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가고 가코 왔다...평민 된 언니 자리엔 '일본판 다이애너'

전수진 2023. 10. 19.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 왕실 가코 공주(오른쪽)와 2020년 결혼으로 평민이 된 언니 마코. 2016년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황실 소식 코너엔 18일, 파란색 단정한 정장 차림 여성이 이목을 끌었다. 나루히토(徳仁) 일왕의 조카, 가코(佳子) 공주다.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2020년 11월 결혼해 평민 신분이 된 마코(眞子)의 세 살 터울 친동생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가고시마(鹿児島)에서 열린 국가체육대회 폐막식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10장 넘는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가코 공주가 표창장을 수여하거나 연설을 하는 등의 사진들이다. 일본 국민이 각별한 관심을 갖는 황실의 소식을 다루는 이 코너에 가코 공주가 등장하는 빈도가 커지고 있다. 언니의 부재 속, 가코 공주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음달 1일부터는 남미를 방문한다고 NHK가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일본과 페루의 국교 수립 150주년 기념행사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해외에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로 본격 활동하는 셈이다. 미국 피플 매거진 역시 지난해 "언니가 떠나면서 동생이 그 자리를 대신해 더 바쁘게 됐다"며 가코 공주의 공무 활동 증가에 주목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 후미히토 왕세제의 2020년 가족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언론은 왕족을 칭할 때 '님(さま)'라는 존칭을 붙이지만, 마코 전 공주엔 이제 '씨(さん)'를 붙인다. 예식도 없이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마코 전 공주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고 운동화에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활보하는 사진이 자주 파파라치 컷으로 전해진다. 반면 아사히신문 18일자의 가코 공주는 모자에 장갑까지 갖춘 정장 차림이다. 가코 공주가 맏딸인 언니에 비해 춤을 좋아하는 등 보다 자유 분방하다는 평이 일본 내에서 일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매의 입장이 뒤바뀐 셈이 된다.

가코 공주에 대해선 그러나 일본 내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춤을 추는 사진이 유출되는 등 가코 공주 본인의 문제도 있지만, 아버지인 아키시노노미야 왕세제 부부 가족의 이슈도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나루히토 천황과 그의 동생으로 후미히토(文仁)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왕세제 사이는 미묘하다. 후미히토 왕세제가 '천황 정년제'를 주장하며 형을 견제하고 자신뿐 아니라 아들 히사히토의 즉위 야망을 드러냈다는 식이다. 그러나 마코 전 공주의 결혼 관련 논란 등으로 여론의 추는 나루히토 일왕가에 기울어 있다.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愛子) 공주가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데다, 성인식에 보석 티아라를 제작하는 왕실 전통을 깨고 고모의 것을 빌려 쓰며 근검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대비된다. 가코 공주는 그러나 올해 정부 시설을 세금으로 리모델링한 곳에서 생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결혼해 왕실과 일본을 떠나는 언니와 이별하며 와락 껴안는 가코 공주. AP=연합뉴스


그럼에도 가코 공주에 대한 관심이 부정적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평민이 된 언니가 미국으로 떠나는 송별 장면에서 언니를 와락 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 면모에 호감을 느끼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가코 공주가 수동적인 왕실 여성의 이미지를 깨고 젠더 평등 또는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공무 활동 연설 등에 넣는 것을 두고도 젊은 세대에선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일부 서구 외신에선 자매를 두고 '일본의 다이애너'라는 평도 내놓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는 강인함도 있다는 점에서다. 가코 공주가 앞으로 존재감을 공무 활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 시선이 집중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