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호 막내에서 '최고 기대주'로…황재원 "한일전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IS 인터뷰]
황재원(21·대구FC)의 발견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최고의 수확이었다. 황선홍호의 주축을 이룬 1999년생들보다 3살이나 어린 ‘막내’였지만, 7경기 중 6경기에 선발 출전해 공·수에 걸쳐 맹활약한 덕분이다. 한국축구의 오랜 고민이었던 풀백 자리를 책임질 ‘차세대 기대주’의 등장을 알린 대회이기도 했다.
대회 기간 내내 황선홍 감독의 신임이 워낙 두터웠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일찌감치 16강 진출이 확정돼 대대적인 로테이션이 가동됐던 조별리그 최종전 바레인전을 제외하고는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적극적인 오버래핑과 빠른 공수 전환까지. 설영우(울산 현대) 박규현(디나모 드레스덴)이 번갈아 선발 자리를 꿰찼던 왼쪽 풀백과 달리 오른쪽 풀백 주전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나이는 황선홍호의 막내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핵심 선수였던 셈이다.
황재원에게도 값진 경험이 됐다. 대회가 끝난 지 열흘지 넘었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다”고 돌아볼 정도다. 그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정말 쉽지 않은 대회였지만, 모두가 중국에 갈 때부터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 간절함이 금메달로 이어진 것 같다”며 “경기 일정이 워낙 짧았지만, 호텔에서 푹 쉬면서 오직 금메달만 바라보고 준비했다. 다들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크게 못 느꼈다”고 말했다.
긴장감 최고였던 결승 한일전, 폭풍 돌파로 이끈 금메달
황재원의 활약상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건 아무래도 지난 7일 ‘결승 한일전’이었다. 이날 한국은 이른 실점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정우영(슈투트가르트) 조영욱(김천 상무)의 연속골로 짜릿한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덜 받았지만, 정우영의 동점골을 도운 크로스도, 조영욱의 역전골의 기점이 된 돌파도 모두 황재원이었다.
그는 결승 한일전을 “그동안 치렀던 어떤 경기보다도 긴장감이 최고였다”고 떠올렸다. 황재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해 태극마크를 달고 치른 결승이었고, 또 절대 지면 안 되는 한일전이기도 했다. 그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무조건 이기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출전했다. 첫 골 실점 장면에선 내가 빌미가 됐다. 다행히 역전해서 안심이 됐고, 또 너무 기뻤다”고 돌아봤다.
정우영의 헤더로 이어진 날카로운 크로스만큼이나 일본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뜨린 ‘폭풍 돌파’가 특히 압권이었다. 황재원은 하프라인 부근에서 절묘한 턴 동작으로 상대 공격수의 전방 압박을 벗겨낸 뒤, 빠르게 상대 진영까지 파고들어 문전으로 패스를 전달했다. 이 패스는 정우영을 거쳐 조영욱의 역전 결승골로 이어졌다.
황재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는 “하프라인 부근에서 백패스를 하려고 했다. 약간 곁눈질로 봤는데, 상대 선수가 백패스를 예상하면서 미리 앞서가려는 게 보였다. 한 번 돌아서면 벗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딱 턴을 했다”며 “생각보다 뻥 뚫려 있길래 ‘밀고 나가면 좋은 찬스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밀고 갔다. 박스 안에 공격수 2명이 있길래 패스를 줬다. 다행히 (조)영욱이 형까지 연결돼 골로 연결됐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한국의 역전승, 그리고 금메달이 확정되는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는 순간. 황재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쁨이었다. 너무 좋아서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좋아했다. 소집 기간 내내 많이 챙겨주셨던 (백)승호 형이나 (박)진섭이 형은 울고 있더라. 승호 형은 주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을 텐데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 같다. 나는 벅찬 감정과 함께 마냥 기뻤다. 큰 대회에서 우승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값진 금메달이었다”고 돌아봤다.
금메달만큼 값졌던 건 선수로서 쌓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 처음 출전한 데다, 결승 한일전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했다. 중국과의 8강전은 6만여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일방적인 응원과도 맞섰다. 2002년생, 아직 젊은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없이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그는 “중국전에서는 6만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경기를 했다. 팀 K리그(올스타) 때도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해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었다. 이번에는 6만 관중의 야유 속에 경기를 치렀다”며 “이렇게 큰 무대에서 큰 경기들을 경험해봤으니, 앞으로 여유를 갖거나 더 나은 경기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커다란 꿈 품었지만, 조급함은 버렸다
나아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황재원이 더 큰 꿈을 품게 한 원동력이 됐다. A대표팀 승선, 그리고 유럽 등 해외 진출이다. 물론 아시안게임 금메달 활약만으로 큰 꿈을 꾸는 건 아니다. 황재원은 이미 프로 데뷔 시즌이던 지난 시즌 K리그1 34경기(1골·3도움) 출전에 이어, 올해 역시 28경기(1골·3도움)에 출전하는 등 벌써부터 대구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 중이다. 차세대 풀백을 찾아야 하는 A대표팀에 머지않아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사실 축구계에선 이르면 10월 A매치에도 승선 가능성이 점쳐졌다. 실제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은 아시안게임 멤버 4명을 곧바로 A대표팀에 호출했다. 다만 이번엔 A대표팀 깜짝 승선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황재원은 그래도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A대표팀은 모든 축구 선수가 꿈꾸는 무대다. 당연히 가고 싶다. 그렇다고 이번에 발탁되지 못한 것에 대해 좌절하진 않는다”며 “오히려 제가 아직 부족한 걸 느낄 수 있는 발걸음으로 삼고 있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라고 본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금보다 더 큰 무대로 향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는 길 역시 마찬가지다. 조급함보다는 소속팀 대구에서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다보면, 자연스레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황재원은 “지금은 대구FC 소속 선수다. 대구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라면서 “이제 K리그 파이널 라운드 5경기가 남았다.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따기 위해 순위권에 드는 게 목표다. 지금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시안게임 이전에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서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항저우까지 와주신 분들도 계신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린다”며 “이렇게 저를 응원해주시는 만큼, 앞으로 더 좋은 모습만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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