이었는데 선수단에 우승 확정시 한준이형과 저를 기다리자고 말했다고 해요. 부상으로 끝까지 시리즈를 완주하지 못했는데 스포트라이트만 잔뜩 받아서 미안했고 또 그 모습을 묵묵히 기다려줬던 후배들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우리 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감동도 배가 됐고요."
"남은 목표요? 무조건 우승입니다"
- 학창시절에는 군기반장이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더불어 현재 팀 내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초중고 모두 주장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군기반장이 되더라고요. 유독 선배님들께서 저에게 중간 역할을 많이 맡겼던 기억이 납니다. 저같은 경우 팀 워크를 중요시 생각하는 유형이에요.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그리 무서운 타입은 아닌데 주장을 많이 하다보니 군기반장 이미지가 쌓이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선수로는 (박)병호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같이 나와서 더욱 친근한 사이죠. 병호는 영남중 시절부터 잘하는 선수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또 영남중학교가 우리 성남고에 와서 훈련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부터 인연을 쌓을 수 있었죠."
- 본인도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아버님이 팬들을 챙겨주신 미담도 종종 들려오더라고요. 아들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표를 구해드렸는데, 일행 중에 사정으로 못 오시는 분이 계시면 현장에서 다른 팬분들을 챙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대신해서 우리 KT 팬분들을 챙겨주신 것이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무서워했어요. 친구 같다가도 선생님 같으시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저도 나이를 먹으니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도 더 가슴에 와닿는 느낌입니다. 더 늦게 깨닫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버지, 낳아주시고 건강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핫 (웃음). 오늘 질문 중에서 가장 쉬운 질문입니다. 다 필요없습니다. 오직 우승입니다. KT 선수로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우승 반지를 한 번 더 끼고 은퇴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 두번째 우승이 남은 목표인 박경수(출처: KT 야매카툰) |
ⓒ 케이비리포트/최감자 |
- 본인만의 야구 지론이 있을까요?
"기본기입니다. 기본기 자체를 습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요.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기본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제대로 위력이 발휘되지 않거든요. 반대로 기본기만 되면 어떤 플레이든지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렸을 때 야구를 잘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기록 중 제일 자부심 있는 것이 연속 경기 무실책입니다. 107경기 혹은 108경기일 텐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 이 기록은 기본기가 안 되어 있으면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107경기 연속 무실책 / KBO 2루수 연속경기 무실책 기록 역대 1위)"
- 박경수에게 KT란 어떤 존재일까요?
"표현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고민되네요(웃음). 저는 그 누구보다 우리 팀을 사랑하고 잘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팀이 잘 되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이라고 단 한 명이라도 알아준다면 만족해요. 은퇴 후 지도자를 하게 된다면 그 또한 KT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돌려주고 싶어요."
- 박경수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올시즌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을 때, 한 팬분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KT에서 박경수가 어떤 존재인지, 박경수로 인해 KT가 무얼 얻었는지' 등을 SNS에 올려 주셨어요. 제가 팀을 사랑하는 만큼 팬분들께서 알아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KT에 합류하면서 서로 윈윈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팬분들께서 주신 응원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어요. 남은 야구 인생도 최선을 다해서 불태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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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참조: 야구기록실 케이비리포트(KBReport.com), KBO기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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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인터뷰: 김종수 칼럼니스트, 민상현 기자, 인터뷰 협조: kt wiz 이진우 대리) 프로야구 객원기자 지원하기[ kbr@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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