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빈에서 생각한 서울 ‘사대문 안’
지난 9월 말 거의 20년 만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찾았다. 일주일 가까이 머물며 도시 구석구석을 걸었고, 흥미로운 모습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가로수가 유난히 많은 링슈트라세 도로 인접 지하철역 계단의 벽은 옛날 빈 성곽의 일부였다. 호기심에 알아보니 19세기 초 인구 급증으로 도시가 팽창해 몇백년 동안 빈을 보호해준 성곽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새로 정비한 파리를 본떠 성곽을 철거하고 넓은 도로를 건설했다. 바로 링슈트라세다. 가로수 무성한 널찍한 도로를 따라 국회와 오페라하우스 등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고, 오늘날 관광객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도시 공간이 형성되었다.
성곽 도시라고 하면 나로서는 서울, 아니 한양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한양과 빈의 차이점은 많지만, 강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성곽으로 둘러싸였다는 것, 권력이 중심이 되어 도시 출입을 관리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즉, 권력이 도시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했다는 의미다. 한양은 경복궁과 창덕궁, 빈은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왕들이 살았으며 한양에는 종묘와 사직단, 빈은 슈테판 대성당과 칼스 교회 같은 신성한 공간을 따로 두었다. 이 두 도시는 인접 지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한양 인근 경기도에는 선왕 일가의 묘소가 많고 빈의 옛 근교에는 쇤브룬궁 같은 왕의 여름 별장이 있다.
오늘날 서울과 빈의 성곽 안쪽 도심은 남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이미 두 군데인 데다가 한양도성 역시 등재 후보로 올라 있다. 빈의 ‘인네레슈타트’ 지역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역사적인 지역이면서 동시에 상업 지역으로서 사무실은 물론 화려한 쇼핑 거리에 레스토랑, 호텔 등도 즐비하다.
이처럼 비슷해 보이지만 성곽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서울은 이미 사라진 한양도성 복원으로 조선 시대 재현에 힘쓴다. 나아가 유네스코를 통해 세계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빈은 성곽을 철거하고 세운 링슈트라세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흔적을 부분적으로 보존하는 데서 그칠 뿐 복원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링슈트라세와 거리 건물 보존에 열심이다.
이런 차이는 나라의 주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의 한양은 19세기 말 주권을 잃으면서 일제 식민지의 도시 경성이 되었다. 성곽 철거는 곧 조선 역사의 말살 행위로 여겨졌다. 선진국이 된 한국이 한양 도성 복원을 통해 꿈꾸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아픔의 치유이며 회복이다. 반면에 빈의 성곽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스스로 철거한 뒤 상류층들이 애호하는 오페라하우스 같은 시설이 들어서면서 한결 아름다워졌다. 곧 빈의 문화 수준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는 이들의 자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복원 작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으로부터 점령당한 역사가 있다. 빈 역시 주권을 잃어 급기야 네 구역으로 쪼개져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열심히 복원한 것은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만이 아니었다. 역사도 함께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논리로 사대문 안을 바라보면 나라를 잃기 전인 조선 시대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이해된다. 문화유산은 물론 북촌 같은 오래된 역사적 경관의 보존은 일제강점기의 악몽을 씻고 문화적 자부심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통 건축양식 건물이 2010년대부터 곳곳에서 부쩍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대문 안을 조선 시대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군데군데 전통 건축양식 건물을 조금씩 지을 수는 있지만, 이미 그 이후에 들어선 고층 건물이 많고 도시의 기능도 다양하다. 서울역 같은, 조선 시대 전통 건축양식은 아니지만 오래된 건물들의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조선 이후 근현대를 거치며 쌓인 역사의 층이 밀집된 한 도시 공간에 공존하면서 각 시대의 요구와 도시의 기능에 따라 이들끼리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전통 건축양식을 복원한 이후 도시 경관을 보존해온 시간이 이미 오래된 빈은 짧은 시간 안에 격동의 변화를 겪은 사대문 안과는 조건이 다른 셈이다.
두 도시의 인구 감소 추이는 흥미롭다. 빈의 역사 도심 주거 인구는 1880년 7만3000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2023년 현재 1만6500명으로 집계되었다. 19세기 말 한양 인구는 20만 명 남짓이었는데 이들은 거의 다 오늘날 사대문 안에 살았다. 20세기 말 서울이 팽창하면서 사대문 안 인구도 줄어들어 2022년 현재 8만9000명이 살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빈의 역사 도심 인구 감소 폭이 훨씬 크다.
도시에는 상주인구가 있어야 기능도 다양해지고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 상주인구가 적은 빈의 역사적 도심은 관광객으로만 가득 차 테마파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유럽 많은 도시들이 비슷하다. 이와 달리 사대문 안은 여전히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난다. 이런 장점을 더 확대하려면 상주인구를 늘려야 하고, 그러자면 새로운 집과 건물이 들어서야 한다. 사대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거 기능 지역도 많지만, 주거 기능을 확대할 수 있는 지역도 많다.
종로구와 중구로 나뉘어 있는데 종로구에 주거 지역이 훨씬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상업 지역이 중구에 밀집했다는 역사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렇게 고정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 세계 많은 도시의 상업 지역에 주거 지역이 들어서고 있다. 뉴욕 월가나 도쿄 긴자 등의 사무실이 아파트로 개조되는 현상이 그 사례다. 그럴 때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특색 없는 콘크리트 숲으로만 채워지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서울시가 나서서 창의적인 건축을 적극 지원하는 건 어떨까. 이 시대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시간이 흐를수록 사대문 안의 깊은 역사성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역사와 오늘이 만나고 현재와 미래가 창의적으로 만날 때 서울에 어울리는 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테마파크 또는 콘크리트 숲보다 사대문 안의 갈 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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