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소비자 불편 ‘킬러 규제’, 혁신은 또 이대로 물 건너가나
11년 된 대형마트 규제법 국회 진통
김민선 점장은 “지난 5월 청주시가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꿨다. 이후 4개월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영업일과 휴무일을 혼동하는 고객이 있을까 봐 안내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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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청주, 마트 규제완화 앞장
의무 휴업일, 주말 대신 평일로
온라인 쇼핑 비중 급증했지만
마트 새벽 배송은 여전히 금지
야당 의원도 규제완화안 발의
같은 당 의원 반대에 좌초 위기
」
매달 둘째와 넷째 일요일은 주요 대도시 대형마트가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정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다. 설·추석 같은 명절 연휴에는 예외적으로 일요일에 문을 열고 다른 날 쉬는 것도 가능하다.
청주 지역 마트에선 이런 예외 규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청주시가 지난 5월 조례를 고쳐 모든 일요일에 정상영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매달 둘째·넷째 수요일에 마트가 쉬도록 했다.
마트 1층 식품코너에서 과일을 고르던 중년 부부를 만났다. 매장 근처 복대동에서 왔다는 이인호씨는 “주말부부라서 평소에는 떨어져 지낸다. 장을 보려면 주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일요일에도 편하게 나올 수 있어서 (휴무일 변경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 점장은 “매장 주변은 아파트 단지 위주의 주거 지역”이라며 “그동안 격주 일요일에 마트가 문을 닫으면 장 보러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고객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주말에는 가족 단위 고객들이 찾아와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프라인 매장에선 고객이 다양한 제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마트 2층의 의류·잡화 코너도 둘러봤다. 자영업자들이 매장 일부를 빌려 각종 의류와 화장품·스포츠용품 등을 팔고 있었다. 20년가량 아동복 매장을 운영했다는 이미숙씨를 만났다. 그는 “아동복 매장은 고객이 어린 자녀와 함께 장 보러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들르는 경우가 많다. 일요일에 정상 영업하니 고객들도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어 “격주 일요일에 쉴 때보다 매출이 좀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마트 규제법
국내 유통업계에는 오래된 숙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도입한 대형마트 규제법(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 2)이다. 이 법은 ▶마트 의무휴업(월 2회)과 ▶새벽 영업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주말에 장을 보는 소비자가 가장 불편하게 여길 만한 날을 골라 강제로 마트 문을 닫게 했다. 마트가 미리 고객의 주문을 받은 뒤 새벽에 상품을 배송하는 것도 안 된다. 만일 소비자 편익만 생각한다면 당장 없어져야 할 규제다. 하지만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상생협력을 명목으로 보수 성향 정부가 마트 규제에 앞장섰다.
19대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12월 국회에선 압도적 다수의 찬성(재석 185명 중 찬성 174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 반대 토론(통합진보당)도 있었지만 마트를 규제하지 말자는 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 규제로는 미흡하니 더 세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대형마트 전성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우유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새벽 배송’이란 말조차 익숙지 않던 때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국내 유통업체 가운데 마트 3사의 매출 비중은 27.8%를 차지했다. 오프라인에선 마트가 백화점(25.2%)이나 편의점(13.4%)을 능가했다. 온라인 쇼핑몰도 아직은 본격적인 경쟁자로 떠오르기 전이었다.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 비중을 모두 더한 수치(28.4%)가 마트 3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후 유통업계 환경은 극적으로 변했다. 특히 코로나19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 속도를 더욱 빨라지게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마트 매출 비중은 14.5%로 쪼그라들었다. 2014년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 토막이 난 셈이다. 편의점(16.2%)을 제외하면 오프라인 유통업의 부진이 뚜렷했다. 반면에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 비중은 48.6%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온라인 매출 비중이 오프라인을 추월할 전망이다.
소비자들 “새벽 배송도 지역 차별”
새벽 배송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 소비자들 사이에선 마트 규제로 인한 지역 차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수도권 소비자는 마트가 문을 닫는 시간에도 쿠팡·마켓컬리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새벽 배송을 받을 수 있다. 주요 유통업체 물류센터와 멀리 떨어진 지방 중소도시에선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매우 어렵다. 만일 국회가 법을 고쳐 마트의 온라인 배송 규제를 풀어준다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마트가 문을 닫는 새벽 시간대와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당 의원(국민의힘 이종배)과 야당 의원(더불어민주당 고용진)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법안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입장은 찬성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반발로 법안 심의에 실질적인 진전은 없는 상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8월 21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었다. 결론은 법안 처리 보류였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핵심 이해 당사자인 소상공인들이 동의했고 지역의 청년 세대가 동의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고 호소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완강한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경영계는 기회만 있으면 정부와 정치권에 마트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마트 의무휴업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건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한국과 비슷한 규제를 찾기 어렵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선 소매점 영업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다만 대형마트뿐 아니라 같은 지역 소매점이 함께 문을 닫는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6일 ‘킬러규제 혁신 입법과제’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유통 분야에선 대표적인 ‘킬러규제’로 ▶마트 휴무일 온라인 배송 금지와 ▶마트 영업일·영업시간 제한을 꼽았다. 대한상의는 “규제개혁 법안이 발의된 지 2~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우선 입법을 추진해 경제활력을 끌어올릴 물꼬를 터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마트 휴업일 변경, 시장 추진력이 관건
「 국회 법안 논의와는 별도로 마트 규제 완화에 앞장선 도시들이 있다. 대구시는 지난 2월부터 마트 휴무일을 격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꿨다. 특별시나 광역시 단위로는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 5월부터 격주 일요일 대신 수요일에 마트가 쉬도록 하고 있다.
마트 휴무일 변경에는 지난해 7월 취임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범석 청주시장의 추진력이 강하게 작용했다. 유통산업발전법에는 영업시간 제한이나 휴무일 관련 사항은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일단 한 번 정해놓으면 나중에 다시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 마트 휴무일을 평일로 하려면 이해 당사자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법으로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협의’가 아닌 ‘합의’라는 점에서 지자체장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휴무일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트의 새벽 배송 규제를 푸는 건 지자체 조례가 아닌 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휴무일 변경 합의를 위한 이해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대구시와 청주시는 지역 상인단체를 이해 당사자로 보고 휴무일 변경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노동계는 “마트 노동자도 이해 당사자”라며 “휴무일 변경으로 마트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이 침해됐다”고 반발한다. 야당 지방의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대구시와 청주시는 ▶마트 근로자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이해 당사자가 아니며 ▶일요일에 쉬지 않는 업종은 마트 외에도 많이 있다고 설명한다. 근로기준법은 주 1회 유급휴일을 보장하지만 그게 꼭 일요일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범석 청주시장은 지난 3월 시의회에 출석해 “마트 휴업일 변경으로 마트 근로자의 근무일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라며 “의무 휴업일 관련 규정은 대형마트와 중소 유통업자의 상생협력을 위해 도입한 사항이기 때문에 마트 근로자를 이해 당사자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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