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오늘, 여순에서 벌어진 일... 양지바른 곳에 묻힌 학살자
[정성일 기자]
▲ 여수 신월동에 위치한 14연대 주둔지. 당시 총궐기한 14연대 병사위원회의 호소문이 적힌 그림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
ⓒ 임재근 |
10월 19일은 여순민중항쟁 75주기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오랫동안 여순민중항쟁은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습니다. 75년 전 여수와 순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동족상잔 결사반대
여수 제14연대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미군 철수시 국방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미군정이 기존 9개 연대 외 6개 연대를 추가하며 창설됐습니다. 광주에 주둔한 제4연대 안영길 대위 등 기간병력 1개 대대가 1948년 3월부터 여수 신월리에 내려와 전남 동부지역에서 모병해 1948년 5월에 창설한 연대가 바로 여수 제14연대입니다.
14연대가 창설되기 한 달 전 제주에서는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외치며 제주4·3항쟁이 발생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며 기존 경찰 중심의 진압작전에서 군이 주도하는 초토화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이후 제14연대도 1948년 10월 19일 밤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14연대 병사위원회는 동포 학살 명령을 거부하고 밤 9시경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외치며 총궐기했습니다. 이들은 새벽 1시경 부대를 장악하고, '애국인민에게 호소함'이라는 성명을 통해 출병 명령을 거부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10월 20일 오후 3시 여수 민중들은 여수군 인민대회를 열고 봉기했습니다. 순천, 보성, 광양, 고흥, 구례에서도 많은 민중들이 함께 했습니다.
항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10월 21일 반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토벌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여수 시민군들은 인구부에서 토벌군을 기습하는 데 성공하는 등 토벌에 항전했으나, 10월 26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초토화작전에 결국 여수는 토벌군에 점령됐습니다. 토벌군은 진압과정 및 점령 이후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여수 뿐만 아니라 순천에서도 많은 학살이 있었습니다. 1949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1만 1131명이 사망했습니다.
▲ 여수 만성리에 위치한 형제묘 |
ⓒ 임재근 |
전남동부지역은 가릴 곳 없이 곳곳이 학살지였습니다. 강산이 일곱 번도 더 변한 지금은 학살지의 모습이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대부분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원형을 잘 유지 하는 곳이 여수 만성리 '형제묘'입니다. 안내문을 보면 학살의 과정이 언급돼 있습니다.
"1949년 1월 13일,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혐의자들 중 125명이 총살된 후 그 시신은 장작더미에 쌓여 불태워졌다."
토벌군은 어떻게 이런 잔인한 학살을 할 수 있었을까요?
75년 전 이곳에는 간도특설대 출신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만주에서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하겠다는 목표로 일본 관동군 간도 특무기관장 오고에(小越信雄) 중좌의 주도로 창설됐습니다. 193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군관 절반 이상이 조선인이었습니다. 하사관과 사병 역시 전원 조선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항일 무장세력 토벌'이 목적이었지만, 수많은 민간인을 고문, 학살, 강간, 방화, 약탈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총살 후 화형을 할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이런 간도특설대 출신의 군인들이 여수 학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군법회의의 처형 집행권을 호남지구계엄사령부에 일임했습니다.
호남지구계엄사령관이던 김백일, 여수지구계엄사령관 송석하는 만주 간도특설대 출신이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반군토벌사령부 정보참모 백선엽, 제15연대 연대장 최남근도 간도특설대 출신이었습니다. 간도특설대 출신의 군인들이 해방 전 만주에서 벌였던 만행을 해방 후 여수에서 그대로 반복했던 것입니다.
신분을 바꾸고 계속된 학살
여수지구계엄사령관 송석하는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1묘역 93번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1915년 4월 6일 충청남도 대덕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37년 5기로 졸업해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간도특설대가 창설돼 복무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패망으로 해산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을 모두 108차례 공격했습니다. 이들에게 살해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했으며, 그 밖에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약탈·고문을 당했습니다. 송석하는 1941년 3월 중위로 진급해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국군 상위(대위)였습니다. 1943년 9월 훈5위 경운장(景雲章)을 받을 정도로 일제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일제 패망 후 송석하는 다른 만주국군 출신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군으로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만주국군 상위 송석하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들어가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1948년 8월 육군 소령으로 특진해 제3연대 부연대장이 됐고, 그해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1개 대대를 이끌고 진압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제4연대 박기병 소령에 이어 여수지구계엄사령관이 됐고, 반군색출과 학살을 주도해나갔습니다. 여순학살 과정에서 그는 백인엽에 이어 제12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하였다가, 1949년 8월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을 지냈습니다.
한국전쟁에 20사단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이후 1955년 육군소장으로 진급했습니다. 1956년 11월 3관구사령관에 전보됐고, 그 뒤 육군본부 기획통제실장을 거쳐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재직했습니다.
▲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93번 송석하의 묘. 묘비 뒤편에는 ‘1937년 만주군관학교 졸업’이라고 적혀있다. |
ⓒ 임재근 |
송석하는 1999년 1월 14일 만 83세의 나이로 사망해, 이틀 뒤인 1월 16일 대전국립현충원 장군1묘역 93번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송석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지만, '장성급 장교'라는 이유로 여전히 현충원에 머물며 대접받고 있습니다.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여순민중항쟁 당시 반군토벌사령부 정보참모 백선엽 또한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 555번 묘지에, 호남지구계엄사령관 김백일은 서울현충원 제1장군묘역 최상단 19번 묘지에 안장돼 있습니다.
가해자는 양지에, 희생자는 음지에
여수에서 학살을 자행한 송석하는 양지바른 대전 국립현충원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희생당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희생자 대다수가 여수, 순천을 비롯한 전남동부지구에서 학살됐고, 여기에서 생존한 많은 사람이 대전에서 학살됐습니다. 체포된 14연대 군인들 가운데 700여 명이 상급부대인 광주 제5여단을 거쳐 대전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됐습니다. 대부분이 사형을 언도 받고 1948년 12월부터 1949년 2월 사이에 대전에서 사형을 집행받았습니다. 당시 기록에 '대전 교외에서'라고 남아 있을 뿐입니다.
토벌군이 여수를 점령한 뒤 여수 여중학교에는 군법회의가 설치됐습니다. 1948년 11월부터 1949년 2월 사이에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가 아홉 차례 진행됐습니다. 그 가운데 최소 두 차례 이상, 최소 800여 명 이상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가 여수에서 열렸습니다. 800여 명 가운데 500여 명이 대전, 대구, 김천, 전주, 목포, 인천형무소로 수감됐습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들 대다수가 학살됐습니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수감자들은 대전 산내골령골에 끌려가 학살됐습니다.
간도특설대는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고 수많은 민간인을 고문, 학살, 강간, 방화, 약탈했습니다. 해방 이후 자국민을 무참히 학살했던 가해자들은 대전 서북쪽에 위치한 양지바른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하고 통일된 조국을 바랐던 희생자들은 대전 남동쪽 깊은 골짜기 산내골령골에서 얽힌 채 온전한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주철희, <주철희의 여순항쟁 답사기 1>, 흐름출판사, 202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010.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제1권- 전쟁의 배경과 원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민족문제연구소 편집부,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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