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뒤엎고 "美소비자 돈 잘 쓴다"…국채금리 상승, 한은도 고심
미국 내 소비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지표가 나오면서 고물가 흐름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1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채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향후 이어질 미국의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9월 물가상승률만 보면 한국과 미국이 같은 수준(3.7%)임에도 세부 지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면서다.
1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9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7% 늘어난 7049억 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0.2%)를 0.5%포인트나 웃도는 수준이다. 앞서 전문가들은 “저축이 고갈되고 각종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학자금 대출 상환이 재개되면서 소매 판매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봤다. 이런 예상을 뒤엎고 소비자 수요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고물가 흐름이 더욱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이날 발표된 9월 산업생산 역시 제조업‧광산업 호조로 전월 대비 0.3% 늘어나 2018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비가 제조업 경기 안정화를 돕고 있다”며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추정치를 상향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가 미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탄탄한 경기 지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었다. 에드워드 모야 오안다증권 수석시장분석가는 “추가 긴축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측면에서 좋은 소식은 곧 나쁜 소식”이라며 “미국 경제는 아직 침체로 향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채금리는 곧바로 반응했다. 금리 기대에 따라 움직이는 2년물 국채금리는 5.21%를 기록해 2006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글로벌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라 불리는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전날보다 0.13%포인트 오른 4.83%를 나타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 최근 며칠간 하락세(국채가격 상승)를 보였지만 이날 4.8%대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CME페드워치는 내년 6월까지 현행 기준금리(5.25~5.5%)가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12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38%로 보고 지난주보다 10%포인트가량 높게 잡았다. 내년 금리 인하 횟수를 3번으로 전망했던 것도 이번 발표 이후 2번으로 낮췄다. Fed 인사들이 최근 장기금리 급등세가 기준금리 인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오긴 했지만 추가 긴축 가능성을 아예 닫아둔 건 아니다. 이날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장기금리가 금융 환경을 경색시키는 건 맞지만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한은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Fed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점,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률 상승 폭이 확대된 점 등은 기준 금리 인상 당위성을 높이는 요소지만 추가 긴축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경기가 비교적 탄탄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등 금융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월 나란히 3.7%(전년동월대비)를 기록했지만, 양국이 숫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이유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한은 입장에선 19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채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미 양국 간 장기금리 동조화 현상 등을 고려하면 미국 상황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미 미 긴축 장기화 우려는 국내 시장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태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대출금리도 오르면서 긴축의 정도는 자연스레 더 커진 상황”이라며 “시장금리의 상승이 역설적으로 추가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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