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네 덕분에... 자녀로 인해 채워지는 삶을 바라며

권진현 2023. 10.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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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권진현 기자]

"3년, 5년, 10년이 고비다!"

한 선임의 말이었다. 직장생활에는 3번의 고비가 찾아오는데, 첫 위기를 잘 넘기면 다음 번 위기까지는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했다. 

직장 생활을 롱런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은 지도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3년은커녕, 1년이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비우는 신입들이 수두룩했다. 퇴사의 욕망은 어디에나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도저히 안 될 때는 큰 거 하나 지르는 것도 방법이야."

또 다른 선임의 말이었다. 힘들더라도 딴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직장 생활을 강제하는, 획기적이면서 강력한 방법이었다. 변변치 못한 내 차에 늘 불만이었던 팀장의 말마따나 새 차를 지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차에 큰 욕심이 없었다. 매일이 고비였지만, 하루만 더 버텨보자는 날들이 모여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자녀라는 이름

직장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 무언가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살다 보니 결혼을 하고 2명의 자녀도 생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모로서의 삶은 누군가의 보호와 돌봄 아래에 있는 삶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새로운 집에서 네 식구가 살기 위해서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일을 해야 했다. 대출금을 갚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빼박이다. 신차를 지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한 선택이었을까.

자녀들은 분명 기쁨을 준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출생률이 극단적으로 낮아도,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순전한 즐거움이 존재한다. 새벽같이 집을 나설 때 자고 있던 6살 둘째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뛰어나와 내 손을 잡아줄 때면 마음 가득 행복을 느낀다. 자녀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삶은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즐거움에 비해 객관적이고 확실한 고통을 수반한다. 여성의 몸은 태아의 성장과 출산을 위해 일시적인 기형(畸形)의 과정을 거친다. 출산의 고통을 가늠하지 못하는 나의 물음에 한 직장동료는 '콧구멍으로 수박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라고 일갈했다.

많은 경우 어린 자녀의 돌봄을 위해 경력 단절이 강제되는 것을 본다. 높은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많지만 수시로 아픈 자녀들을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한번 단절된 경력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가사와 육아와 밥벌이에 지친 부부의 삶을 메우는 것은 사랑과 배려가 아닌 고된 노동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조금이라도 집안일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무색하게 퇴근을 하기 전부터 나의 체력은 바닥나기 일쑤였다.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한 아내는 기진맥진한 채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부모와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기계 같은 삶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앗아갔다. 취미 생활을 할 여유나 체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삶을 존엄하게 만드는 개인의 취향, 품격과 같은 말들은 먼지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많은 것을 고민하고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빴다. 늘 업무에 부대끼면서도 자녀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보다 일과 자녀들이 우선되어야만 했다. 앞으로도 이런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삶인데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삶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첫째의 태명은 '빨딱이'였다.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이런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조용한 나와 대문자 I의 내향성을 가진 아내에게 에너지가 넘치는 딸이 태어났다. 부모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이는 적극적이고 쾌활하며, 무엇에든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책을 읽고난 뒤 간단한 소감을 독서통장에 적어놓았다.
ⓒ 권진현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통장 이벤트를 진행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쓰면 통장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1등을 하기 위해서는 20개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딸아이는 1주일이 안 되어 도장을 다 채웠다. 선착순 증정이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지만, 딸아이는 무사히 1등 상을 받았다. 
교회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3대 예배'시간에 말씀을 읽을 어린이를 지원받는다고 했다. 평소에는 목사님이 본문을 읽고 말씀을 전하는데 3대 예배 때는 어린아이가 강대상 앞에서 말씀을 읽는다. 지원자를 받는다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아이는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1주 뒤 딸은 전교인 앞에 서서 본문을 낭독했다.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 진행되었던 노래자랑에서 딸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권진현
 
10월 초 아이들을 데리고 경남 합천에 있는 영상테마파크를 방문했다. <미스터선샤인>, <써니>, <태극기 휘날리며> 등 인기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세트장은 볼거리가 많았다. 주위를 간단히 구경한 뒤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노래자랑이 있겠습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무대로 나와서 신청해 주세요. 3분만 받습니다."

왠지 딸아이가 하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은 이미 무대로 가고 있었다. 노래방 기계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2020년 이전 노래만 선곡 가능하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9살 딸은 뉴진스와 아이브가 아닌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를 신청했다. 

3옥타브를 가볍게 넘나드는 젊은 남성, 넘치는 끼와 무대매너를 보여준 아주머니를 제치고 딸은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다. 딸아이의 가창력이 뛰어났다기보다는 9살 꼬마의 당돌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시민들이 응원을 해주신 것 같다. 딸아이가 받은 1만 원 교환권으로 기분 좋게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같은 듯 다른 너를 보면서

"아빠,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아빠, 이거 (수육) 너무 맛있어." 

딸아이는 행동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다. 동사 위주의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나와는 달리, 딸의 말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차고 넘친다. 얌전한 부모에게서 이렇게 활발한 아이가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닮은 딸아이의 모습이 참 신기하다. 

노래와 독서, 글쓰기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이다. 외향적이라는 성격은 다르지만, 글과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딸아이는 나를 빼닮았다. 경제 활동과 육아라는 치열한 현실에 위축되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의 재미를 찾아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찌들기만 한 삶이 아닌, 마음먹기에 따라 즐기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 때문에, 먹고살 걱정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현실이 팍팍하다는 핑계로 내가 스스로 만든 틀은 아니었을까. 두려운 삶을 직면하고 극복하는 것보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삶이 힘들다고 단정 짓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나의 노동이 언제까지 자본으로 환산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늘 불안하다. 딸아이는 그런 나를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환기시킨다. 아직 재미있는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삶은 힘들지만, 여전히 즐길 만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웃을 일보다는 힘들고 괴로운 일 투성이다. 머지않아 딸아이도 실패와 거절을 경험하며 세상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축 처진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한 딸아이가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이 사는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극적으로 재미를 찾아가는 딸아이의 삶처럼 나 또한 활력 있는 생활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자녀들은 힘든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강력한 이유이자 동력인 것 같다. 자녀 때문에 힘든 아빠가 아닌, 자녀로 인해 채워지는 아빠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을 살아간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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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녀의 존재가 꼭 짐과 부담이 아닌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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