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 '이건희 신경영' 더 절실해졌다(종합)

조인영 2023. 10. 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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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선대회장,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 글로벌 반열 이끌어
"끊임없는 위기 정신·선경지명으로 오늘날 삼성 일으켜"
미래 세대 어필할 '제2 신경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삼성전자

"2등 정신을 버려라. 세계 제일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불량은 암이다."

"이제는 질(質)경영이다."

양(量)에서 질(質)로 삼성의 대대적인 경영 혁신을 주문한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수백 명의 삼성 임직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그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특명을 내린다.

삼성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회초리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라에 이바지해야 할 기업으로서 어떠한 본분과 자세를 가져야하는지를 주문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30년이 지난 현재 뿐 아니라 미래 방향성을 찾는 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원한 위기 정신, 운명을 건 투자, 신속하고 두려움 없는 실험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리더십을 우리 시대에 맞게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국내외 석학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학회는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학계와 삼성 관계사 임직원 등 총 300여명이 자리했다.

글로벌 각지에서 모인 석학들은 삼성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전략 이론가'이자 '통합적 사상가'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의 철학을 짚었다.

2017년 세계 1위 '경영 사상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건희 경영학, 본질은 무엇인가' 기조연설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두드러졌던 그의 경영방식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이를 설명하기위해 25년 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스마트폰을 언급했다. 그는 "1999년 스마트폰 대수는 0개였으나 현재는 무려 55억대가 보급되고 있다"면서 사물이 다른 것으로 변화할 수 있는 세상을 전제로 하는 '경영'의 핵심은 이 같은 상상(Imagination)에 기인한다고 했다.

마틴 교수는 "이건희 회장은 과거에 묶여있지 않았다. 과거에만 얽매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스마트폰)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기술의 격차가 줄어들 때의 제품은 디자인이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전략가다운 행보"라고 덧붙였다.

'통합적 사상가'로서의 이건희 회장의 모습도 소개했다. 정통적인 경영 접근 방식은 정답 지향, 합의 추구, 상충하는 대안 중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나 훌륭한 경영자는 '혹은(OR)' 사고방식을 벗어나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 선대회장 역시 이런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마틴 교수는 강조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18일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이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본질을 추적하고자 했던 그의 자세는 비(非)경영적 측면에서도 두드러진 성과가 있었다.

앞서 이건희 선대회장의 유족들은 지난 2021년 미술품 2만3000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및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총 1조원을 기부하는 등 고인이 남긴 'KH 유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은 매일 2~3시간씩 전문가로부터 수업을 듣거나, 작품을 보러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기부한 문화예술작품이 2만3000여개라는 것은 근본부터 철두철미하게 파고 들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가. 목적이 무엇인가 묻는 근본적 질문이 삼성 신경영으로 발현되고 기업 문화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본질을 추적하고자 했던 그의 업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경영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통찰을 준다고 말했다.

삼성 뿐 아니라 국내외 시장에 대변혁을 가져온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오늘날의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 시점에 맞게 계승한 '신경영 체제'를 신속히 마련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대비할 수 있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삼성의 대변혁을 가져온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영원한 위기 정신, 운명을 건 투자, 신속하고 두려움 없는 실험, 실패는 학습의 일부 등 오늘날의 성공 전략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2등 정신을 버려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어록을 언급하며 '신경영 정신'을 현 시점에 맞게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일(수)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재구 명지대 교수, 김상근 연세대 교수교수,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 스콧 스턴 MIT 교수,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차문중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뒷줄 왼쪽부터) 김보경 연세대 교수, 이승윤 홍익대 교수, 부탄투안 베트남 풀브라이트대 교수, 김태환 카네기멜론대 교수,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김효선 중앙대 교수, 김광현 고려대 교수ⓒ삼성전자

구체적으로 ▲경쟁 우위는 지속되지 않는다 ▲변화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안정이 이상한 것이다 ▲속도가 경쟁 우위이다 ▲비허가형 조직은 빠르게 움직인다 ▲리더십은 발견 중심적이어야 한다 ▲변곡점이 발생했을 때 단호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 6가지 전략이 담긴 '신전략 플레이북'을 통해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안했다.

맥그래스 교수는 "경쟁우위가 장기화되는 시절은 더 이상 없다. 변화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삼성은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속/비허가형 운영 조직으로 회사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며 "좋은 실패에 대해서도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단력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30년 전과 비교해 기업 규모와 인력이 늘어난 만큼 직원들의 몰입도를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삼성과 같이 고속 성장한 기업들은 대규모 조직의 관리를 위해 표준화 등 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는 직원 몰입도 하락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마틴 명예교수는 삼성이 직원의 몰입도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직원들의 '행복의 3위 일체' 달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커뮤니티로부터의 가치 인정, 타인의 가치 인정, 스스로의 가치 인정 등 3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포시즌스 호텔의 성공은 짐을 챙겨주는 직원까지 내가 회사를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자부심에 기인했다"며 "삼성이 초일류 기업을 유지하려면 직원의 몰입 수준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미래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디지털 경영, 개성 경영, 콜라보 경영, 인권 경영에 보다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8일(수)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삼성전자

디지털 역량을 갖춘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장착하고, 1인 10색의 취향 시대에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대 간 차이를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신인권세대인 신세대가 중요시 여기는 인간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신경영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 교수는 "삼성의 신경영은 신세대 시각에서 강점으로 부각 가능한 DNA를 보유하고 있다"며 "미래 세대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2의 신경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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