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스타킹에 드레스…샘 스미스 19금 파격 무대 '묘한 해방감'

어환희 2023. 10. 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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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의 내한 공연 '글로리아'. 사진 AEG프레젠트.


5년 전 첫 내한 공연 때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감미로운 발라드를 불렀던 그가 180도 달라진 파격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핫핑크 드레스, 주름 장식이 달린 흰 블라우스, 화려한 귀걸이, 급기야 망사스타킹에 상의 탈의까지.
영국의 유명 팝스타 샘 스미스(31)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았다.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두 번째 내한 공연 ‘글로리아’(GLORIA)에서 그는 세상이 정해둔 틀과 경계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2019년 ‘논바이너리’ 선언…내한은 5년 만


2013년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샘 스미스는 히트곡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 ‘아임 낫 디 온리 원’(I'm Not the Only One) 등 따뜻한 느낌의 R&B 장르로 사랑받았다. 2014년 첫 정규 앨범 '인 더 론리 아워'(In the Lonely Hour)로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최고의 신인 등 본상 3개 부문을 차지하는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음악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됐는데, 2019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면서다. 배우 자밀라 자밀이 진행하는 인스타그램 쇼에 출연한 그는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며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논 바이너리(non-binery, 남녀의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제3의 성)’로 공표했다. ‘논바이너리’의 개념을 접한 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면서 “늘 내 몸과 마음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진다”고 털어놨다. 이후 샘 스미스의 음악 스타일은 큰 변화를 맞았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그간 가졌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만의 답을 풀어냈다. 공연은 1부 ‘러브’(LOVE), 2부 ‘뷰티’(BEAUTY), 3부 ‘섹스’(SEX), 세 파트로 구성됐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무대 위 조형물은 사람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도드라진 윤곽은 몸에 대한 그의 당당한 태도를 말하는 듯했다.

사람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무대 위 조형물. 사진 AEG프레젠트.


공연 초반인 1부엔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초창기 히트곡 위주로 선보였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인 ‘키싱 유’(Kissing you)로 시작한 2부부터 그가 노래하는 사랑과 관계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성인 인증을 받아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만큼 퍼포먼스와 의상의 수위도 확 올라갔다.

“이제부터가 클라이맥스”라고 밝힌 3부의 첫 곡 ‘글로리아’(GLORIA)에선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그 위에 왕관을 머리에 얹었다가, 이어진 마돈나의 ‘휴먼 네이처’(Human Nature)를 부르면서 모두 벗어던졌다.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의상, 수위 높은 19금 댄스 등 파격적인 무대를 연이어 선보였다.

이날 공연의 절정은 엔딩곡인 ‘언홀리’(Unholy)였다. ‘불경스러운’이라는 뜻의 이 노래는 한 남성의 불륜과 성매매를 고발하는 곡이다. 지난해 9월 독일 가수이자 트랜스젠더인 킴 페트라스와 함께 발표했다. 그는 이 곡으로 생애 처음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선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상을 받았는데, ‘논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의 첫 수상이란 기록을 그래미 역사에 남겼다.

샘 스미스는 빨간 뿔이 달린 모자와 창을 들고 ‘언홀리’를 열창했다. 우렁찬 떼창과 함께 그의 손짓과 몸짓마다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자세로 노래를 마친 그의 모습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 정체성 공개 뒤 마주한 각종 비난과 침체기를 정면 돌파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인 듯 했다. 샘 스미스 자신도 4집 정규 앨범을 발표한 뒤인 지난 2월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엔딩곡은 샘 스미스에게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안겨준 '언홀리'였다. 사진 AEG프레젠트.


안무·의상 등이 과거보다 강렬해진 것에 비해 변함 없었던 것은 그의 보컬이었다. 평소 라이브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목소리는 파격적인 무대가 마냥 원색적이고 가볍게 보이지 않도록 무게감을 잡아줬다. ‘다이아몬즈’(DIAMONDS), ‘투 굿 앳 굿바이즈’(Too Good At Goodbyes)와 같은 감성적인 노래에선 더욱 빛을 발했다. ‘댄싱 위드 어 스트레인저’(Dancing With A Stranger)와 같은 흥겨운 노래를 부를 때는 앉아 있던 1만여 관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 내내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관객에 감사함을 표했다. “나를 지지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손을 가슴에 얹고 감동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노래 중간 여러 차례 손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성 정체성을 당당히 밝힌 뒤 얻게 된 행복한 무대인 만큼 샘 스미스는 관객들 역시 세상의 경계와 편견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오늘 밤 여러분이 이 공연에서 가져가길 바라는 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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