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20years…‘스타’부터 아시안게임 ‘金’까지 [스페셜리포트]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0.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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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안게임 e스포츠 국가대표팀이 금2·은1·동1 성적으로 일정을 마쳤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스트리트 파이터5’에서 금메달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FC온라인’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e스포츠 팬들에게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스폰서를 못 구해 팀 존폐를 걱정하던 e스포츠가 규모를 키우고 어엿한 스포츠로 자리 잡았기 때문. 한 편의 성장 스토리를 본 셈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불만도 감지된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마우스, 키보드 등으로 경쟁하는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못해 발생한 논란이다. 하지만 ‘개념’만 놓고 보면 e스포츠도 어엿한 스포츠다. 심판이 있고,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경쟁이 이뤄진다. LoL 대표팀 주장 ‘페이커’ 이상혁은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관객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표’로 봐도 스포츠다. 일단 LoL은 전 세계 9개 지역에서 ‘프로 리그’가 열린다. 관객도 갖추고 있다. 특히 관객 수는 일부 기존 스포츠 종목을 넘어섰다. 유럽 축구 클럽 대회 ‘UEFA 챔피언스리그’와 비슷한 방식의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수천만 명의 관객을 자랑한다. 2021년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유튜브 등으로 중계돼 전 세계 동시 시청자 7386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결승전도 1만6000여명이 오프라인 경기장을 찾았고, 유튜브 등 34개 플랫폼에서 18개 언어로 생중계됐다.

산업 측면에서도 각광받는다. 국내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e스포츠 시장에 참여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통신업계 등 IT 기업들만 관심을 가졌다면, 최근에는 보수적인 금융권과 식품업계도 e스포츠에 뛰어들었다. 주된 관객이 젊은 층이라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그야말로 ‘상전벽해’ e스포츠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제우스’ 최우제, ‘카나비’ 서진혁, ‘쵸비’ 정지훈, ‘페이커’ 이상혁, ‘룰러’ 박재혁, ‘케리아’ 류민석이 시상대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e스포츠 20년 역사 돌아보니

스타에서 시작 ‘롤’이 개화

한국은 e스포츠를 태동시킨 국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게임 대회’는 꾸준히 열리고 있었다. 다만 이는 게임사가 몇몇 게임을 잘하는 이용자를 모아 대결을 붙이는 이벤트성 경기였다. 취미로 즐기던 이들이 실력을 뽐내는 이른바 아마추어 대회 수준이었다. ‘게임에만 전념하는 프로게이머들이 모여 계속해서 대결을 펼치는 e스포츠’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시작은 1998년이다. 그해 블리자드가 내놓은 실시간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붙는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전국에 PC방이 줄줄이 세워졌고, PC방을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를 뽑는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5만달러 상금을 내건 스타크래프트 스포츠 서울컵이 열리면서 비로소 ‘e스포츠의 시초’로 불릴 만한 대회가 탄생했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등장하고, 이들이 활약하는 2개 스타 리그 인기가 치솟았다. 이들의 활약에 주목한 한국 정부는 2000년 e스포츠 리그 창설과 관리를 목적으로 한 조직 KeSPA를 본격 창설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에서 e스포츠 열기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중반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스타 리그 결승전마다 관중 10만명이 몰릴 정도였다. 임요환, 홍진호, 이영호, 이제동 등 인기 스타도 대거 등장했다. 홍보 효과를 확인한 삼성전자, SKT, CJ, KT 등 기업들은 연달아 팀을 창설하며 리그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e스포츠 진흥법을 제정하며 제도적으로 리그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한국 e스포츠 산업은 2010년대 들어 암초를 만났다. 프로게이머들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관중이 급감한 데 이어,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와 KeSPA의 갈등으로 스타크래프트 2 리그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 앞다퉈 팀을 만들었던 기업들은 팀을 해체하며 e스포츠 판을 떠났다. 블리자드가 야심 차게 내놓은 스타크래프트 2는 전작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 e스포츠를 구한 것은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LoL’이었다. 2009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012년부터 한국 최고 인기 게임으로 등극했다. 자연스레 LoL을 중심으로 하는 e스포츠 리그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SK텔레콤 T1이 롤드컵에서 우승하면서 LoL 프로 리그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다. 2015년 라이엇게임즈가 KeSPA 연계팀과 제휴, 프랜차이즈 리그인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리그를 도입하면서 한국 최고 e스포츠 리그로 자리 잡게 됐다.

LCK 흥행에 힘입어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 e스포츠 산업은 기존 프로 스포츠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방송 플랫폼 다양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LCK가 인기를 끌 무렵부터 스트리밍 시장이 급성장했는데, 덕분에 e스포츠도 함께 커졌다. 트위치, 아프리카,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 영역을 넓히며 e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었기 때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e스포츠 시청자가 경기 시청 시 이용하는 기기는 PC(40.6%), 스마트폰(37.1%), 노트북(11.7%) 순이었다. 모두 동영상 플랫폼 시청에 최적화된 기기들이다. 방송 송출 채널 확대는 시청자 수 증가로 이어졌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게임을 기반으로 한 e스포츠 리그도 활성화 조짐을 보인다. e스포츠 형태 자체는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배경이 되는 게임은 모두 외국 게임사가 만들었다. 블리자드와 라이엇게임즈 모두 미국 게임사다. 넥슨이 카트라이더 리그 등을 열며 국내 게임 e스포츠 리그 활성화에 나섰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반전 계기를 연 게임사는 크래프톤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배틀그라운드’를 토대로 한 e스포츠 리그를 만들며 세를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만 리그에 참가하는 팀 숫자가 13개다. 가장 인기가 많은 LoL과 동일하다. 크래프톤이 주최하는 배틀그라운드 세계 대회인 ‘PUBG 글로벌 시리즈 2’는 상금이 200만달러에 달한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기반인 ‘PUBG 모바일 월드 인비테이셔널’은 상금이 300만달러로 더 크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경우 LoL과 함께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공식 종목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0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공식 파트너로서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되는 세계 최대 e스포츠 이벤트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조 단위’ 훌쩍 넘어선 시장 규모

SK·KT·한화…e스포츠에 빠진 재계

e스포츠 시장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이 올해 초 발표한 ‘글로벌 e스포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13억9000만달러(약 2조원)로 나타났다. 리서치앤마켓은 2030년까지 e스포츠 시장 성장 곡선이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예상 연평균 성장률(CAGR)은 16.7%다.

‘e스포츠 종주국’ 한국 내 시장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2014년 603억원에서 2021년 1048억원으로 2배 가까이 커졌다.

현재 국내 e스포츠 시장은 ‘LoL과 아이들’로 나뉜다. 게임인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시장 내 LoL의 시장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배틀그라운드와 발로란트, FC온라인 등 수많은 게임이 있지만 ‘리그’ 측면에서 가장 활성화된 게임은 LoL이다. 국내 LoL 리그는 LCK로 불린다. 총 10개 팀이 경쟁한다. 재계 관심도 LCK에 쏠리는 형국이다.

기업들이 LCK를 지원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SK그룹·KT그룹과 한화그룹, 농심그룹 등은 자체 게임단을 운영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e스포츠 게임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통상 50억~100억원 수준이다. 적지 않은 비용인데도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름만 빌리는 경우도 많다. 기아와 광동제약, OK저축은행 등은 기존 LCK 구단과 ‘네이밍 스폰’ 계약을 체결했다. 쉽게 말해 비용을 지불하고 구단명에 자사 브랜드를 노출하는 형태다. ‘디플러스 기아’ ‘광동 프릭스’ ‘OK저축은행 브리온’ 등이다. 게임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금융권도 다양한 방식으로 LCK에 뛰어들었다.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2019년부터 LCK 타이틀 스폰서로 활동 중이다. 모든 LCK 경기와 LCK 게임 맵(소환사의 협곡)에 우리은행 로고가 노출된다. 신한은행은 DRX팀을 후원 중이고, KB국민은행은 2020년 리브샌드박스와 네이밍 스폰 계약을 맺었다. 계약은 올해 만료된다.

재계가 e스포츠에 꽂힌 이유는 분명하다. 주요 관객인 MZ세대(10~30대)에게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e스포츠를 처음 접한 시기는 20대가 35%로 가장 많았다. 30대가 17.4%, 초등학생이 14.7%, 중학생이 12.9% 순으로 나타났다. e스포츠 시청 빈도는 주 1~2회가 38.2%, 주 3~4회라고 답한 응답자도 전체 15%에 달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LCK는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올해 스프링·서머 시즌 해외 평균 시청자 수는 25만5000명에 달했다. 국내 평균 시청자(12만7000명)보다 많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기존 스포츠 프로 리그 중에서 해외에서 더 많이 관심 갖는 리그는 없다”며 “LCK는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LCK팀 T1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사진은 ‘페이커(Faker)’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T1 사옥에서 세계 최초 듀얼 QHD 해상도를 지원하는 OLED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 OLED G9’을 소개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적자 해소’ ‘스타 의존도’ 과제

페이커 부상에 LCK 시청률 뚝뚝

e스포츠 시장 성장세는 분명한 양상이지만, 과제도 여럿이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는 ‘적자’다.

국내 e스포츠팀 중 가장 대형 팬덤을 갖춘 ‘T1(에스케이텔레콤씨에스티원)’도 좀처럼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1은 팬덤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유튜브 구독자 수’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소속 팀 선수들의 유튜브 구독자도 상당 규모다. 172만명의 페이커를 비롯해 케리아 20만명, 구마유시 15만명, 제우스 4만명, 오너 4만명 등이다.

그런데도 이익을 내지 못한다. T1은 지난해 매출 238억원, 영업손실 166억원을 기록했다. 183억원에 달하는 구단 운영비 등 400억원 수준의 영업비용 탓이다. 그나마 T1은 상황이 낫다는 평가다. 페이커 등 인기 선수들이 있는 만큼, 팬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선수 굿즈 판매 등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T1은 지난해부터 ‘굿즈’ 등을 통한 ‘상품 판매’에 역량을 모으는 등 신규 수익원 창출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전체 매출 규모는 전년(194억원) 대비 늘고 영업손실은 전년(211억원)보다 줄었다.

LCK 리그 운영사 라이엇게임즈코리아도 문제를 인지해 2021년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했다. 프랜차이즈 모델은 리그와 팀이 파트너가 돼 하나의 공동체로 리그 관련 의사 결정을 함께 내리고 운영 수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국내 프로 야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만 프랜차이즈 모델이 오히려 LCK팀들의 적자를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싼 가입비 대비 분배금 규모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LCK 참여를 위해서는 기존 팀 기준 100억원의 가입비를 5년 분할로 내야 한다. 신세계그룹이 프로 야구에 뛰어들면서 KBO에 지급한 가입금(60억원)보다 많다. 그렇다고 분배금이 막대한 것도 아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LCK 수익 중 일부를 각 팀에 균등하게 분배하는데, 지난해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총 분배금은 83억원에 불과하다. 10개 팀에 각각 8억3000만원씩 나눠진 셈이다.

여기에 ‘급여 부담’도 커졌다. 프랜차이즈 모델로 표준계약서가 도입, LCK 선수들의 최저 연봉은 연 2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인상됐다.

LCK 경쟁력 약화도 문제다. 프랜차이즈 모델이 도입되며 승강전(이기는 팀은 1부 리그로 승격하거나 유지하고, 지는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거나 2부 리그에 남아 있는 것)이 폐지됐는데, 이와 관련 부작용을 꼬집는 팬도 늘고 있다. 같이 경쟁할 수준이 아닌데, 돈만 내고 경쟁한다는 지적이다. 또 2부 리그 격인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시작해 3년 만에 LCK와 롤드컵 정상을 거머쥔 담원 게이밍(디플러스 기아) 같은 사례를 볼 수 없게 됐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강등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게 팀과 선수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LCK 선수들의 경우 단기 계약이 대부분인데, 계약 기간 만료를 제외하면 선수들이 긴장감을 느낄 대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 역시 풀어내야 할 지점이다. 지난 8월 페이커의 손목 부상 사례가 대표적이다. 손목 부상으로 페이커가 3주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이 기간 동안 소속 팀인 T1은 물론이고 전체 LCK 시청 지표도 뚝뚝 떨어졌다. e스포츠 차트에 따르면 페이커가 부재한 기간 LCK의 평균 시청자 수는 39만명 수준에 그쳤다. 이후 페이커가 복귀하자 47만명의 시청자를 기록하는 등 페이커 존재 여부가 시청자 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페이커 데뷔 이후 10년이 지났다. e스포츠 선수 특성을 고려하면 이미 은퇴 시점을 훌쩍 넘어선 것”이라며 “여전히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페이커가 영원히 뛸 수는 없다. 페이커 없는 LCK와 e스포츠를 대비해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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