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임기 11개월' 헌재소장 지명… 헌재 보수화 도미노 시작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8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이종석(62·연수원 15기)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실력과 인품을 갖춘 명망 있는 법조인”이라고 소개했다. 경북 칠곡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후보자는 사법시험 합격 후 1989년 인천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해 서울고법 수석부장, 수원지방법원장,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등을 거쳤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나 법조계에서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느껴지진 않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이다.
이 후보자는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중도·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 포진한 현 헌재 구성에서는 그가 가장 보수적인 재판관으로 꼽힌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20년 4월 헌재가 고(故) 백남기 씨 사망과 관련해 ‘집회 현장 물대포 직사는 위헌’ 결정을 내릴 때 홀로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 6월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했다 처벌받은 사람도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헌재가 빗장을 풀어줄 때도 “공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손상시킨다”며 반대 의견에 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아 지난 7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현 재판관 중에선 가장 보수… ‘11개월 소장’ 되나
이 후보자는 2018년 10월 18일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해 내년 10월 17일이면 6년의 임기가 끝난다. 당장 인사청문회 등 절차가 쾌속으로 진행돼 현 유남석 헌재소장 퇴임 다음날(11월 1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임기 종료까지 11개월 6일이 남는다. 9개월 27일간 헌재소장을 지낸 이진성 전 소장에 이어 두 번째 ‘단기 헌재소장’이 된다.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헌법 111조4항), 소장 임기에 대한 명시 규정은 없어 재판관이 재판소장이 되더라도 재판관으로서의 잔여 임기만 수행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했던 전효숙 전 재판관은 재판관직 사임 후 새로 재판관 및 소장으로 취임해 6년 임기를 보장받으려 했다가 당시 야당의 반발을 샀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했다. 5대 박한철 헌재소장의 인사청문회 때도 임기 논란이 있었으나 박 전 소장이 스스로 “잔여임기만 수행하겠다”고 밝혀 3년 9개월 20일간 소장을 한 뒤 퇴임했다. 유남석 소장의 다음달 퇴임도 재판관 잔여 임기에 맞춘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박한철 전 소장 이후 ‘소장 임기=재판관 잔여 임기’로 굳어졌다고 본다. 여전히 ‘재판소장의 임기를 6년으로 보장하는 게 재판의 독립성‧안정성 측면에서 좋다’는 의견과 ‘재판소장은 여러 명이 거쳐갈 수록 다양성 측면에서 좋다’는 의견은 나뉘지만, 당위와 별개로 관행이 된 건 현실이란 평가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원래 헌법의 의도는 재판관이든 소장이든 6년 임기를 보장하려는 취지로 보이나, 전효숙 전 재판관부터 박한철‧이진성‧유남석 전 소장까지 ‘재판관 임기만 마치면 퇴임하는’ 선례가 만들어졌고,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별도로 재판소장 임기를 규정하는 입법을 하는 것도 가능하나 정치권에서 의욕을 보이지 않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홍선기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재판관 연임과 재판소장 연임 모두 가능한데, 정치적으로 동의가 될 지가 변수”라며 “지금 형성돼있는 ‘재판관 임기 마치면 재판소장도 퇴임’이 현재로서는 균형점”이라고 설명했다.
‘文 청문회 통과’했지만 ‘尹 대학 동기’ 리스크 될까
야권에서는 이 후보자와 윤 대통령이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라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대법원장 후보자에 올랐다 낙마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절친을 사법부 수장으로 지명하고, 이번엔 대학교 같은 과 동기 친구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하다니 (윤 대통령이) 공·사 구분이 되지 않나”라며 빡빡한 인사청문회를 예고했다.
헌재 보수 기울까…내년까지 5명 변동
다음달 유 소장의 퇴임으로 비는 재판관 자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다. 내년 9월엔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던 이은애 재판관의 후임을 새 대법원장이, 10월엔 국회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이종석(한국당)‧이영진(바른미래당)‧김기영(민주당) 재판관 자리가 새롭게 채워진다. 2025년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나가면 윤 대통령이 두 명의 재판관을 지명하게 된다.
한 전직 헌법재판연구관은 “삼권분립이 원칙인 나라에서, 아무리 대통령·대법원장이 보수 성향이라고 하더라도 성향이 가까운 사람만을 세우는 건 옳지 않다”며 “여야 대립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 임명 몫의 재판관 자리는 양 쪽이 반대하지 않을 인물을 내세워야 통과 가능성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는 “헌법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데, 헌법재판소가 아무리 보수화한다고 해도 극단적으로 기울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인물들을 기용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연‧이병준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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