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군단 '감독 잔혹사', 롯데에 필요한 감독은 누구?
[이준목 기자]
▲ 잠실에서 승리 거둔 롯데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8-1로 승리를 거둔 롯데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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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2023시즌을 마감한 롯데 자이언츠의 향후 행보에 야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감독이 공석인 롯데는 비시즌에 가장 먼저 새로운 감독부터 선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롯데는 2023시즌 68승 76패를 기록하며 7위에 그쳤다. 2018년부터 무려 6시즌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부터 계산하면 6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다. 이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기록했던 7년 연속 탈락에도 단 1시즌 차이로 근접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범위를 더 넓히면 2013년부터 최근 11시즌간 롯데가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한 것은 2017년(3위) 단 한 번 뿐이었다.
야구의 도시를 자부하는 부산-경남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는 홈팬들의 뜨거운 야구열기와 성적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단이기도 하다. KBO리그 원년부터 역사를 이어온 롯데가 42번의 시즌 동안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것을 모두 통틀어도 12번(1985년은 한국시리즈 미개최로 준우승)에 불과한 반면, 두 배가 훌쩍 넘는 29번이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구단 역사상 최장 기록인 5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한 시기를 제외하면 꾸준한 성적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만큼 자연히 감독교체도 잦았다. 롯데는 프로 원년부터 총 20명의 정식 감독이 팀을 거쳐가며 KBO리그 10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많이 감독을 교체한 구단이기도 하다. 여기에 9명의 감독대행 기간까지 더하면, 역대 롯데 사령탑의 평균 임기는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롯데를 가리켜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이 생기기도 했다.
역대 롯데 사령탑 중 우승을 경험해본 인물은 강병철 감독이 유일하다. 강 감독은 1984년과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나, 롯데 사령탑만 세 번(2대, 6대, 12대)이나 역임하며 1980년대-1990년대-2000년대의 롯데를 모두 이끌어본 감독이라는 진기록도 남겼다. 우승은 못했지만 롯데를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킨 감독은 1995년 김용희 감독과 1999년 고 김명성 감독이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롯데는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를 밟지 못한 팀으로 남았다.
특히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최근 10년간 롯데는 감독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다. 이른바 구단 역사상 황금기로 꼽히는 로이스터-양승호(2008-2012, 5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시대 이후, 롯데는 김시진-이종운-조원우-양상문-허문회-래리 서튼까지 6명의 감독과 2명의 감독대행(공필성, 이종운)이 팀을 거쳐갔다. 이 중 1회 포스트시즌에 오른 조원우 감독을 제외하면 3시즌 이상 팀을 이끌거나 가을야구를 경험한 감독은 전무했다.
공석인 롯데 감독 자리... '감독의 무덤' 오명 벗을까
최근 10년간 롯데 감독 인사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은, 하나같이 롯데와 과거 인연이 있거나, 초보 감독들을 많이 기용했다는 것이다. 양상문, 김시진, 이종운, 허문회 감독은 모두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인연이 있었다. 또한 김시진과 양상문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령탑들은 모두 롯데에서 처음으로 프로 1군 감독을 맡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최근의 롯데 감독들은 성적이나 육성 면에서 모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경기 외적으로 프런트와 마찰을 빚거나 선수장악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논란을 초래한 인물들도 있었다. 팬들의 평가 역시 좋지 않았다.
롯데 팬들 사이에서 드물게 우호적인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 정도가 있다. 롯데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롯데를 곧바로 가을야구로 이끌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재임 3시즌 동안 모두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유일한 사령탑이기도 하다.
다만 로이스터 감독은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 약했고 그래서 끝내 우승에는 실패했다는 한계도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롯데 팬들에게 10여 년도 더 지난 로이스터 시절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노 피어(두려움없는 야구)'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야구스타일과 도전정신이 당시 롯데가 필요로 하던 방향성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일부 롯데팬들은 이대호-강민호-홍성흔-카림 가르시아 등을 앞세워 화끈한 공격야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로이스터 시절이, 우승 시즌보다도 더 재미있고 인상깊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롯데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색깔일까. 6년간 거듭된 시행착오와 무색무취한 야구에 질린 롯데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랫동안 가을야구와 멀어진 만큼 이제는 '윈나우'로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검증된 지도력과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지도자는 어차피 몇 명 되지 않는다. 우승이나 포스트시즌 경험이 있는 감독이라면 당연히 초보 감독들은 일단 제외된다. 또한 현장 공백기가 오래되어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60대 이상 '올드보이' 노장 감독들도 후보가 되기는 어렵다.
여기에 대표팀을 맡고 있는 류중일 감독을 제외하고 현재 프로 1군팀을 맡고 있지 않은 지도자로 범위를 좁히면, 김태형 전 두산 감독, 김기태 KT 2군 감독, 이동욱 전 NC 감독(현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팀 코치) 정도가 조건을 충족한다.
▲ 응원하는 롯데 팬들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부산시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결정 D-50일을 맞아 이색적인 유치 응원전을 준비했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은 현장 관람객과 소통하며 파도타기와 단체 댄스 타임 등의 응원전을 펼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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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도 독보적인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은 단연 김태형 감독이다. 친정팀 두산에서 장기집권하며 7년 연속(2015~2021년)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 정규시즌 통산 1149경기 승률 .571(645승 485패 19무)의 뛰어난 성적이 그의 능력을 증명한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선수단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롯데 구단은 아직 말을 이끼고 있음에도 김 감독은 롯데의 가장한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30년 넘게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이 없는 롯데로서는 '우승청부사'라는 명분에 가장 부합하는 카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감독 전능론'이 깨진 지 오래된 현대야구에서, 특정 감독의 영입이 롯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태형 감독이 아니라 로이스터 감독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롯데에서 다시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시절이나, 김태형 감독이 두산에서 매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는, 모두 감독의 능력만이 아니라 당시 전성기에 갓 돌입한 선수단과 프런트의 지원같은 조건들이 골고루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김성근 감독의 한화 시절이나, 김재박-류중일 감독의 LG 시절처럼, 전 소속팀에서는 여러 차레 우승을 이루며 명장 소리를 듣던 감독들조차도 환경이 전혀 다른 팀으로 가서는 크게 실패한 사례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롯데는 전통적으로 다른 구단들에 비하여 현장보다 프런트의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당장 최근 4년간 롯데 야구의 방향성을 주도했던 것도 현장이 아니라 이른바 '프로세스론'를 표방한 성민규 단장 체제의 프런트였다.
성민규 단장 체제에서 팀 성적은 성적대로 내지 못하고, 영입한 감독들이 논란 속에 줄줄이 낙마한 것은 결국 그들을 영입한 프런트의 실패이기도 하다. 롯데가 진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감독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지난 몇 년간 프런트의 공과에 대한 냉철한 중간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롯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구단 운영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장기적이고 일관성있는 시스템이다. 지난 몇 년간 검증되지 않은 초보감독들을 선임했다가 줄줄이 실패했던 프런트가 노선을 변경하여 베테랑 감독을 영입한다면, 구단 운영에 대한 철학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이름값 높은 감독만 한 명 데려온다고 롯데 야구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는 섣부른 환상은 금물이다. 롯데의 길고 긴 감독 잔혹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결코 감독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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