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안 생겼는데 이스라엘 공습? 가자지구 병원의 진실
가자지구 아랍병원 폭발 참극의 원인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책임 공방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판단은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오발’로 기우는 분위기다. 자료 수집 등 분석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손을 들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상공 영상 이미지, 감청 정보, 오픈소스 정보 분석을 기반으로 한 지금까지의 평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병원 폭발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백악관 NSC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추가 성명을 냈다. NSC는 “정보에 따르면 일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번 병원 폭발의 원인이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의 로켓이나 미사일 오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미 현지 주요 외신이 전하는 기류도 비슷하다. 미 정보기관은 초기 수집 증거를 토대로 알아흐리 아랍병원 폭발 사고가 PIJ가 로켓을 잘못 발사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 정보기관의 영상 분석 결과 (병원을 폭발시킨) 발사 지점이 이스라엘 군사기지 방향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 역시 적외선 센서로 수집한 발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은 (아랍병원 폭발 원인이 된) 발사가 이스라엘군 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확신한다”고 NYT에 말했다.
특히 미 정보기관이 수집한 증거자료 중에는 해당 병원의 폭발 원인이 ‘공습’이 아니라 ‘지상 폭발’에 의한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 정부 소식통이 CNN에 말했다. 이는 이스라엘군의 주장과도 일치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공중에서 로켓이나 폭탄이 투하할 때 생기는 구덩이(crater)가 폭발이 발생한 병원 현장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군사안보 전문가인 마크 허틀링 예비역 중장은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군이 공개한 폭발 현장 이미지들은 설득력이 있다”며 “이스라엘 폭탄에 의한 폭발이라면 그 여파로 생기는 구덩이가 보일 텐데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 지상에서 폭발이 시작했을 때 나타나는 광범위한 화재 피해 흔적과 곳곳에 산재한 파편들이 공습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나타낸다고 정부 한 소식통이 CNN에 말했다. 아울러 병원에 대한 직접적 타격이 아니라 병원 주차장이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 다니엘 하기리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항공 영상 분석 결과 병원 자체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고 피해를 본 유일한 장소는 병원 외부 주차장으로 불에 탄 흔적을 볼 수 있다”며 “이는 병원 주차장을 강타한 것이 공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CNN은 “이러한 분석 결과는 병원 폭발 원인이 로켓 발사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평가에 기울게 만드는 하나의 데이터포인트”라고 짚었다.
이날 미 의회에서도 이스라엘에는 책임이 없다며 오랜 맹방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짐 하임스 의원(코네티컷)은 정보 당국의 기밀 브리핑 청취 후 “우리가 들은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것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지구 내 테러리스트 그룹이 잘못 발사한 로켓의 결과로 보인다”고 했었다.
그는 이날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일부 취재진과 만나 “병원 폭발 원인에 대해 중동 지역 내 일부 세력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이해한다”면서도 “저는 제가 얻은 출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 국방부는 이스라엘 탓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고 전날 발언을 재확인했다.
하원 정보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터너 의원(오하이오)과 짐 하임스 의원은 이날 정보 브리핑을 받은 내용을 토대로 “병원 폭발은 이스라엘 군사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고 믿는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상원 정보위원장인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버지니아)과 상원 정보위 공화당 간사인 마르코 루비오 의원(플로리다)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공습의 결과가 아니라 무장 테러리스트의 로켓 발사 실패의 결과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다만 미 정보 당국은 아직 최종 평가를 내리지는 않은 상태다. 여전히 증거물 수집 및 분석 작업에 힘쏟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은 공중 감청 정보 및 특수작전 지원을 통한 현장 정보 수집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CNN에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통신 감청 및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수집된 신호 정보도 넘겨받고 있다고 한다.
미, 하마스 자금줄 압박…금융조력자 등 제재
미 정부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자금줄에 대한 압박 조치에도 들어갔다. 미 재무부는 이날 가자지구와 수단ㆍ튀르키예ㆍ알제리ㆍ카타르 등에서 활동하는 하마스 핵심 지휘관ㆍ조직원과 금융 조력자,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자 등 개인 9명과 단체 1곳을 테러 연관 혐의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들 중엔 하마스 금융 전문가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다수의 회사를 관리하는 압델바싯 함자 엘하산 모하메드 카이르, 군사 조직 알카심 여단을 비롯해 하마스에 수천만 달러를 송금하는 데 관여한 무하마드 아흐마드 압드아다임 나스랄라 등이 포함됐다. 재무부는 “이번 제재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에서 하마스의 수입원을 뿌리뽑기 위한 미국의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후 미 정부가 하마스 조직원과 기관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무부는 또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란의 드론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해서도 이란 및 중국, 홍콩, 베네수엘라 소속 개인 11명과 단체 8곳, 선박 1개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국은 앞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인 지난 12일 수감자 교환 협상 당시 동결을 해제한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을 재동결한 바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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