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해도서 심의 외면"...규탄받는 간윤위의 '소극행정'

최경식 2023. 10. 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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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초중고 및 공공도서관에 집단 성행위와 동성간 성교 등의 내용이 담긴 청소년 유해 도서가 버젓이 비치돼 있다는 보도(본보 9월 14일 33면) 이후 도서 심의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석연치 않은 법률해석으로 심의 자체를 외면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간윤위는 "외부 법무법인이 제공한 법률 자문에 의거해 성교육 도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8조의 1호에 명기된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심의할 수 없다"고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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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치 않은 법률 해석으로 논란
시민단체 “자의적 편의적 해석”
유해도서 퇴출 운동 박차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앞에서 청소년 유해 도서 심의를 외면한 간행물윤리위원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퍼스트코리아 시민연대 제공


서울지역 초중고 및 공공도서관에 집단 성행위와 동성간 성교 등의 내용이 담긴 청소년 유해 도서가 버젓이 비치돼 있다는 보도(본보9월 14일 33면) 이후 도서 심의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석연치 않은 법률해석으로 심의 자체를 외면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청소년 문제를 외면하는 소극 행정의 극치”라며 전국 초중고 도서관의 유해도서 퇴출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8일 교계 및 시민·학부모 단체 등에 따르면 현재 전국 13개 지역 71개 시민단체들이 전국 초중고 도서관 및 공공도서관에서의 청소년 유해도서 퇴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유해도서 퇴출 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달 여성가족부를 대상으로 국민신문고 민원을 청구했다.

청구된 민원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위)로 이송됐다. 간윤위는 유해 간행물로부터 청소년 보호간행물의 윤리·사회적 책임을 구현하기 위해 간행물 심의 및 관련 조사·연구를 주로 수행하는 문체부 산하 특수법인으로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간윤위는 시민단체가 지적한 성교육 관련 도서들이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간윤위는 “외부 법무법인이 제공한 법률 자문에 의거해 성교육 도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8조의 1호에 명기된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심의할 수 없다”고 의결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조치가 법적, 행정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선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8조는 간윤위가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의 유해성을 심의한다고 적시돼 있다. 동법 제12조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이란 청소년 보호와 관련된 기관, 단체 또는 30명 이상이 서명해 청소년 유해 여부 확인을 요청한 간행물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성 관련 도서들도 시민단체 30명 이상이 서명해 유해 여부 확인을 요청했기 때문에 심의 대상에 포함된다.

이형우 한남대(행정학) 교수는 “간윤위는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과 그밖에’라는 조항을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 중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며 “이는 법률을 자의적,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영준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변호사는 “법조항의 문언적 한계를 넘어서는 법률 해석은 있을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검경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일부에선 4대 범죄 ‘등’이라고 돼 있는 표현을 ‘중에서’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며 “이 두 표현의 의미는 천지 차이이기 때문에 결국 ‘등’으로 돼 있는 조항을 근거로 그 밖의 다른 범죄를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것으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간윤위가 또 다른 심의 불가 이유로 내세우는 ‘언론 출판의 자유 보장’ 주장도 맹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유해 도서로 지정한 뒤에야 비로소 언론 출판의 자유 침해 여부가 성립되는 것이지, 유해성 심의 자체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당 도서가 청소년에 해악을 끼칠 여지가 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악의 정도를 판단해보고 규제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간윤위가 법률 해석에 있어 상급 기관인 진흥원 또는 소관 부처인 문체부, 유권해석을 관장하는 법제처에 문의하지 않고 민간 법무법인에 일임한 것도 문제시되고 있다. 민간 법무법인은 공적 결정 사항에 책임을 지지 않고 법인의 이익에 따라 법률을 해석하는 기관이므로 법률 해석의 일관성,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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