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사업부 매각 승부수 내걸었지만…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진퇴양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랜 기간 양 사 합병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합병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先통합 後화물 매각’ 제시하나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유럽연합(EU) 경쟁당국에 ‘선통합, 후화물 매각’이라는 조건부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EU가 한국과 유럽 간 화물 노선 독점을 이유로 양 사 합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고심 끝에 던진 승부수다.
EU는 한국~유럽 4개 여객 노선(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과한국~유럽 전체 화물 노선 독점 우려를 문제 삼고 있다. EU 당국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양 사가 합병하면 한국~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4개 노선과 화물 운송 시장에서 가격 상승과 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EU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먼저 승인하면 독점 해소를 위한 시정 조치를 늦어도 내년 11월까지 완료한다는 목표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분리 매각하는 한편 유럽 4개 노선 운수권을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에 이관하는 방안도 추진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이 EU 승인을 받기 위해 파격적인 카드를 내걸었지만 향후 전망은 안갯속이다.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 안건이 일단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3분의 2인 4명 이상이 찬성해야 안건이 통과된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이 안건에 찬성할지는 미지수다. 화물사업부 매각 찬성에 무게를 두는 쪽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재무 상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만큼 화물사업부를 팔아서라도 합병에 속도를 내 대한항공으로부터 서둘러 자금을 수혈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상반기 60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도 1741%에 달한다. 한편에서는 화물사업부 매각이 아시아나항공 전체 매각을 하겠다던 기존 계획을 벗어난 사실상의 구조조정 방안이라며 반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회사와 주주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배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내에서 화물사업부는 알짜 사업부로 손꼽힌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화물 수요가 늘어 화물사업부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화물사업부 매출(2조9891억원)은 3조원에 육박해 아시아나항공 전체 매출(5조6300억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대한항공의 화물 사업 매출(지난해 기준 7조7200억원) 규모를 더하면 연매출이 무려 10조원에 달한다.
다만 최근 여객기 운항이 늘고 물류난도 점차 해소되면서 화물사업부 실적이 하락세라는 점은 변수다. 항공 화물은 반도체, IT 기기 등 고가 제품을 주로 실어 나르는데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해상 운송 대비 항공 화물 운송 물량 하락폭이 가파르다. 올 2분기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4% 감소한 3759억원에 그쳤다.
대한항공 계획대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분리 매각을 결정하더라도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화물사업부 매각 승부수에도 EU가 시정 조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최종 불승인 결정을 내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아시아나항공이 최악의 경영난에 처해 사실상 공중분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다. 아시아나항공이라는 국적 항공사를 잃게 되면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에 치명타가 될 우려도 크다.
그뿐인가. EU 심사를 어렵게 통과하더라도 미국이 남아 있다. 미국은 EU의 심사 결과를 참고할 가능성이 높지만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법무부는 이번 합병이 대한항공의 시장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독점을 해소할 대체 항공사를 찾아오라고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전략 물자로 선정한 반도체 운송을 화물 독점으로 문제 삼을 기세다. 지난해 한국~미주 화물 노선에서 대한항공(50.2%)과 아시아나항공(23.2%)의 합산 점유율은 73.4%에 달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겠다고 밝혔지만, 매각 이후에는 ‘한국 항공 화물 운송 경쟁력을 떨어뜨린 주범이 됐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농후하다. 대한항공이 국내 LCC에 화물을 매각한다 해도 아시아나가 오래도록 쌓아온 화주 네트워크가 사라지는 것은 다를 바 없다. 당장 LCC가 화물 사업을 이양받는다 해도 바로 이전처럼 화물 물량을 받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백기사’ 산업은행 눈치?
그럼에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 기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양 사 합병에 100% 올인하고 있다. 합병 성공을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이 양 사 합병을 강행하는 것은 산업은행과의 밀접한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조 회장은 2019년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맹을 맺은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 반도건설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당시 조 회장은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유상증자에서 8000억원(지분율 10.58%)을 투자한 산업은행을 우군으로 맞아 겨우 경영권을 지켜냈다. 조 회장은 지분 19.79%를 보유한 한진칼 최대주주지만 친족, 재단 등의 지분을 모두 합친 수치다. 조 회장의 순수 지분은 5.78%에 그친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 수조원 공적자금을 지원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 만큼 이제 와서 합병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인수를 두고 항공업계에서는 ‘차, 포 뗀 합병’ ‘간판만 사들이겠다는 꼴’이라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해외 경쟁당국 심사를 넘기 위해 멀쩡한 회사를 쪼개는 무리수라는 비판이다. 알짜 사업부, 노선을 죄다 뺏기다 보니 합병 초기 강조했던 ‘메가 캐리어’라는 목표도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민간조종사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글로벌 톱10 항공사 탄생을 주장했지만 실상은 운수권을 해외로 넘기고 화물 사업 매각 등 무리한 해법으로 반쪽짜리 합병이 됐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실적도 불안한 모습이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6.4% 감소한 4680억원에 그쳤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항공 화물 수요 감소로 화물 운임이 하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변화로 연료비가 예상보다 강하게 상승해 대한항공의 3분기 영업이익은 기대치를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원태 회장의 인수 의지가 강하지만 화물 등 핵심 사업부와 주요 슬롯을 뺏기면 애초 기대했던 통합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이 오히려 악화될 우려가 큰데도 조 회장이 산업은행 눈치를 보고 합병을 밀어붙이는 만큼 합병하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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