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경직된 체제 그대로 드러낸 북한의 아시안게임
#1. 지난 2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19차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복식 결승전. 남북이 격돌한 경기에서 북한 차수영 선수는 1·2·4·5게임(세트)에서 서비스 폴트(부정 서비스)를 범했다. 한국은 북한팀의 서비스 폴트가 없었던 세 번째 게임만 북한에 내주고 4대 1로 승리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공교롭게도 북한팀이 서비스 폴트를 한 게임은 한국 승리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2. 전날인 1일 남자 축구 8강전. 후반 35분 북한 골키퍼가 몸을 던져 수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선수와 부딪혔고, 심판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결국 이날 경기의 결승골이 됐고, 1대 2로 패한 북한 선수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심판에게 몰려가 손과 몸으로 밀치며 거친 항의를 이어갔다. 북한 코치진의 만류로 ‘소동’이 끝났지만 북한 축구팀은 게임에서도 매너에서도 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3. 지난달 30일 여자 역도 55㎏급 시상식.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강현경 선수는 메달리스트와 시상자가 함께 하는 기념 촬영 직전 자신의 목에 걸린 금메달을 두 손으로 빼들고 이날 시상에 나섰던 김일국 북한 체육상(북한 올림픽위원장)에게 주려고 했다. 강 선수가 승리의 기쁨을 북한의 체육수장과 나누고, 감사의 뜻을 전하려는 듯했지만 김일국이 이를 저지하며 머쓱해지는 순간은 생중계됐다.
■
「 역도·체조 등 개인경기서 두각
필드에선 웃음도 기쁨도 실종
남자 축구팀의 거친 매너 논란
국제 흐름과 먼 ‘우리 식 경기’
」
북한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191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8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순위 10위(총메달 수 11위)를 기록했다. 5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금 12개·은 12개·동 13개)와 비교하면 금메달은 하나 줄었지만, 전체 메달 개수는 두 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꽁꽁 닫았던 북한은 2020년 1월 이후 최소 3년 반 넘게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의 전력은 베일 속에 가려졌지만 ‘무시 못 할 미지의 상대’로 여겨졌고, 뚜껑이 열리자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특히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역도와 사격, 체조 등에선 발군이었다.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무시 못 할 미지의 상대’ 주목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의 한계는 명확했다. 우선 개인 종목 위주의 특정 종목 쏠림이다. 과거 한국이 태권도나 양궁 등 일부 종목에 ‘의지하던’ 것처럼. 북한이 성과를 낸 종목은 역도나 체조·사격 등 자신과의 싸움 위주의 종목이었다. 6개의 금메달을 딴 역도는 북한 전체 금메달의 절반을 넘겼다.
계란에 정신력을 주입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조대로 북한 선수들은 선진 기술보다 정신력에 방점을 두는 눈치였다. 혼자 하는 경기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내기도 했다. 반면, 상대와의 싸움 특히 조직력과 전략, 전술이 지배하는 구기 종목은 초반 탈락이 일쑤였고, 야구나 롤러스케이트, e스포츠 등 고가(高價)의 장비가 필요하거나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경기엔 아예 출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드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북한 선수들에선 체제의 경직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에서 감독과 코치의 전술 지시는 보조다. 결국 선수의 몫이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은 경기가 한 번 꼬이면 풀어내질 못했다. 여자 탁구 복식 결승전이 대표적이다. 2018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차수영이었지만, 서브 때 라켓을 쥐지 않은 손이 테이블 안에서 토스해선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실수를 연발했다. 물론 여자 복식 세계 랭킹 1위인 한국과 맞붙어 실력차도 있었지만 북한 선수는 실수 이후 경기 내내 경직돼 있었고, 실타래를 풀지 못했다. 2m5㎝ 신장의 센터 박진아에게만 의지하며 다양한 플레이를 펴지 못해 예선과 동메달 결정전 모두 한국에 패한 여자 농구 경기 내용 역시 다르지 않았다.
‘공격 앞으로’에 묻힌 스포츠 정신
난동에 가까운 흥분 상태를 보인 축구는 국제사회의 도와 선을 넘는 공격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 축구학교를 만들고, 전국에 인조잔디 구장을 건설하는 등 축구 육성에 나섰다.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이 딱 김정은의 육성 세대다. 그런 내부 사정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선 ‘공격 앞으로’의 성향만 있었을 뿐 스포츠 정신도,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는 격언은 소용없었다.
점수를 따도, 경기에서 이겨도 북한 선수들이 대부분이 보인 무덤덤함과 무표정은 기쁨의 자유를 경박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패배를 내일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경기에 진 북한 선수들은 죄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경기에 지면 아오지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지 않겠나. 강현경 선수 역시 국제무대에서 자기가 딴 메달을 자국 고위 당국자에게 주려는 광경은 흔치 않다. 북한은 ‘우리 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두 국제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5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홍콩의 톱스타 배우 저우룬파(주윤발)는 K컬처의 일부인 한국 영화의 강점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유일 겁니다. 소재가 넓고, 창작의 자유가 많은 점을 높이 사요. 가끔은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과거 홍콩 영화는 한국 영화가 범접할 대상이 아니었고, 저우는 그런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랬던 그가 자유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 산 건 결국은 예술이나 스포츠 할 것 없이 정답은 유연함이라는 뜻일 거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광팬인 김 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스위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에게도 북한 선수들의 경직성이 분명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우물 안 개구리가 밖으로 나가면 어느 정도는 뛰어다닐 수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길을 잃거나 환경 적응에 실패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 그리고 ‘우리 식’이 우물 안의 개구리를 뜻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정희 악감정 때문에 통진당 해산? 朴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근혜 회고록] | 중앙일보
- 박수홍 측 "큰형 탓 증언 후 혼난 동생…부모가 보지 말자 해" | 중앙일보
- “함부로 제주에 오지마라” 이주 9년차 이유준의 경고 | 중앙일보
- "지능 낮음, 3500만원"…중국 난리난 '장애 여성 매매' 무슨일 | 중앙일보
- 당첨된 로또 들고가니 "이미 돈 받아갔다"…복권방 '황당 사건' | 중앙일보
- 마코 가고 가코 왔다...평민 된 언니 자리엔 '일본판 다이애너' | 중앙일보
- 갈라 디너 참석한 최태원, 동거인 김희영 손잡고 함께했다 | 중앙일보
- 군인 울린 '빽다방 알바생' 찾았다…보훈부 선물 거절하고 받은 것 | 중앙일보
- 마약범들의 '부적' 됐다…롤스로이스男 '석방' 시킨 이 처방전 | 중앙일보
- 브리트니 스피어스 폭로 "20여년 전 팀버레이크 아이 낙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