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면 美처럼 실수"…바이든, 이스라엘에 9·11 꺼낸 이유
" “분노에 잠식되지 말라" "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이스라엘 국민에게 던진 충고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거국내각을 만난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은 미국의 2001년 9ㆍ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경험을 얘기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2001년 알카에다의 테러를 경험한 자신과 미국인이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 이스라엘 국민이 느끼고 있는 "충격, 고통, 분노"를 이해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은 "분노에 잠식되지 말라(don’t be consumed by it)"고 강조했다. 이어 바이든은 "9·11 이후 미국은 분노에 휩싸였다.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쟁취했지만 동시에 실수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바이든이 언급한 '실수'는 탈레반 축출을 목표로 시작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시작했던 이라크 전쟁 등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복수에만 급급해 '승리 이후'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지상전에 착수하거나 가자지구를 점령한다면, 예상 못했던 전쟁 장기화로 적을 이기고도 사실상 승리하지 못했던 미국의 쓰라린 경험을 재현할 것이란 우려를 전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이날 이코노미스트와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하마스 섬멸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지상전을 예고했던 이스라엘이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데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뿐 아니라 '힘에 의한 평화' 이후의 시나리오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행 가능한 안보, 정치 전략 없이 보복만 강조하면 자국의 정치적 혼란을 부르고, 더 독하고 강한 적을 만드는 '빛바랜 승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보복은 하마스가 판 '함정'에 빠지는 일"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든든한 우방국인 미국이 앞서 치른 20여년간 '테러와의 전쟁'이 이스라엘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스 폴락 미국 기업 연구소 수석 고문은 이코노미스트에 "지금 이스라엘인은 마치 9·11테러 직후 미국인들이 처한 것과 같은 상태"라며 "(지난 7일) 하마스 기습 공격 후 맹렬한 보복을 가하고 있지만, 이는 하마스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던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탈레반 정권이 거절하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해 11월 탈레반 정권을 몰아냈다.
그러나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던 탈레반 세력이 다시 세력을 규합해 미군, 친서방파가 세운 아프가니스탄 정권에 대해 게릴라식 저항을 본격화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됐다. 미군이 20년을 싸웠지만 '테러를 진압하고 자유를 심겠다'는 개전 당시 작전명 '항구적 자유'는 이루지 못했다. 2021년 미군이 철수한 지 몇 달 안 돼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유엔 무기사찰단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개전 전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우방은 물론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우려가 나왔지만, 악당을 처단하고 미국의 건재를 과시하겠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목소리에 압도당해 전쟁은 강행됐다. 전쟁 과정 동안 자국민 8000명 이상이 테러나 전투로 숨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유사하게 미국은 전후 이라크의 안정화에 실패했다. 득 없는 전쟁에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2011년 이라크 주둔군을 철수시켰지만, 그 사이 이라크 내 종파 분열은 극에 달하게 됐다. 오히려 한층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무장 이슬람세력 이슬람국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하마스 섬멸은 군사 아닌 정치 문제
미국의 실패가 이스라엘에도 재현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통해 하마스를 제거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이 직접 지배하는 것도, 우방과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압력을 버텨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5일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주관한 세미나에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무력화시킬 만한 능력은 물론 갖췄지만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이 더 넓은 세계에서 합법적으로 간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자 지역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에서 어린이 시신이 발견되고, 울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오는데 어떻게 국제적 지지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겠냐"며 우려했다.
이스라엘이 미국 등 서방의 압력에 대응할 정치·외교 역량이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현재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방국이 있지만, 미국이 자국 이익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면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관용이 어디까지가 될지 알아야 한다"며 "최근 우크라이나의 대(對) 러시아 잔혹 보복 행위가 있었을 때 미국이 보인 정치·외교 행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로렌스 프리드먼 전쟁학 명예교수는 "하마스를 진짜 뿌리 뽑는 건 단순히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며 이스라엘이 이 같은 내용에 대한 출구 전략이 마련되지 않을 때까지는 섣불리 지상전에 돌입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전쟁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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