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실학산책] ‘명철보신’은 보신주의 아니다

2023. 10. 1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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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온 세상은 썩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天下腐已久矣)”라는 다산 정약용의 탄식, 그곳에서 경학자·실학자·시인 정약용 학문의 전체인 ‘다산학’은 발원한다. “온 세상은 썩어 문드러졌다(부란·腐爛)”라는 대목에서 비탄이 더 심해져 높아져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그대로 두고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다산, 대체 그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데에서, 다산의 경학(經學)연구는 시작됐다.

다산 저술의 절반에 가까운 232권은 4서(書) 6경(經)에 대한 연구다. 다산이 생을 걸고 고단한 유배생활에서도 밤낮으로 경학을 계속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공자와 맹자의 본원유교는 4서 6경으로 집약됐는데, 이런 본원유교의 경전을 후대에서 잘못 해석하며 인간의 심성이 바르게 되지 못했고, 폐법(弊法)·학정(虐政) 또한 경을 잘못 해석한 이유에서 나왔다는 진단, 그래서 본원유교인 경(經)의 본뜻을 제대로 밝혀야만 부패한 세상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이 다산이었다.

「 “세상이 썩었다”는 다산의 탄식
경전 문구를 기회주의로 오독
선악 구별과 약자 보호가 본뜻
우리 사회의 인사난맥 돌아봐

경학자 정약용의 학문이 무르익은 전남 강진 다산초당. 2017년 실학기행 참가자들이 다산초당에 들러 다산의 애민사상을 돌아보고 있다. [중앙포토]

다산은 ‘무위이치(無爲而治)’라는 『논어』의 네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부란’한 세상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 본뜻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는 길고 긴 글을 남겼다. 다산 이전엔 대체로 ‘무위이치’를 ‘하는 일 없이도 나라는 다스려진다’라고 오독했다. 그래서 다산은 ‘좋은 정치는 영원히 오지 않고 말았다’고 믿었다. 그의 깊은 통찰,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기를 그렇게도 바라던 다산의 애민정신을 그런 경의 해석에서 찾을 수 있다.

요순(堯舜)시대, 세상에서 어질고 뛰어난 사람을 골라 적시적소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용인(用人)하고, 그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는지를 감찰했기에, 실제로 요순은 무슨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졌노라는 찬양의 뜻으로 ‘무위이치’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엉터리 해석으로 나라는 기울고 세상은 부란해지고 말았으니, 이는 얼마나 옳은 다산의 해석인가. 다산은 경의 본뜻을 제대로 밝혀 성인의 가르침을 옳게 파악하고 실천해야 세상이 바르게 간다고 여겼다.

『시경』 대아편에 ‘기명차철 이보기신(旣明且哲,以保其身)’이라는 시가 있다. 『중용』에서도 인용했는데, 임금을 보필하는 고관대작이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지침으로 사용됐다. 글자를 축약해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는 성어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네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라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밝히는 것이 명(明)이고, 불리한 경우 침묵할 줄 아는 것은 철(哲)이라 하고, 몸을 온전하게 지키며 재난을 면하는 것을 보(保)라 한다는 해석으로 보신주의(保身主義)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던 것이 다산 시대의 일반적 해석이었다.

여기에 다산은 당대의 학자요 문장가였던 대산 김매순과 토론하여 대산의 동의를 얻어 기회주의적이고 보신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나라를 잘못 다스렸던 당로자(當路者)들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선악을 분별함을 ‘명’이라 하고, 시비를 분별함을 ‘철’이라 하고, 어리고 약한 사람을 부지(扶持)함을 ‘보’라 한다”라고 새롭게 밝히고, 어떻게 하는 일이 명철보신인가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대신(大臣)은 ‘명철보신’해야 한다고 했으니, 고관대작은 사람을 천거하여 임금을 섬기게 해야 하기에 선과 악을 밝게 구별하여 어진 선비들이 출사할 수 있게 해주고, 시비를 밝게 분별하여 뛰어난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발탁된 사람은 자신의 몸도 보존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임금이 더욱 보존되도록 하는 것이 ‘명철보신’의 본뜻이라고 결론 맺었다.

고관대작들에의 책임과 임무가 이토록 막중하다. 반면에 오늘의 고관대작들은 자기 몸 보존만을 위해 선악도 시비도 가리지 않고 이해관계만 따져 불리할 때는 침묵해 버리는 경우가 많고, 제 몸만 지키며 재난을 면할 것만 보(保)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보신(保身)’의 ‘신’을 자신의 몸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몸이고 임금의 몸이며 백성들의 몸까지 포함한 것이 바로 신(身)이라고 여긴 것이 다산의 뜻이었다.

선악과 시비를 제대로 분별하는 명과 철, 강자로부터 짓눌릴 위험이 있는 약자를 부지함을 ‘보’라고 했으니 자신의 보신만을 위해 선악과 시비에 침묵을 지키는 고관대작들, 오늘의 인사 난맥상을 끊기 위해서라도 다산의 ‘명철보신’ 배우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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