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좋긴 한데..." 최상위권 고등학생들의 예언

서부원 2023. 10. 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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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고1·고2 반응 보니...1천 명 증원 가능성엔 물음표, 설익은 정책 우려

[서부원 기자]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천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확대 폭을 놓고는 당초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었던 351명(10%)만큼 다시 늘리는 방안,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됐으나 실제 발표에서는 확대 폭이 1천명을 훌쩍 넘는 수준일 수도 있다. 사진은 16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2023.10.16
ⓒ 연합뉴스
 
반갑고도 고마운 뉴스가 떴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는 처음이다. 사실 의대 정원을 1천 명 늘릴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보고 순간 혀를 찼었다. 이젠 유튜브도 아닌 메이저 언론사들조차 믿거나 말거나 식의 가짜 뉴스를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고 여겼다.

여당에서는 1천 명이라고 숫자를 못 박지는 않았다고 한 발을 뺐지만,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연신 강조했다. 야당에서도 반색했다. 지난 2020년 의대 정원을 늘리려다 의사들의 집단 파업으로 무릎 꿇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다.

야당은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지역 의사제'를 일괄 도입하자고 맞장구쳤다. 이에 여당은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여하튼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여야가 손바닥을 마주친 첫 사례일 성싶다.

예상대로 대한의사협회(아래 의협)에서는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객관적 근거나 명확한 원칙 없이 의사 인력을 확충하는 걸 수용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지난 2020년 집단 파업 당시의 대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매불망 의대 정원 확대를 바라는 여론도 그대로다. 당시엔 정권을 무릎 꿇릴 정도로 의협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절감한 채 흐지부지됐다. 아이들 입에서조차 '정권 위에 의협'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의사는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쥔 유일한 '넘사벽 직업'이라고 했다.

이후 아이들의 의치대 선호 현상이 가히 '신드롬'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학교마다 보편화됐다. 학벌 구조상 최상층이던 이른바 'SKY'도 의치대에 밀려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의치대는 이과의 최상위권을 독식하는 블랙홀이 됐고, 명문대 이공계열은 '의치대 사관학교'라는 별칭마저 생겨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광주과학기술원(GIST), 포항공대(POSTECH),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등 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내로라하는 대학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부모도 교사도 일류 과학자보다 차라리 시골 의사가 백 배 낫다며 만류하는 지경이 됐다. 이젠 과학자를 꿈꾸는 초등학생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남 부럽지 않을 명문대생이 의치대에 못 갔다고 좌절하며 재수와 삼수를 불사하는 경우가 더는 드물지 않다. 뒤늦게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진 문과생이 한의대로 진로를 급히 변경한 사례도 있다. 참고로, 일부 한의대는 내신과 수능 응시 교과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찬성이지만..." 의대 정원 확대, 아이들의 반응은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앞에 교육 과정과 관련한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학원가에 따르면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계획에 '초등 의대 준비반' 입학 문의가 늘었다. 정부는 오는 19일 2025년도부터 적용할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3.10.17
ⓒ 연합뉴스
 
내친김에 정부의 의대 정원 1천 명 증원 방안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들어봤다. 설령 정부의 방안이 확정된다고 해도 적용받을 수 없는 고3은 부러 제외했다. 현재 고2와 고1 중 의치대 진학을 염두에 둔 최상위권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모두 내신 평점 1점대 아이들이다.

"오랫동안 의대 정원이 묶여 있었던 데다 의사가 태부족한 현실에서 당연한 조처라고 봐요."
"몇 명을 늘리느냐보다 필수 의료 분야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일할 의사를 확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 의사 양성을 위한 의대의 교육과정과 대입에서는 적잖은 혼란이 빚어질 것 같아요."

아이들의 답변은 이렇게 모였다. 요약하자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는 찬성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이어서인지 무엇보다 대입 전형에서의 혼란과 유불리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보다 '1천 명'이라는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는 거다.

당장 의대 정원 증원 소식을 가장 반길 사람이 지금 대학에 재학 중인 선배들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명문대에 다니는 1~2학년생들이라면 과감히 다시 수능에 도전하게 될 거라고 단언했다. 문이 넓어진 만큼 합격 가능성이 커졌다고 여기지 않겠느냐는 거다. 만약 올해 안에 확정된다면, 그들은 지금 고2와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더욱이 1천 명이면, 현재의 의대 정원인 3058명의 1/3에 육박하는 엄청난 숫자다.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8년째 변동이 없던 정원이어서 1천 명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파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다. 벌써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현재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의대에 진학한 경우는 고작 10명 중 한 명꼴이다. 의대에 진학하려면 재수와 삼수는 기본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정원이 대폭 늘어나 의대 쏠림 현상이 되레 심해질 거라고 우려하는 아이도 있다. 덩달아 의대의 경쟁률 또한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천신만고 끝에 의대에 합격해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 의대의 교육과정은 3058명 정원에 최적화되어 있을 텐데, 갑자기 1천 명이나 늘어나면 감당하기 힘들 거라고 주장했다. '인프라'의 확충과 지원 없이 정원만 늘려서는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거다.

정권 위에 의협? 

그런데, 아이들의 답변 뒤엔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몇 해가 흘렀지만, 그들도 '정권 위에 의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 아이는 우리나라에선 노조원 1천 명이 모여 시위하는 것보다 의사 열 명이 모여 파업하는 게 더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비꼬기도 했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요?"

아이들의 판단은 반반으로 갈렸다. 이번에도 의협에 무릎을 꿇게 될 거라는 주장과 적어도 이번엔 다를 거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한 아이는 이번 방침이 무언가에 쫓겨 마구잡이로 던진 정책이라며 깎아내렸다. 앞뒤도 재지 않고 내지른 이른바 '뻥카'라는 거다. 그는 정부가 굳이 의사들과 척지진 않을 거라면서, 조만간 중장기 과제로 삼겠다고 눙치며 발을 빼게 될 거라 예언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이필수 회장(왼쪽)이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의협은 이번 회의에서 최근 불거진 의과대학 정원 확대 대응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2023.10.17
ⓒ 연합뉴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실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의협이 파업을 강행하면 곧장 압수수색에 들어갈 테고 뭐든 꼬투리를 잡아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특히 의사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키득거렸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하다'는 거다.

더욱이 여야 정치권이 모두 동의하고, 심지어 지난 2020년엔 어설픈 정책이라며 반대하던 보수 언론마저 의협에 등을 돌린 마당에 의대 정원 확대는 시간 문제라고 확언했다. 다만, 전 정권엔 기세등등하게 저항하던 의사와 전공의, 의대생들이 검찰 권력을 앞세운 현 정권엔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조금은 슬플 것 같다고 했다.

당초 오늘(19) 발표하기로 한 의대 정원 확대 발표는 잠정 연기됐다고 알려졌다. <메디게이트 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브리핑을 통해 의대정원 증원 시기나 규모 등 세부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방침 정도만 공식적으로 언급"할 것으로 예상되며, 구체적인 발표가 국감이 마무리되는 25일 전후 혹은 연말까지 미뤄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띄운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까. 아이들의 '예언'이 적중할지, 아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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