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훈장 추서한 '백마 탄 여장군', 그의 삶과 의혹투성이 죽음
[윤성효 기자]
▲ 책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 김명시> 표지. |
ⓒ 도서출판 산지니 |
"김명시의 삶이 신명과 열정으로 가득 차지 않았다면,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과 의지가 없었다면 수심도 알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옥중에서 고문으로 아이를 잃고 7년의 옥살이를 마치고도 중국으로 탈출하여 총을 잡을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역사는 패배했을지라도 한 인간으로서 김명시는 승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 77주년인 2022년 8월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던 김명시(1907~1949)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다. 이춘 작가는 책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 김명시>(도서출판 산지니 간)를 펴내 '조선독립의 최전선에서 투쟁한 그녀의 뜨거웠던 삶'을 되살렸다.
앞서 정부가 김명시 장군에게 서훈을 주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월,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국가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했지만 당시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심사 과정을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창원마산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오빠(김형선), 남동생(김형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다. 옛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교)를 나와 서울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던 김명시 장군은 소련과 중국을 넘나들며 독립투쟁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녀는 조선의용군에서 유일하게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이었고,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리었다. 국제주의자이자 항일무장투쟁 전사였으며 노동자 출신의 노동운동가로서 맹활약한 여성 운동가였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고향에서조차 오랜 시간 동안 역사에 묻혀 있었다. 이를 열린사회희망연대가 발굴해 서훈받게 하고, 친인척을 찾아내는 등 노력을 했다.
이후 열린사회희망연대와 이춘 작가가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의 삶과 행적을 정리했다. 김명시가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마산지역의 역사적 배경부터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을 펼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흩어져 있던 김명시에 관한 자료와 기사를 모아 그녀의 생애를 복원했다.
책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김명시 형제와 동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 김명시가 생전에 했던 연설과 인터뷰, 연표 등을 실어 독자들이 김명시의 활동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7년 동안 신의주형무소에 수감
김명시는 3.1만세운동의 열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과 동포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일본 경찰과 군대, 나라를 빼앗긴 민중을 보며 자란 김명시에게 3.1운동은 학교나 다름없었다.
고려공산청년회 소속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 김명시는 일찍 상해로 파견돼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김명시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30년 5월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 사건'이다. 기념비적인 만주 항일무장투쟁 선봉대의 유일한 여성이 김명시였다.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7년 동안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김명시는 출소 후에 일본군과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는 중국 팔로군에 종군했다. 그녀는 1942년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만드는 데 참여했고, 적지에서 첩보활동과 선전공작을 펼치며 '한 손에는 총과 다른 한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싸웠다.
김명시는 조선독립동맹 천진 북경 책임자로서 일본군 점령지인 천진, 제남, 북경 등에서 조직을 만들고 투쟁했다. 이는 얼마나 담대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의용군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지만, 그들 가운데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은 김명시가 유일하다.
책에서는 김명시의 또 다른 정체성인 노동운동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당시, 기관지를 국내로 반입하라는 임무를 맡은 김명시는 인천 제물포에서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했다.
해방 이후에도 김명시는 혁명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여성운동 최대의 결집체인 조선부녀총동맹 간부로 활동하며 노동자, 농민, 소시민 부녀, 지식인 여성 등 광범한 여성의 참여와 지지 속에 일상활동과 정치 활동을 펼쳤다.
김명시는 농민과 노동자도 인간답게 대접받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연설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지방 강연을 다니며 각지의 부녀동맹 조직을 지원하고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해방을 외쳤다. 김명시는 부녀총동맹을 대표하여 모든 집회에 불려 다니는 인기 연사였다.
"명시 누나! 온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해"
김명시는 독립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죽음은 의혹투성이였다. 194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10월 유치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책의 몇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중의 자식을 고문으로 잃은 어머니 김명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임산부에게도 예외 없는 일제의 혹독한 고문 앞에서 김명시는 목숨 걸고 저항했다. 그러나 김명시는 법정에서 임산부인 자신이 당한 혹독한 고문보다 동지들의 고문사를 폭로했다."
"해방 직후 신문에 보도된 김명시의 활동은 일본 점령지에서 적후공작과 선전사업에서 단련된 그의 이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김명시의 연설에는 동포와 조국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 그 진정성이 피의 역사로 증명되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연설을 귀 기울여 들었고 감동했다. 당시의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여성들 사이에서 김명시는 영웅이고 최고의 롤모델이었다."
"김명시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9월 3일 무슨 혐의로 체포되어 10월 10일까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더 기막힌 상황은 누가 김명시의 시신을 수습하고 인수했는지, 또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비롯해 김명시 언니, 오빠, 남동생, 여동생 등 누구의 무덤도 찾을 수 없다. 독립운동이 죄가 되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대체 우리 독립운동사의 자랑인 '백마 탄 여장군'은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은 고향에서조차 잊힐 뻔한 김명시를 역사에 소환했다. 김명시의 생애와 함께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그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담겨 있다.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는 그녀가 사망한 지 7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이제야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서훈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연좌제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던 김명시의 친족을 찾아내고, 김명시 형제들에 관한 기억을 되살렸다. 김명시 장군이 서훈을 받기까지는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의 부단한 노력과 끈질긴 자료 찾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다.
책에는 김영만 고문이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김명시 장군이 살아 있다면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명시 누나! 온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해 온전하지 않은데 독립운동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라고 했던 내용도 실려 있다. 이춘 작가는 "서훈 신청이 이런저런 고비를 맞을 때마다 열린사회희망연대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한 매체가 <오마이뉴스>였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독립영웅 김명시 장군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춘 작가는 "아직도 독립공훈을 인정받지 못한 항일투사들이 많다"라며 "국가와 대중을 위해 헌신했던 항일독립영웅 김명시. 책을 통해 되살아난 그녀의 치열한 삶과 투쟁은 잃어버린 독립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의 자랑스러운 한 쪽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 김명시 장군 생가 표지석. |
ⓒ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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