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으로 다시 태어난 ‘관리의 삼성’...앞으로 숙제는
삼성은 창업 초기부터 ‘인재 중시’를 주요 경영이념으로 정했을 만큼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18일 열린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도 국내외 석학들이 주목한 것은 삼성만의 독보적인 인재관리 제도였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전까지 삼성의 인력관리는 일반적인 고용 절차를 거친 뒤 교육훈련을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신경영 이후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면서 핵심인력 확보가 기업 생존과 직결한 문제가 됐다.
신경영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 지역 전문가 제도다. 1990년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앞으로 글로벌 경쟁 시대가 열릴 것”이라면서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말고 직원들이 원하는 국가에서 머물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파견기간 중 월급은 물론 교육비와 체류비까지 전액 회사가 부담하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도입 첫해 비서실에서 20명 남짓한 인원을 선발해 회장실에 결재를 올리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사 입장에서 큰 돈을 들여 키워놓은 인재가 삼성을 떠나면 손해가 막심할 거라는 우려에도 이 선대회장은 “어차피 삼성을 떠나도 어떤 방법으로든 국가에 기여할 사람들”이라며 처음 인원의 10배가 넘는 200여 명의 직원을 세계 각지로 내보냈다. 외환위기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수백 명의 인재가 파견됐다.
‘S급 핵심인재’란 개념도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처음 등장한다. S급 인재는 최고경영자보다 더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으면서 핵심 기술개발을 이끈다. 이 선대회장은 2002년 사장단 회의에서 “핵심 인력이란 어떤 산업을 글로벌 톱3 또는 톱5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사장들은 앞으로 업무의 반(半) 이상을 S급 인재 영입에만 집중하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급 제도·직급 체계 단순화가 잇따라 도입되며 신경영 선언 이후 30년 동안 삼성의 관리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했다.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 교수 역시 삼성의 성공 이유로 HR(인사관리)를 꼽았다. 그는 인적자원관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라이트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이 선대회장은 구성원을 경쟁우위 요소로 보고 관리했다”면서 “최고 인재에 걸맞은 대우를 한 것은 물론, 여성 등 저평가된 인력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내다본 경영자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구글·IBM 등 글로벌 대기업이 30년 전 이 선대회장의 인사 전략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경영 30주년을 맞아 그간 1등을 지켰던 삼성의 인재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 환경과 시대 변화에 발맞춰 인사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 내부에서는 조직의 덩치가 커지면서 그룹 계열사나 사업부(삼성전자) 단위로 임직원에 일률적인 보상을 하는 구조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맞닥뜨린 역(逆)피라미드 인력구조의 함정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과제로 꼽힌다. 이에 최근 삼성전자는 인사 제도 개선을 통해 목표 중심의 절대평가 비중을 늘리는 등 고과 평가 체계를 바꾸는 인재관리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김효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 신경영 선언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메시지”라며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문화와 관행을 되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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