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샘] ‘단맛’드는 인생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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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노련한 사냥꾼들은 얼룩말을 사냥할 때, 흰 줄과 검은 줄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창을 던진다고 한다.
달리는 얼룩말의 줄 중 하나를 골라 무기를 던져 맞힐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라니 감탄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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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노련한 사냥꾼들은 얼룩말을 사냥할 때, 흰 줄과 검은 줄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창을 던진다고 한다. 달리는 얼룩말의 줄 중 하나를 골라 무기를 던져 맞힐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라니 감탄이 나올 뿐이다. 그런데 사실 이 비유는 사냥꾼의 기술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검은 줄, 흰 줄과 상관없이 얼룩말은 결국 창에 맞아 죽는 것처럼, 세상을 편 가르기로 나누어 사는 방식은 공멸로 끝난다는 것이다.
흰 줄과 검은 줄로 나누어 주변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은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남녀, 노소, 빈부, 좌우, 자연과 인간, 그리고 강약 등 우리는 이렇게 세계를 구분하는 데에 익숙하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다른 쪽을 적으로 간주하여 끊임없이 경쟁하는 폭력과 야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상생과 공생을 택하는 중도는 변절로 취급되며, 함께 살기 원하는 평화의 목소리는 야유에 묻혀버린다. 다른 한쪽이 없어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과연 불가피한 것인가?
필자가 어릴 적 살았던 집 마당 앞에 큰 재래종 능금나무가 있었다. 초가을이 되면 나무에 셀 수 없이 달린 능금의 색이 얼마나 빨간지 멀리서도 나무가 보일 정도였다. 능금 크기는 성인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았지만, 그 맛은 다른 사과와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하였다. 문제는 겉으로 볼 때는 분명히 먹을 만큼 익어 보여도 입에 물고 씹어보면 너무 떫어서 뱉어내야만 했다. 그때마다 어머님께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였던 기억이 난다. “엄마, 이 능금 언제나 먹을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돌아온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된서리 한번 맞으면 된단다.” 참 신기하게도 어느 가을, 간밤에 차가운 서리가 내린 다음 날 아침부터, 그 능금나무는 온 동네 어린이들에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간식거리를 내어주었다.
어릴 적 ‘능금’과 연관된 기억을 회상하며 필자는 종종 ‘단맛이 들지 않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겉으로는 반지르르한 그럴듯한 모습인데, 실제로는 ‘회칠한 무덤’ 같은 모습을 발견한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때로는 편 가르기로 다른 쪽을 뱉어내며 한편에 선 모습을 보게 된다. 주님을 머리로 둔 유기적인 ‘한 몸의 공동체’임을 잊어버린다.
‘단맛’이 들게 하는 된서리,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힘든 고통의 순간일 수도 있다. “세상은 영혼을 만드는 골짜기”에 비유하였던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의 말처럼 이 세상은 셀 수 없는 추운 긴 밤과 같은 일들로 우리를 괴롭게 한다. 야만과 전쟁, 증오와 폭력으로 물들어 가는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인생을 단맛 들게 하는 ‘골짜기’가 될 수는 없을까?
바로 그 골짜기에 서 있는 ‘십자가’가 해답이다. 둘 중 하나를 빼내면 행복하여질 수 있다는 ‘빼기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를 더하여 더 큰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 골짜기 한 가운데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하나님은 신의 자리를 포기하시고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동사(動詞)임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리고 서로 원수 되어 죽이는 편 가르기 인간 세상에 십자가의 ‘사랑’이 궁극적인 해답임을 알려주셨다.
우리의 인생에 단맛이 들게 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에베소서 2:14) 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이 가을에 우리의 삶이 빛깔도 좋고 단맛도 나는 기독교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
유경동 목사
감신대 교수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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