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16년...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은 이렇게 산다 [소셜 코리아]

박혜영 2023. 10. 1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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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이 문제... 비극적 현실 외면하지 말아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박혜영]

 팔레스타인 여성이 2023년 10월 15일(현지 시각) 가자지구 중심 데이르 엘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 밖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시신에 입을 맞추고 있다.
ⓒ AP/연합뉴스
 
복잡한 문제일수록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인이 단순한 경우가 많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분쟁이 그렇다.

<CNN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가자지구에서 지난 15일(이하 현지 시각)까지 이스라엘의 대규모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26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며칠 전인 7일 새벽에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기습공격과 인질 납치를 감행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사망자가 800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2021년에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모스크에 진입해 유대인 정착촌 확대에 항의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경 진압했다. 그때 시작된 11일 전쟁으로 2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 그 전에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지상, 지하, 해상까지 모두 봉쇄해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켰다. 그로 인해 가자지구는 전체가 거대한 난민촌이자 지상 최대의 감옥이 되었다. 물론 75년 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자지구로 추방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이집트, 지중해와 3면이 접해있으며, 세종시 정도의 크기에 230만 명이 살고 있는 최고의 인구 밀집 지역 중 하나다. 이스라엘은 2005년 평화협정에 따라 가자지구에서는 유대인 정착촌을 폐쇄하고 군대도 철수했다. 하지만 그 대신 6m가 넘는 높이에 카메라와 레이더 시설까지 갖춘 65km 길이의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다.

그로 인해 가자지구 사람들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이스라엘 쪽의 에레즈 검문소와 이집트 쪽 라파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 외에는 없다. 이제는 이마저도 막혀버렸다. 이 거대한 벽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국민을 지키는 보호벽이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평생 자유를 뺏긴 절망의 벽이다. 

이스라엘 쪽 검문소는 이집트 쪽과 마찬가지로 상시 이용할 수 없다. 언제 열릴지, 얼마 동안 열릴지, 누가 통과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검문소 마음대로다. 가자지구 사람들 일부는 매일 두세 시간씩 검문을 받으며 이스라엘에 가서 저임금 노동을 한다. 장기간의 봉쇄로 가자지구의 경제는 파탄 났고, 이스라엘은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지구

사람들이 오가는 길만 막힌 것이 아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공급하는 전기, 수도, 생필품으로 연명하는데, 이스라엘은 이 통로도 계속해서 축소했다. 유로-지중해 인권모니터와 물·환경·건강 글로벌 연구소에 따르면 정화시설이 파괴되어 지하수의 97%가 심각한 오염 상태인데도 식수 판매 차량조차 출입이 금지되는 일이 잦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엔이 지원하고 이스라엘 당국의 승인을 받은 물자도 이유 없이 항구에 억류되거나 거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2021년 옥스팜은 보고했다.

잦은 폭격에도 불구하고 복구 작업은 원조 물자 부족과 이스라엘의 방해로 진척이 없다. 해수 담수화 설비는 오래전에 가동을 멈췄고, 거리엔 오물이 넘쳐나고, 유일한 발전소는 수시로 전기 공급이 차단된다. 먹을 것, 입을 것, 의약품과 같은 필수 물자조차 구할 수가 없다. 이런 봉쇄가 무려 16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가자지구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 침공에 앞서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이주명령을 내렸다.
ⓒ 연합뉴스/EPA
 
바로 이런 것이 봉쇄다. 가자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18세 미만의 아이들은 지난 16년간 한 번도 평화로운 세계를 본 적이 없다. 이스라엘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여행을 할 때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비처럼 떨어지는 백린탄을 맞고 부모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오죽하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021년 5월 유엔 총회에서 가자지구 아이들의 삶에 대해 "지옥을 겪고 있다"고 했겠는가. 2022년 세이브더칠드런 보고서에 따르면 공포, 불안, 슬픔, 절망의 늪에 빠져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의 아이들이 전체 조사 대상 아이들의 80%가 넘었다.

울면서 잠이 들고 깨어나면 또 극도의 긴장과 공포 속에 우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하마스는 절멸시킬 수가 없다. 바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하마스가 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힘을 동원하여 자국의 영토를 늘리려 할 때, 국익을 앞세워 약자를 절멸시키려 할 때, 아이들의 미래는 산산이 부서지고 삶의 희망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약자들에 대한 탄압과 봉쇄와 폭격은 강자들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준다. 부패로 실각했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작년 총선에서 다시 총리가 되었다.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로 반대가 컸으나 강력한 시오니즘 극우주의로 이를 물리쳤다. 우파연정이 장악한 의회는 지난 7월 법을 개정해 네타냐후가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총리직에서 끌어내릴 수 없도록 했다. 최장기 총리로 등극한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팔레스타인이 개입했다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전쟁을 선포했고,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당장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무자비한 폭격과 함께 전력, 식수, 식량을 전면 차단하고 24시간 내에 이주하라고 명령했다. 미국은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원을 약속하고 항공모함을 배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레바논의 무장세력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그 어떤 세력도 가자지구의 어린이와 여성들의 고통을 염려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도 약자를 위한 정치는 없다. 봉쇄는 보복을 부르고 보복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강자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닌 혐오와 증오의 정치를 부추겨 무고한 약자들의 희생 위에 자기들만의 사익을 쌓는다.

철창에 갇힌 개가 주인을 물었다면?

이스라엘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아브라함 버그는 '더 강력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며 혐오와 증오의 정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영토확장을 원한다면 제일 빠른 방법은 팔레스타인에 수용소를 짓고 인종분리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만약 유대인만의 국가를 만들고 싶다면 제일 쉬운 방법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통째로 추방하고 분리주의 장벽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방법은 공존뿐이다. 강력한 이스라엘 정책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유대주의와 함께 갈 수 없고, 정착촌 확대는 공생의 희망과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자들은 언제나 타협과 공존 대신 혐오와 증오를 선택한다. 지난 3월 이스라엘의 재무장관은 팔레스타인을 지도에서 지워버리자고 촉구했다. 이스라엘 집권 여당은 지난 10일 미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실상의 학살을 주문했다.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에 백린탄을 쏘며 자기들은 사람처럼 생긴 동물(human animals)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독일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했다. 나치는 유대인을 인간말종(untermensch, sub-human)이라 부르며 개, 돼지 취급을 했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백인 식민지배자에게는 흑인 노예가 개, 돼지였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절망에 연민을 느낀다면 가자지구에 봉쇄된 팔레스타인의 분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만약 개라면, 그 개는 평생을 좁은 철창에 갇힌 채 주기적인 매질과 간헐적인 굶주림 속에 두려움, 불안, 절망으로 날마다 온몸을 떨고 있다. 그런 개가 주인을 물었다면 그 책임이 개에게만 있을 것인가? 약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개, 돼지로 보는 한 언제든 저항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급속한 기후위기로 지구 행성의 내일을 알 수 없는 지금, 혐오와 증오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마치 타이타닉호 안에서 더 좋은 자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는 것과 같다. 커다란 빙하를 들이박고 곧 칠흑같은 바닷물 속에 모두 빠져버릴 텐데도 인류는 혐오와 증오로 서로를 죽이겠다고 물고 뜯는 것이다.
 
 박혜영 / 인하대 영문과 교수
ⓒ 박혜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혜영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낭만주의 영시를 전공했습니다. 생태정의, 기후위기, 탈성장 전환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으며, 생태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룬 저서로 <느낌의 0도: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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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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