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참패가 마땅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 자체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 여당의 모습이다.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할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선거 나흘 뒤에야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차분하고 지혜롭게 내실 있는 변화 추진”이란 입장을 내놓은 지 이틀 뒤였다. 엄중한 국민 심판을 받고도 대통령의 지침이 있고서야 움직이는 것은 정상적인 여당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란 말을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쇄신한다면서 총선 공천 실무를 담당할 당 사무총장엔 TK(대구·경북) 출신 친윤계 인사를 박았다. 개혁 인사 한 사람 모셔올 강단도, 능력도 없는 게 국민의힘의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6개월 뒤 총선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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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여당다운 책임감 없어
3대 개혁 주저하고 포퓰리즘 고수
환골탈태 없이는 신뢰 회복 못해
」
현재의 국민의힘은 역대 보수 여당 가운데 최약체란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 국회의원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상하수직적으로 보이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만도 아니다. 집권당은 국정과 민생을 책임지고 있다는 소명의식이 출발점이다. 공천과 선거는 그다음이어야 한다. 그런 결의가 없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문제다. 사례가 많다.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렸는데, 그 개혁에 몸을 던지는 여당 의원을 찾기 어렵다. 노동개혁 특위는 ‘시럽급여’라는 막말 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국민연금 개혁이 흐지부지돼 가고 있는 걸 보면서도 누구 한 사람 나서지 않는다. 지난해 7월 구성된 국회 연금특위는 개점휴업인 채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 여당이 절박하게 움직인 것도 없다. 이대로면 32년 뒤인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은 고갈된다. 느닷없는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에 대한 과학계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살아가는 청년 과학자들이 좌절하고 분노했다. 국민의힘은 애초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과학계와 소통하지도 않았다. 여당의 존재감은 없었다.
국가 경제에 꼭 필요한 개혁입법에 결사적으로 임하지 않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재정을 아껴 쓰고 국가채무를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재정준칙은 국회에서 1년 넘게 방치돼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비협조를 탓하지만, 국민의힘 역시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나랏빚은 1100조원을 넘었고, 올해 재정(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준칙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게 된다. 국회가 처리하지 않아 일몰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사례도 있다. 유동성 위기 기업의 신속한 정상화를 지원해 주는 워크아웃 제도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기업 회생은 한층 어렵게 됐다. 국민의힘은 기촉법 일몰을 막기 위해 매달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선거에 불리하다 싶으면 발목 잡는 어설픈 포퓰리즘은 고수하고 있다. 올 6월 말 기준 한국전력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지만 국민의힘이 번번이 막아서고 있다. 요금 인상을 미뤄 한전을 부실덩어리로 만든 민주당과 무엇이 다른가. 한전은 올해도 약 7조원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결국 국민 부담만 키운다.
정작 반도체 패권 경쟁 등 세상 변화엔 둔감했다. 작년 말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안이 기획재정부 반대에 부닥쳐 8%로 후퇴할 때 국민의힘은 방관했다. 당시 민주당 안이 10%였다. 무소속이었던 양향자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 반도체산업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며 홀로 절규했다. 국민의힘은 일주일 뒤 윤 대통령이 세제지원 확대 지시를 내리자 바로 입장을 바꿨다.
국민의힘이 집권당답지 않은 이런 책임감과 역량으로 국민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했다면 대단한 오판이다. 집권 1년반 동안 줄기차게 전 정권 탓을 했지만 자기 반성은 없었다. 참패는 마땅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3월 이래 7개월간 이런 여당을 이끌었고, 이번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그런데도 사퇴 요구가 지나치다고 할 것인가. 환골탈태 없이 국민의힘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길은 없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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