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가짜 뉴스’라는 함정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가짜 뉴스’와의 전쟁 말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비장한 선언이 아니더라도, 가짜 뉴스가 민주주의의 적이란 걸 부인할 이는 없다.
총대를 멘 건 방송통신위원회다. 이동관 위원장 취임 후 한 달 만에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TF’를 출범했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씨 허위 인터뷰’를 “국기문란”이라 평가한 방통위원장은 “(가짜뉴스 보도 매체를 즉시 퇴출하는)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언급하며 전투의 방향을 잡았다. 와중에 포털 다음에선 아시안게임 응원 클릭이 조작된 정황이 드러났다. 방통위TF는 이달 초 범부처TF로 확대됐다.
인터뷰 내용을 교묘하게 편집한 언론사, 그걸 검증 없이 받아쓴 언론사, 국내용 서비스의 클릭 중 87%가 해외에서 유입된 상황을 방치한 플랫폼 모두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무능했다. “지라시 유포자들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에 언론계 전체가 참담하다. 수천 만 명에 정보를 서비스하는 포털의 안일함은 2017년 ‘드루킹 댓글 조작’의 충격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들을 겨누는 권력의 칼날 역시 미덥지가 않다. 문제의 언론사나 기업엔 위협적이지만, 그 칼이 2023년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 정쟁으로 오염된 지 오래인 ‘가짜 뉴스’를 전투 용어로 채택한 것부터 패착이다. 뉴스 말고도 온라인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콘텐트는 너무 많다. 악의적으로 정보를 조작해 SNS에 유포하는 비용은 너무 싸다. 글로벌 미디어 업계가 가짜 뉴스 대신 ‘허위 조작 정보’(disinformation)로 칭하고, 정책적·기술적 대안을 찾는 배경이다. ‘가짜’와 ‘뉴스’를 합친 용어가 사실 검증에 충실한 ‘진짜 뉴스’에 대한 불신마저 키운다는 우려도 크다.
그런데도 정부가 직접 칼을 휘두르니, 국감에서 ‘가짜 뉴스의 정의가 뭐냐’는 공방만 반복된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가짜 뉴스를 판별하기도 쉽지 않다. 기술·미디어 업계에 따르면, 챗GPT 같은 생성AI 기술은 SNS의 사생활 정보로 개인 맞춤형 프로파간다 메시지를 짜는 데 악용될 위험이 크다. 댓글이나 인터뷰 조작으로 집단 여론을 선동하는 방식은 구식이며, 얼굴 없는 AI 공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거란 얘기다.
우리의 ‘정보 공간’을 둘러싼 이 복잡한 전쟁에서 진위 검증은 아무리 유능한 정부도, 아무리 잘난 기자도 독점할 수 없다. 전 정권에서 그 전쟁의 실패를 목격한 시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닭 잡던 칼로 소를 잡을 수는 없다는 걸, 이번 정부는 정말 모르는 걸까.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걸까. 둘 다 아니길 빈다.
박수련 IT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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