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는 시 아닌 드라마”…가곡의 연기자 사무엘 윤
슈베르트 가곡의 공연은 보통 이렇다. 무대 위에 성악가 한 명, 피아니스트 한 명. 대부분 정적이다. 하지만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52)의 가곡 무대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 표현한다. 보통 가곡 공연이 시(詩)의 내용을 전달하는 낭송에 가깝다면, 사무엘 윤의 가곡은 드라마다.
시에서 드라마를 찾아내는 성악가, 사무엘 윤이 또 한 번 그런 무대를 만든다. 슈베르트·브람스 등의 가곡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조명과 무대장치를 사용해서 공연한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 가곡 ‘도플갱어’를 부를 때 그는 오케스트라를 반으로 나눠 그 사이에 서서 노래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없는 텅 빈 집을 바라본다는 시의 내용에 맞춰 시선과 동작을 섞는다. 그 집을 바라보는 이가 자신의 환영이었다는 내용을 음악과 약간의 연기로 표현하는 식이다.
사무엘 윤은 최근 이런 가곡 공연을 하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9월이었다. 슈베르트 ‘도플갱어’를 비롯해 베토벤, 브람스, R.슈트라우스 등을 바리톤 김기훈과 함께 불렀다.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만난 사무엘 윤은 “시의 언어와 음악에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모교인 서울대 성악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예술가곡에서 성악가는 작곡가가 남긴 정보만 전달한다. 음악과 시다. 연기와 극적인 요소는 쓰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 많다.”
그는 지난 8월 발트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함께 ‘극적인 가곡’ 공연을 펼쳤다. 이어 이달 29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의 1부에서 브람스 ‘죽음, 그것은 서늘한 밤’ ‘다시 네게 가지 않으리’, 슈베르트 ‘지옥에서 온 무리들’ ‘죽음과 소녀’ ‘마왕’ 등을 부른다. 모두 상실, 고통, 또 죽음과 관련된 노래들이다. 사무엘 윤은 “노래는 서로 연결돼 더욱 깊어지는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브람스의 노래에서 ‘서늘한 밤’은 ‘칙칙한 낮’과 대비된다. 고통스러운 삶보다 죽음이 평안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를 성악가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만히 서서 시를 읊듯 노래하는 일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무엘 윤은 죽음에 다가가는 상태를 연기하며 이 가곡들을 부른다.
가곡의 화자를 하나의 캐릭터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까닭은 그가 천생 오페라 가수이기 때문이다. 사무엘 윤은 1998년 이탈리아에서 데뷔했고, 쾰른 오페라극장의 정단원이 됐다. 지난해까지 쾰른에서 종신 솔리스트로 노래했고 독일 정부에서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그는 “단역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오페라에서 안 해본 역이 없다. 특히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모든 저음 가수 역할을 해봤다”고 했다. 따라서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가곡을 극화하는 무대는 해외에서도 하나의 흐름이다. 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또한 올 9월 뉴욕에서 슈베르트 ‘도플갱어’에 연출을 더한 무대를 열었다.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가 슈베르트를 연기하며 ‘겨울 나그네’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든 무대 또한 올 초 DVD로 출시됐다.
그는 시의 언어를 극적으로 살려내 전달하되, 해석의 주도권은 청중에게 넘기려 한다. “표현을 잘하는 성악가가 역할을 할 때 언어가 살아나고 청중의 이해도 깊어진다”면서도 “직설적인 표현이어서는 안 된다. 내 역할은 각자가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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