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답답함 넘어...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황혜원 기자]
▲ 용산FM 사무실에서 진행된 <다시 보고 싶다, 이태원> 기획 회의 |
ⓒ 용산FM |
도대체 이태원이 어떻길래. 누군가에게 이태원은 미군기지가 위치한 위험한 지역이고, 유흥으로 가득한 향락적인 지역이다. 또한 팬데믹을 통과하며 강화된 성소수자 혐오부터 밀집 경험을 민폐로 여기는 감각까지 헤아리면, 지금 이태원에 덧씌워진 편견은 몹시 다양하다. 희생자들을 두고 "그러게, 거길 왜 갔냐" 같은 비난이 쏟아지는 것 역시 그런 편견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다만, 그렇게 안전한 이태원만을 그리는 건 반쪽짜리 해결에 불과하다. 다시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둘러싼 편견 또한 걷어내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그런 뜻에서 출발했다. 이태원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과연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집담회에서 그런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 "저에게 이태원은 마치 외국처럼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그렇듯 이태원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면, 참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지역에서 잘할 수 있는 일
이태원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것 같은 부분까지 샅샅이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은 지역에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잘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몇 가지 방향성을 잡고 기록 활동을 시작했다.
첫째, 정치와 행정 등 전문 영역에서의 논의 및 희생자 유가족 중심의 애도 바깥의 이야기를 발굴하자. 둘째, 이태원이라는 지역에 주목해 그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참사 경험을 조명하자. 셋째, 상권 회복 이상의 일상 회복과 안전 사회에 대한 고민을 지역 주민으로부터 도모하자.
이에 따라 지난 5월 기록단을 모집했으며, 이태원 답사와 활동 워크숍을 거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주관 단위인 마을 미디어 '용산 FM'은 지역 주민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 왔다. 이때, 지역 주민은 방송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제작 전반에 참여해 이야기의 주체로 거듭난다. 기록단 운영도 다르지 않았다. 질문 구성과 인터뷰이 섭외, 인터뷰 진행, 기사 작성 모두 기록단이 주도했다.
운영팀의 역할을 기록단 보조로 한정한 가운데, 기록 활동의 의미 역시 기록단 스스로 정립해 나갔다. 영상 촬영과 편집 정도만 운영팀이 기본적으로 담당했지만, 여건에 따라 기록단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다큐멘터리 기획에 나서기도 했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일만큼이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 모집을 홍보하는 포스터 |
ⓒ 용산FM |
기록단은 일곱 명으로 구성되었다. 특징적인 건, 대부분 동네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다는 것이다. 녹사평, 이태원, 해방촌 등지를 지나고 있었고, 단순 방문이 아닌 이미 그 근처에서 거주 혹은 노동하고 있었다.
주로 이태원에 관한 개인적인 인연이 계기로 작용했을 뿐, 관련 활동을 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종사하는 분야도 서로 달랐다. 사진 작가부터 다큐멘터리 감독까지. 그렇게 모인 마음들을 통해 참사에 관한 커다란 갈증이 곳곳에 있음을 새삼스레 엿본다. 따라서 기록단이 작성한 일곱 편의 기사도 애써 그 형식을 통일하기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인터뷰이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를 듣는 기록단의 존재감도 전해지길 바란다.
김혜영, 신정임, 노호태, 신솔아, 심나연, 홍다예, 윤보영. 일곱 명의 기록단이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다. 혜영씨는 이태원 그 떠들썩한 복판에 사는 보영씨의 마음을, 정임씨는 매년 가족 단위로 핼러윈을 즐기던 민희씨와 원기씨의 마음을, 호태 씨는 자주 가던 바(bar)를 운영하는 범조씨의 마음을, 솔아씨는 이태원 씬에서 음악을 트는 DJ의 마음을, 나연씨와 다예씨는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샤인씨와 이태원에 자주 놀러오던 승연씨의 마음을, 보영씨는 다문화 공동체를 찾아온 모하메드씨의 마음을 각각 들었다.
녹취록을 읽으며 금세 먹먹해졌지만 동시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마다 간직한 애정이 따뜻했으므로. 모쪼록 그 이야기를 잘 담고자 애썼다.
두 가지 감정
활동 말미에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하면서 두 가지 감정이 도드라졌다.
먼저, 살아남은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매번 붐비던 골목을 알고 있던 사람은 그 위험을 인지하고도 예방하지 않은 자신을 탓한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죽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축제를 즐겼던 사람은 그날 무심히 웃고 떠들던 자신을 탓한다. 현장을 목격한 뒤 겨우 자리를 떠나고 말았던 사람은 구조에 나서기 망설이던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 사람들. 여태 수많은 참사를 겪고도 다시 한 번 반복된 참사 앞에 선 사람들은 결코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그런 죄책감이 불편해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대신 그 해결 방법을 고민하며 방관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한편, 답답함도 여전하다. 그날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란 희생자들의 총합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 상실이 낳은 공포와 슬픔, 혼란, 분노 등을 나눌 만한 장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모든 게 조심스러워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그토록 복잡한 심경을 소화할 겨를 없이 구호를 앞세우는 사람도 있고, 이해 관계에 따라 타인의 말을 쉽게 재단하는 사람도 있다.
참사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상처는 한없이 곪는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차례로 발행될 기사들이 그 '죄책감'과 '답답함'을 넘기를 희망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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