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윤의 야구 본색] 선수 육성, 스카우트와 지도자의 이인삼각
배중현 2023. 10. 19. 10:01
지난달 14일 많은 이들이 관심 속에 2024 KBO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10구 구단 모두 11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해 총 110명(고졸 79명, 대졸 29명, 기타 2명)의 선수가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드래프트 지명은 선수의 재능과 그 재능을 닦아 온 노력이 '타인의 인정'을 받은 결과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은 구단 스카우트다.
스카우트란 선수를 판단(발굴)하고 입단 계약(교섭)을 한 뒤 팀에 활용(육성)하는 데 능숙한 전문가다. 강팀은 훌륭한 코치진과 선수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고 해도 평균 수준의 선수를 데리고 우승을 다투긴 어렵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는데 결과가 좋게 나올 수 없다"면서 "선수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스카우트는 비지땀을 흘리며 원석을 발굴한 뒤 교섭해 영입한다. 단순히 원석을 모으는 데만 머무르는 건 아니다. 전력 향상을 위해 부족한 포지션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느 포지션을 강화해야 하는지 등을 두루 고려한다.
실제 어느 팀에서 있었던 일이다. 퓨처스(2군)리그 한 감독이 스카우트에게 "다른 팀에는 공이 빠른 투수가 많은데 왜 우리 팀에는 그런 선수가 드문가"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에 스카우트는 "(우리 팀의 선수는) 투구 밸런스가 좋은 투수들이라서 몸을 잘 만들면 장래 팀에 쓸모가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그 스카우트의 속내는 "지난 몇 년간 공 빠른 투수를 영입해 제구 등이 향상한 사례가 거의 없지 않냐"였다. 몇 년 후 퓨처스 감독이 부러워한 '공 빠른 투수'는 여전히 2군에 있었고 공이 느리다고 푸념한 선수는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이처럼 선수 육성은 잠재력이 풍부한 원석이 있고 그 원석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가 만났을 때 잘 이루어진다.
수년 전 가와니시 도시오 전 긴테쓰 버팔로스 스카우트 부장을 만난 적이 있다. 고인이 된 그는 한신 타이거스와 긴테쓰에서 40년간 스카우트로 활약했다. 일본에서는 고(故) 기니와 사토시 전 닛폰햄 파이터스 고문과 함께 '스카우트 중의 스카우트'로 불린다. 그는 "스카우트 경험이 없는 지도자나 프런트(고위층)는 선수 평가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 장단점만 파악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며 "거리낌 없이 스카우팅에 훈수를 두고 혹은 개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육성 실패의 책임은 오로지 스카우팅을 잘못한 데 있다고 핑계를 댄다. 육성 실패는 대개 한 쪽의 책임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스카우트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느냐"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보통 은퇴 선수가 스카우트를 시작하면 2년 정도 시간을 보내야 '정식 스카우트'가 됐다고 판단한다. 2년은 눈을 낮추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이건 KBO리그도 마찬가지다.
초보 스카우트로선 장기간 함께한 프로 선수를 생각하면 아마추어 선수의 기량과 숙달도 등이 크게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초보 스카우트 눈에는 프로 유니폼이 어울리는 선수가 10~20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신인 드래프트가 보통 2라운드(총 20명 지명)에서 끝난다는 얘길 한다. 선수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추는 시간이 필요한데 여기서도 베테랑 스카우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을 주로 볼 것인가" "지난 경기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걸 물어보면서 적절한 조언과 지시에 따라 초보 스카우트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과정에 따라 스카우트의 성장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어느 전직 스카우트 팀장은 초보 스카우트에게 "선수의 장점을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단점은 슬쩍 봐도 손쉽게 여러 개를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장점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긴 시간 세세하게 살펴야 비로소 보인다. 장점을 찾는 연습을 한 뒤 단점의 단계(수정 난도)를 파악하면 선수 평가의 기준이 확립된다.
다만 선수 장단점만이 아닌 팀의 상황(포지션별 뎁스와 코치진과의 궁합 등) 등을 고려해 입체적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더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 경험을 쌓았을 때 비로소 스카우트로 제 몫을 하게 된다.
육성은 선수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도, 스카우트도, 프런트도 신구조화 속에 육성이 필요하다. 그런 팀이 강팀이다.
야구 칼럼니스트
정리=배중현 기자
야구 전문 칼럼니스트로 네이버에서 아마야구 등을 다루는 '야반도주'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기무라 고이치 기자가 네이버에 연재한 '야큐리포트'를 번역했으며, 김성근·김인식 감독 등과 함께 쓴 '감독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가이드북', '프로야구 크로니클', '킬로미터', '포수 교본' 등 다수의 야구 서적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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