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인 나도 욕하면서 힘을 얻고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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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서울의 한 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그러나 꼭 진상 고객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아니라도 우리 택배 기사들은 일하며 욕을 잘하는 편으로 보인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며 '욕', 포장이 부실해 내용물이 질질 흐르는 물품을 받으며 '욕', 물건 바코드가 흐려 스캔이 잘 안될 때도 '욕', 때로는 물건이 너무 자잘해 쌓기 힘들다며 '욕'.
우리에게 욕은 진짜 나쁜 감정을 실은 부정적인 마음이 없이도, 일을 더 원활하게 해나가기 위한 추임새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무심코 욕을 내뱉던 한 기사가 갑자기 "여기 목사님도 있는데 욕 자꾸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그런 게 어딨냐? 힘들면 욕도 하고 사는 거지. 나도 욕하고 산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목사라는 직분상 함께 있을 때는 삼가지만, 배송 나가 혼자 일할 때는 나도 무심코 욕을 내뱉는다. 추임새처럼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제법 풀린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욕의 미학'을 처음 이론적으로 배운 것은 1990년대 초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다. <태백산맥>은 내용도 재미있지만, 지금까지 깊은 인상으로 남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찰진 전라도 사투리다.
나도 20대이던 당시에는 지방 사투리를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책은 배경 자체가 태백산맥을 낀 대부분의 전라도 지역이라 대화 전체가 온통 전라도 사투리다. 처음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외국어 독해하듯 이해하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익숙해지다 보니 그 사투리가 그렇게도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소리 내어 발음해 보기도 하고,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또 하나가 바로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찰진 욕설들이다. 그때 욕이 꼭 나쁜 게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다른 단어로는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느낌은 딱 그 욕 밖에는 없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 게 아쉽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뜩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원색적인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떠올랐다. 전에는 그저 '철딱서니'만을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들도 가장 정확한 단어를 선택해 말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면 점점 스스로 조심하게 될 텐데, 미리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공감과 위로
성경에도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온다. 욕설보다 더 심한 저주의 표현들이다. 성경에 시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중에 '저주 시편'이라고 부르는 내용이 드물지 않다.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시 35:4, 8)
그중에 가장 압권은 여기 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시 109:8~11, 13)
이런 기도, 노래는 그 외에도 제법 많다. 아무리 자신에게 잘못했기로서니 상대방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거침없이 저주하는 내용이 성경에 실려 있다는 게 놀라운 일 아닌가? 나 역시 이런 저주 시편을 보며 당황했고 어떻게 이해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해보니 이 저주 시편이 얼마나 유용한 건지 이해되었다.
우선, 성경에 이런 게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도 내(인간) 사정을 알고 계신다는 증거로 더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죽도록 힘든 사정을 누군가 깊이 공감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더구나 그가 하나님이라면.
그러나 더 실제적인 역할이 있다. 자신에게 참을 수 없이 큰 고통과 배신을 준 사람을 저주하는 기도를 쏟아놓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리고 어떻게든 원수를 갚으려던 마음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된다. 그렇다. 사람은 항상 자기 위주라서 자기감정에 빠져 극에 달했을 때는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그런데 혼자서 원수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붓다 보면(성경에는 그게 기도다), 가슴 깊이 응어리진 살의(殺意)가 누그러지고, 당장 변하지 않는 현실조차 견디고 이겨낼 힘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사적인 보복은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많은데, 혼자 저주 기도를 하다가 보복의 계략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사사로이 보복하지 말고 하나님이 정당히 풀어주실(심판하실) 날을 기다리라고 한다(로마서 12:17~19). 오죽하면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시편 94:1~2)
인생의 교훈
여러분은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가? 지난 연재에서 썼듯이 힘든 육체노동은 생각과 마음을 단순하게 비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편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둔 분노와 부정적 에너지는 어딘가 쏟아놓지 않으면 몸도, 영혼도 더 크게 병들게 된다.
그렇다고 함부로 표출할 수도 없다. 그럴 때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저주 기도를 하는 거다. 그렇지 않은 분은 '혼자서' 욕설이라도 쏟아내면서 당장 불타는 분노와 절망을 이겨내는 거다. 그런 면에서 택배기사들의 욕설은 반드시 특정인(갑질, 진상 고객)을 향한 것이 아닐 때가 더 많다. 답답한 자신의 모습을 털어버리고, 당장 힘든 상황을 욕하면서 견뎌내는 것이다. 배설 욕구와 비슷한 것이다.
다만,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오히려 해롭다. 욕은 더 그렇다. 그래서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다. 욕설이 아예 습관이 되면 마음은 더 황폐해지고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모두 남 탓하기에 급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카타르시스나 절망 극복이 아닌 구조적 분노와 원망에 갈수록 더 빠져들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무엇을 해도 다 인생의 교훈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살아갈수록 인생이 참 묘하다는 걸 느낀다. 최근 몇 년 사이 배송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도로명 주소 실시, 스마트폰 앱 기능 향상, 무엇보다 몇 년 전부터 아침 물품 정리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가 투입된 것이다. 우리 기사의 수고를 많이 덜어준다. 이제는 기사들이 애써 자기 물건 찾아내느라 컨베이어 벨트에 들러붙어 물건 주소를 뚫어지도록 쳐다보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들이 일일이 알아서 찾아내 갖다준다.
그런데 참 묘하다. 몸이 편해지니 욕설이 줄어들었는데, 동료기사들과 서로 물건을 찾아 던져주면서 잡담하던 끈끈한 정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은 맞았다. 애정도, 사랑도, 행복도 그저 좋은 일들의 연속이 아니라 힘겹고 고단하고 때론 긴장되는 일들이 섞여 있지만 그것을 함께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독자들의 욕하게 되는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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