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방이 있다니... 개봉동 주민들, 부럽습니다

나유진 2023. 10. 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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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리전문 독립서점 '개봉책방' 조정원 대표를 만나다

[나유진 기자]

 서울 구로에 위치한 개봉책방 전경. 매달 '심리독서모임'을 한다.
ⓒ 나유진
 
"서점이 없는 마을은 영혼이 없는 마을이다."  

소설가 닐 게이먼의 말이다. 더 정확히는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책은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 한 사람의 영혼을 만들기도 한다. 동네에 조그만 서점 하나가 들어서면 생기가 흐른다.

서울 구로구에서 독립서점 '개봉책방'을 하는 조정원 대표가 바로 그런 서점을 꿈꿨다. 주민들이 책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문화가 숨쉬는 곳. 자신의 심리치료사 경력을 살려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안아주는 공간도 만들기로 했다. 심리학·정신의학 책으로 서가를 채웠고, 독서 모임 · 북 토크쇼에 마음을 들어주는 심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기 위해, 가을의 한가운데 개봉책방을 방문했다.

아파본 사람이 만든, 아픈 이들도 눈치 안 보고 올 수 있는 서점  
 
 책방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조정원 대표
ⓒ 조정원
 
조 대표는 15년 차 심리치료사다. 첫 직장이었던 병원과 센터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했다. 어느 날 위에서 실적을 강조하며 10년 가까이 돌본 환자를 정리하라고 했다. 회의를 크게 느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 심리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로 이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퇴사 후 지친 마음을 달래려 제주도로 향했다.

"그때 매일 올레길을 20km씩 걸었습니다. 죽어도 해야겠다 싶은 게 뭔지 스스로 물었어요. 세 가지가 나왔죠. 글, 그림, 대화. 제주도 독립서점을 많이 방문했는데 책방지기의 취향이 담긴 곳이 다수였습니다. 제 관심사를 살려, 건강한 사람들은 더 건강해지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눈치 보지 않고 올 수 있는 심리 서점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입지는 자신이 살았던 서울 구로구 개봉동으로 정했다. 친숙하기도 했지만, 서울임에도 서울 같지 않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최근 대형 쇼핑몰이 생기긴 했으나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개봉책방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주민들이 서점에 가고 싶을 때면 '개봉동 서점'이라고 입력할 것 같았고, 그래서 개봉동을 거점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혜택을 드리고 싶었어요."

책방은 곧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다. 동네에 서점이 생기니 아이들이 호기심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 출신, 학교에 얼굴만 비치고 가거나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공유 서가를 만들어 아동·청소년 책을 사들였다. 책방에 종일 머무는 몇몇 아이들이 생겼고, 친밀감이 쌓이자 그녀를 '살자 이모'라고 불렀다. '잘 살아보자'라는 뜻이다. 그렇게 서점은 차츰 아이들에게 안전한 쉼터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도 어른도 모여 노는 책방이 되기까지
 
 공유서가의 모습.
ⓒ 나유진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의미 있는 곳이 됐다. 전공인 미술치료를 살려 그림 모임을 시작했고, 화요일이면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수업을 했다. 집에만 있던 분들이 밖으로 나왔다.

"배우자와 사별 후 우울증을 겪은 70대 아버님이 계십니다. 그림 모임을 하면서 장난기 있던 과거의 모습이 많이 돌아왔어요. 바깥 활동 덕에 활기를 되찾은 거죠."

올해 들어 더 많은 사람과 그림 모임을 하고 있다. 금천구 청년센터 오랑이 주관하는 커뮤니티 사업을 따냈기 때문이다. 시즌1엔 크루들과 그림책도 제작했고, 11월에 출판 기념회와 전시회를 연다. 시즌2도 준비 중인데, 시즌 1에 이어서 모두 무료로 운영할 예정이다.

사회초년생들은 주로 심리 상담을 받으러 온다. 전남 여수, 대구 등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조 대표는 사회생활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힘이 됐던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를 추천하곤 한다. 때로는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그림책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지만, 마음이 긁히면 제대로 돌보지 않아요. 곪아 터진 후에야 병원을 찾죠.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기 위해 찾는 공간, 문턱이 낮은 심리 상담 공간이 필요한 이유예요."
     
서가의 책은 매달 주제에 맞게 진열한다. 특정 시즌이면 보편적으로 생기는 마음의 병이 있는데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5월은 가족의 달이지만 이 무렵 가족 문제로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9월이면 계절의 영향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해 책을 선정한다. 

그래서인지 대형 서점에서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 심리학·정신의학 책이 이곳에서는 눈에 띈다. 

"독립서점에 가면 책방지기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어요.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만나는 책이라 더 유의미하게 느껴지고 돋보이죠. 그렇게 내 책이 됩니다. 이런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게 독립서점이에요."

간혹 책이 적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고민을 개봉러(단골 손님을 '개봉러'라고 부른다)에게 말했다가 그는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책이 많기를 바라면 대형서점을 가지, 왜 여기를 와. 이 공간의 취향에 매력을 느끼는 거지." 
 
 아이들과 대화 중인 조정원 대표
ⓒ 조정원
 
개봉책방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조 대표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독립서점이지만, 가능한 오랫동안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가족 고객이 단골 손님이 되면서 생긴 목표예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엄마가 와서 얘기를 나누는데 주말이면 아빠도 함께 와요. 아이에겐 책방지기라는 꿈이 생겼다고 해요. 이 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따뜻한 추억이 그리워 찾아오는 서점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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