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늘리면 이공계 위기 빠진다?…"오히려 기회" 반론 근거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공계 인재가 대거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의대 정원 확대를 기회로 삼아 의과학·공학 분야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정부는 연말까지 의대 정원 규모를 결정해 발표할 방침이다.
의대 열풍…고신대 의대가 서울대보다 가기 어렵다
이공계나 자연계열에서는 인재 유출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 이미 최상위권 대학의 입학 성적이 지방 의대보다 낮아지고 입학생의 이탈 현상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격생의 상위 70% 성적을 공개하는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 따르면, 25개 의대 중 고신대 의예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수학·탐구 영역 백분위 점수가 95.25점으로 가장 낮았다. 하지만 이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95.25점)와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95.25점)보다 높은 수치다.
서울대 자연대 합격선이 연세·고려대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3학년도 서울대 정시 이공계열 합격점수는 93.9점으로 고려대(94.9점), 연세대(94.2점) 다음으로 떨어졌다. 입시업계는 서울대 합격생이 의약학계열 추가 합격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나타난 특이 사항으로 보고 있다.
“누리호 기적 더는 안 나올 것”
한 서울대 공대 교수는 “의대보다 공대 입학 성적이 높았던 시절의 인재들이 만든 누리호의 기적은 이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소재 대학 한 전자공학과 교수는 “서울대조차 수백명씩 자퇴하고 의대로 편입하는데 1000명만 증원해도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대 공대 교수는 “기계, 항공 쪽보다는 의예과에서 공부하는 과목과 상당수가 겹치는 화학공학 쪽의 이탈이 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 보장으로 인기를 끌었던 계약학과들도 의대 열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모양새다. 올해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 정시모집에서 모집인원의 155.3%에 달하는 인원이 등록을 포기했다. 입시업계에선 이들 중 상당수가 의·약학계열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봤다.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한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는 “수시모집에서도 100%가 다 빠져나간다. 대부분 휴학하고 의대에 가려고 반수를 한다더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해 의과학자 양성해야” 반론도
의과학대학 설립을 추진 중인 대학을 중심으로 의대 증원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포항공과대학(포스텍)은 의과학대학 및 부속 병원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은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방사선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 중인 부경대의 손동운 교수(방사선 의과학대학 설립 실무위원장)는 “의료의 패러다임이 정밀·맞춤 의료로 바뀌고 있다”며 “새로운 진단기기를 연구·개발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소양을 가진 공학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늘어난 의대생을 임상이 아닌 연구 분야로 진출시킬 대책도 동시에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은 “학생 선발 과정에서부터 과학에 관심 있고 공학과 결합한 교육과정을 완주할 수 있는 학생을 잘 가려내야 이탈 현상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의 질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과학대 설립을 추진 중인 한 대학 총장은 “의과학대로 정원이 일부 떨어진다 해도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위한 대대적인 교수, 시설 투자가 담보돼야 정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의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인증을 받은 학교의 졸업생에게만 의사 면허 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평가원은 교육과정, 학생과 교수, 교육자원, 대학운영체계와 행정 등 9개 영역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매년 대학에선 매년 평가인증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기준이 엄격하다. 예컨대 의대의 경우 교수 1인당 8명의 학생 수를 맞춰야 한다. 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학들도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윤서·최민지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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