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스위스답게 만든 '이것'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10. 19. 14: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국의 교차로에서

[김찬호 기자]

기차의 차창 밖으로 보인 풍경은 놀라웠습니다. 밀라노 도심을 벗어나 스위스 땅에 접어들자, 높은 산맥과 넓은 초원이 보였습니다. 어느 화물역 옆으로 큰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모습도 봤습니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습니다. 그 산 속에도 작은 마을이 보였습니다. 알프스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풍경이었습니다. 이 사이에 어떻게 도시가 만들어지고, 그 사이로 철도가 지나는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스위스의 도시를 만나는 감각은 유럽의 다른 대도시와는 달랐습니다. 높은 산맥을 넘어 큰 호수가 나타났고, 그 호수의 한 켠에 도시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순간 나타나는 호수와 도시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강이 아닌 호수를 낀 도시도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스위스의 기차역
ⓒ Widerstand
 하지만 기차를 타고 지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이 산이 아름다운 풍경이겠지만,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요.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는, 때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투쟁이기도 하니까요.

이중성을 지닌 알프스 산맥

스위스에서도 그랬습니다. 스위스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이 알프스 산맥에서부터 출발했죠. 과거 스위스에 허락되었던 산업은 낙농업과 알프스 산맥을 오가는 길을 따라가는 중개무역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난한 약소국이었던 스위스를 지금의 자리까지 지탱해준 것도 알프스 산맥의 역할이었습니다.

중세 스위스는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북부의 공업지대와 중부 유럽을 연결하는 도로와 다리를 만들었죠. 알프스 산맥은 여전히 험준한 길이었지만, 13세기부터 이어진 도로 정비를 통해 충분히 무역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도로를 장악한 이들이 스위스의 출발이었습니다. 무역로 근처에 있는 신성로마제국 예하의 몇몇 지역이 모여, 1291년 '구 스위스 연방'이라는 동맹체를 만든 것입니다.

원래 스위스라는 동맹은 이렇게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일부 지역의 연합체였습니다. 하지만 이 동맹에 가입하는 지역은 늘어났고, 이들의 힘도 점차 실체를 갖추게 됩니다. 알프스를 지나는 무역로를 장악했고, 이를 오가는 중개 무역으로 부가 유입되기 시작했죠.
 
 취리히
ⓒ Widerstand
 물론 스위스를 견제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스위스가 자치권을 얻고 독립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제국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과도, 그들이 장악한 신성로마제국과도 전쟁을 벌여야 했죠.

그뿐 아닙니다. 남쪽 이탈리아의 여러 국가들과도 싸웠습니다. 프랑스와도 전쟁을 했습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의 바람이 불며, 스위스도 주된 전쟁터가 됐습니다.

대표적인 종교 개혁가인 장 칼뱅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활동한 인물이었죠. 다른 국가와의 전쟁뿐 아니라, 스위스 안에서도 구교파와 신교파가 나뉘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스위스는 30년 전쟁 이후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전란은 끊이지 않았죠. 나폴레옹 전쟁기에는 프랑스 혁명군이 스위스를 점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알프스의 무역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스위스는 언제나 제국과 제국을 잇는 교차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위스가 겪었던 전쟁의 역사도 그 탄생부터 주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죠.
 
 스위스의 국기
ⓒ Widerstand
 하지만 스위스는 그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바꾸어 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오랜 전란의 과정에서 발전한 대표적인 것이 스위스의 용병 산업이었죠. 스위스 용병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용병으로 꼽혔습니다.

형식적이지만 지금도 교황청의 경비는 스위스의 근위병이 맡고 있죠. 지금이야 용병 사업을 하지는 않지만, 스위스는 지금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입니다. 한편으로는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람뿐이었다는, 가난한 산간 지대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다만 그렇게 성장한 군사력으로 스위스는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중립국의 길이었죠. 스위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 국제 사회로부터도 중립국화를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스위스는 대표적인 영세중립국이 되었죠.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를 위협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위스는 외교력과 군사력을 이용해 중립국의 지위를 지켜왔죠.

국경 전부가 추축국 세력에 둘러싸인 2차대전에서도 스위스는 독일의 점령을 피해 갔습니다. 대신 독일은 스위스를 외부와의 접촉 창구로 이용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의 교차로에 선 위치를 현명하게 이용한 것이었죠.

제국의 교차로에 선 흔적들
 
 제네바의 호수
ⓒ Widerstand
 스위스는 이제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알프스의 무역로를 기반으로 한 중개 무역은 스위스의 도시 발전을 추동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세계를 서유럽과 중부 유럽으로 연결하는 지점이었으니까요.

무역업은 곧 은행업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스위스의 영세 중립국화와 정치적 안정성은 은행업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죠. 지금까지도 유명한 스위스 은행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는 공업도 발달했습니다. 험준한 알프스 지형은 수력발전에 유리한 조건이었죠. 이 시기 스위스는 '스위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발달을 이룩합니다.

물론 지리적 특성상 다른 서유럽 강대국과 같은 공업 발달은 불가능했습니다. 철도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대규모 물자의 수송은 여전히 어려웠으니까요. 스위스는 대신 시계 제조나 제약업을 비롯한 정밀 공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산업의 역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취리히
ⓒ Widerstand
 중립국의 지위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UN에도 2002년에야 가입했고, EU나 NATO 등의 국제기구에는 여전히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주변국 모두가 유로화를 쓰지만, 스위스는 아직도 독자 화폐인 스위스프랑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스위스의 곳곳에는 제국의 교차로에 선 흔적이 남아있는 셈이죠.

여전히 스위스에서는 지역별로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프랑스어가 모두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스위스의 고유 언어인 로망슈어도 있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가진 독특한 정치 체제도, 이런 과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는 강력한 지방 자치와 함께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에서도, 주정부에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국민 투표를 실시합니다. 국민 5만 명의 서명이 있으면 연방 법률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하죠.

정부도 집단지도체제로 꾸려져 있어서, 장관 7명으로 구성된 내각이 연방정부의 사무를 사실상 처리합니다. 물론 총리가 존재하지만, 그 역할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장관들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끄는 상징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이 모든 것이 단일한 국가로서 스위스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 제국의 사이에서 살아남아온 스위스가 내린 결론이었을 테고요.
 
 스위스의 국기와 UN기
ⓒ Widerstand
 제네바의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건물에 걸려 있는 UN의 깃발을 보았습니다. 스위스는 여전히 중립국이고, 그 덕에 여러 국제 기구가 스위스에 위치해 있죠. 정작 스위스가 UN의 회원국이 아니었던 시절부터 UN의 유럽 사무국은 제네바에 있었습니다.

제네바에서 탄생한 국제적십자/적신월사를 비롯해 국제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UN 인권위원회 등이 스위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도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고, 국제경제포럼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려 '다보스 포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죠. 이외에도 FIFA와 같은 스포츠 기구를 포함해 200개 이상의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있습니다.

UN의 깃발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 시대, 다시 대립과 반목이 성장하는 이 시대에도, 스위스는 여전히 제국 사이의 교차로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국의 교차로에 선 스위스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의 역할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가 지나면 스위스는 다시 어떤 결론을 내게 될지, 그 답을 기다리게 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