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맨발 산책, 보고 듣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네
[이완우 기자]
▲ 강천산 맨발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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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의 강천산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981년에 군립공원 1호로 지정받은 곳이다. 강천산 왕자봉, 산성산 연대봉과 광덕산 선녀봉의 세 산이 병풍처럼 둘린 사이로 계곡을 이루었다. 강천산 정상 서쪽으로는 담양군 추월산(732.1m)이 솟았고 그 앞에 담양호가 출렁이고 있다.
강천산은 기암괴석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가 절경을 이루어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이 지역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성 퇴적암류인 응회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이 계곡의 입구 가까이 있는 병풍폭포에서 강천사를 지나고 현수교(구름다리)의 아래를 거쳐 구장군폭포까지 3km의 구간에 맨발 전용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다.
▲ 강천산 병풍 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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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랫길은 모래가 버슬버슬하여 버석거리는 느낌도 있고, 딱딱하게 다진 길의 느낌도 다르다. 산책로 곳곳의 맨발 걷기 효능을 설명하며 발 관리로 건강을 지키자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맨발 산책로가 계곡의 물소리를 배경으로 해 숲속으로 열려 있다. 산비탈 응회암 애추를 바라보며 모랫길은 계곡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진행하다가 개울을 몇 번 건너기도 한다.
화산재가 두껍게 쌓이고 무거운 압력에 의해 응회암이 되었다가, 풍화 침식이 되어 단애를 형성하여 병풍 모양인데 병풍바위라고 한다. 이 단애 위에서 물길이 쏟아져 병풍폭포이다. 이 병풍폭포에 신선이 내려와 목욕하고 노닐었는데, 어느 날 벗어 두고 간 갓이 갓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이 바위 아래 폭포를 지나가면서 폭포의 물줄기를 맞으면 지은 죄가 깨끗이 씻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 강천산 모과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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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맨발 산책로는 거지바위(거라시굴, 걸인바위) 앞을 지난다. 응회암 커다란 바위의 아랫부분에 동굴 형태가 있는데, 위 천장 부분이 절단된 후에 두 개의 바위가 되었다. 걸인들이 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행인에게 동냥을 구걸하여 강천사에 시주하여 나눔을 실천하고 깨달음을 구했다는 장소로 전해 온다. 이들은 어쩌면 걸인이 아니고 도인이 아니었을까? 표주박을 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구걸하는 거지처럼 자비를 실천한 원효 대사와 같은 경지의 수도자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강천사는 천년 고찰이다. 강천사가 사찰 이름에서 강천사가 유래하였다. 이 사찰의 이름이 강 굳셀 강은 응회암 단애가 연상된다. 우뚝 솟은 단애를 굳센 모습으로 인식하였고, 이 계곡의 샘물이 좋은 곳에 사찰을 지어서 강천사라 하였을 것이다. 강천사는 응회암 단애가 우뚝 강하게 솟은 계곡에 샘물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사찰이라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지형의 모습이 사찰 이름에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 강천사 현수교와 맨발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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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 앞에서 수령이 300년 이상 되고, 나무 높이가 20m가 넘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노란 열매를 달고 서 있다. 커다란 나무 밑동과 줄기가 옅은 갈색으로 바위 모양으로 보여서 응회암 절벽이 많은 주변 풍경과 조화롭다. 이 고장 출신의 실학자 신경준(1712~1781)이 심었다고 전해온다. 신경준은 고증학적 태도로 조선 시대의 지리학을 개척하여 역사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를 편찬하였다.
▲ 강천산 수좌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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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에서 구장군폭포 방향으로 맨발 산책길을 400m 정도 걸으면 아찔한 절벽을 건네는 강천산 현수교가 나온다. 이 다리는 북동쪽 강천산 왕자봉(584m)과 남서쪽 신선봉(425m)의 능선을 연결하고 있다. 이 다리는 강천산의 명물로서 구름다리 또는 출렁 다리로도 불린다. 강천산 현수교를 지나면 오른쪽 산기슭으로 작은 길이 열려 있다.
응회암 너덜지대를 지나 돌길을 170m쯤 올라가면 응회암 절벽에 자연스레 형성된 작은 동굴이 하나 나온다. 이곳을 수좌(首座)굴이라고 한다. 선원(禪院)에서 좌선 수행하는 곳을 선방 또는 좌선방이라고 하며, 선방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을 수좌라 부른다. 옛날, 이 동굴에서 두 수도승이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 수좌굴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동굴의 입구는 높이 3.5m, 폭이 3m이며 동굴의 길이는 5m 정도 된다. 화산이 폭발하여 공중으로 비산한 화산재가 쌓여서 굳어진 응회암의 특징을 동굴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이 동굴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색다른 풍경이며, 구장군 폭포를 이루는 절벽의 한쪽이 보인다.
▲ 강천산 바위떡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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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굴에서 내려오면서 응회암의 거칠고 건조한 바위 표면에 붙어 있는 석송강 부처손과의 양치식물인 바위손을 살펴본다. 이 바위손은 산지의 바위 지대나 절벽 등지에서 빠짝 마른 상태로 돌돌 말린 모습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오는 상록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이 식물은 가을날 떨어진 가랑잎처럼 바짝 마른 형태로 엎드려 있다가, 비가 내리면 엽록소의 푸른 색채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응회암의 거친 수직 바위 표면에 이끼가 자리 잡았고, 이끼의 군락에 더불어 바위떡풀이 꽃을 피웠다. 건조하고 거친 바위 표면에 자리 잡은 이 식물들이 마치 사막을 푸르게 하는 오아시스 같다. 범의귓과 쌍떡잎식물인 바위떡풀은 둥근 심장 모양의 잎으로 바위에 달라붙어 있어 쉽게 구별된다. 잎에서 올라온 길고 가는 줄기 끝에 흰색의 꽃이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핀다. 바위떡풀과 잎과 꽃이 비슷한 바위취가 있는데 바위떡풀은 흰색 꽃잎이고, 바위취는 위쪽 꽃잎 3장에 붉은 점이 찍혀 있다.
▲ 강천산 구장군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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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군립공원은 기암 절벽 사이로 숲이 우거지고 숲길이 열려있는 생태 관광지이다. 맨발 산책로의 모랫길을 걸으며 응회암 절벽 노두와 폭포, 바위 절벽 아래의 애추, 곳곳에 크게 작게 쌓아 올린 응회암 돌탑과 응회암 절벽에 뚫린 동굴 형태의 지형 등 화산 폭발의 뜨거운 열기를 추억처럼 머금고 있는 풍경 속을 몇 시간 걸어보았다. 강천사(剛泉寺)라는 절 이름도 굳세게 깎아지른 듯한 응회암 절벽 계곡의 맑은 샘이 솟는 곳에 자리한 사찰이라는 뜻으로 풀이해보게 된다.
▲ 강천산 맨발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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