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도토리밥… 다람쥐 밥 아니고 사람 밥
서지영 2023. 10. 19. 07:03
붕어 낚시는 꼭 붕어를 낚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붕어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상황을 꽝이라고 하는데, 붕어 낚시의 기본이 꽝입니다. 낚시꾼은 노력만 할 뿐이고, 꽝과 면꽝을 가르는 일은 붕어가 합니다.
붕어가 낚일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물가에 가서 낚싯대를 펴고 앉는 까닭은, 낚시꾼들에게 물으면 만 가지의 이유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만 가지의 이유에 공통된 것이 있는데, 평온입니다. 자연이 주는 평온입니다.
붕어 낚시꾼이 앉는 자리는 물가이나 그 주변은 산이고 논이고 밭입니다. 낚시꾼은 자연 안에 앉아 시간을 보냅니다. 봄에는 저 멀리 산 중턱에 점점이 피어난 진달래에 순박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여름에는 물 위로 떨어지는 소나기를 보며 세상의 먼지를 씻어냅니다. 가을에는 물에 비친 맑은 하늘만 보아도 행복합니다.
투둑 투두둑. 가을에는 낚시꾼의 등 뒤에서 이런 소리가 납니다. 밤이나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붕어가 나오지 않으면 슬며시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갑니다. 막 떨어진 밤은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맛은, 없습니다. 밤은 광에서 한 달 정도 저장했다가 먹어야 맛있습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나무에서 막 떨어진 밤을 입에 뭅니다. “아우, 떫어” 불평을 하면서 먹습니다. 맛이 아니라 재미로 먹습니다. 도토리는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맙니다. 생으로는 도저히 입에 넣을 수가 없는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지역을 여행할 때였습니다. 참나무가 참 많았습니다. 땅바닥에 도토리가 잔뜩 깔려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도토리를 안 주워가나 봅니다.”
“도토리는 안 먹어요. 돼지에게나 먹이지요.”
지구에서 도토리를 먹는 지역이 얼마나 되는지 검색해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도토리 요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도토리묵처럼 일상 음식으로 정착해 있는 경우는 없는 듯합니다. “도토리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도토리 요리법에서 도토리는 예부터 먹어온 식재료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가 떫은 것은 탄닌 때문입니다. 다람쥐나 멧돼지는 괜찮으나 인간이 생으로 먹으면 탈이 납니다. 껍데기를 까서 물에 우려야 합니다. 이를 다시 빻고 끓이고 식히고, 손이 참 많이 가는 도토리입니다. 한반도 외 여러 지역의 인간이 도토리 식용을 포기한 이유일 것입니다.
고려 말에 윤여형이 지은 상률가(橡栗家)라는 시가가 있습니다. 상(橡)은 도토리나무이고 률(栗)은 밤나무입니다. 윤여형이 말하는 상률(橡栗)은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또는 도토리와 밤이 아닙니다. 도토리밤입니다. 도토리를 밤처럼 여겨 붙인 이름이 상률(橡栗)입니다. 함경도 사투리에 도톨밤이란 말이 있는데, 상률은 도톨밤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해 보입니다.
도톨밤 도톨밤 밤이 밤 아니거늘 /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지었는고 / 맛은 씀바귀보다 쓰며, 색은 숯보다 검으나 / 요기하는 덴 반드시 황정보다 지지 않나니 / 촌집 늙은이 마른 밥 싸 가지고 / 새벽에 수탉 소리 듣고 도톨밤 주으러 가네 / 저 만 길 벼랑에 올라 / 칡덩굴 헤치며 매일 원숭이와 경쟁한다 /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 / 두 다리는 동여놓은 듯 주린 창자 쪼르륵 / 날 차고 해 저물어 빈 골짜기에 자네 (후략) ‘한국고전번역원, 양주동 번역, 1968’
윤여형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도토리를 주우러 산길을 헤매었던 우리 조상의 삶을 기록해두었습니다. 그 시절에 도토리로 묵을 해서 먹는 것은 호사였을 것입니다. 도토리묵은 손이 많이 가고 수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도토리밥이란 게 있습니다. 도토리 껍질을 까서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후에 솥에서 삶는 것이지요. 도토리밥은 말만 들었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산에서 도토리와 밤을 주우면 안 된답니다. 다람쥐 밥입니다. 도토리가 한때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의 밥이었음을 붕어 낚시를 하며 기억해냅니다. 힘들어도, 그래도 굶어 죽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붕어를 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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