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굴뚝서 드라이아이스 만든다…총성 없는 탄소 전쟁
지난 16일 전북 군산에 있는 SGC에너지(옛 군장에너지) 열병합 발전소. 거대한 발전소 굴뚝을 둘러싸고 아파트 18층 높이의 은빛 탑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전 3호기 보일러에선 흡수탑 공사가 막바지 진행 중이었다.
2008년 첫 가동한 이 발전 설비는 새롭게 변신 중이다. 왕경훈 SGC에너지 효율팀 부장은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된 연기가 드라이아이스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며 “국내 최대 규모의 탄소 포집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유연탄과 나무 조각 등을 태워 군산지역 산업단지에 산업용 증기와 전기를 공급하는 SGC에너지는 총 570억원을 투자해 발전소에 탄소 포집·활용(CCU) 설비를 짓고 있다. 다음 달 완공되면 하루 300t, 연간 10만t 규모의 이산화탄소가 포집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민간 발전사 중 첫 상업 가동이다.
SGC에너지는 한국전력과 계약을 맺고 탄소 포집 기술을 이전받았다. 보일러 옆에 세워진 흡수탑에서 굴뚝 연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모으면, 재생탑에서 증기로 가열해 회수하는 습식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배기가스 내 이산화탄소가 90% 이상 분리된다. 1만5000시간 연속 운전에 성공하며 국내에서 개발 중인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가운데 유일하게 상용화 수준에 도달했다.
모아진 탄소는 흡수와 재생 과정을 거쳐 순도 99.9% 액화탄산으로 재탄생한다. 드라이아이스 형태로 가공, 신선식품 보존용으로 전국 가정과 산업현장 곳곳에 배송될 예정이다. 아직 설비 가동 전인데도 이미 10년치 공급 계약이 끝났다. 탄소배출권을 통해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총성 없는 탄소 전쟁’이 시작됐다. 정부는 2050년까지 국내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탄소를 모아 저장(CCS)하고,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CCU)이 산업현장 곳곳에 도입 중이다.
아직은 탄소를 모아 땅에 묻는 방식이 대세다. 비교적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액체 및 고체 연료나 화장품·의약품·건설 소재로 활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도 하다. 글로벌 이산화탄소 이니셔티브(GCI)는 CCU 시장 규모가 2030년 8370억 달러(약 11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액화탄산을 만드는 기술은 CCU의 첫 단계로 꼽힌다. 어차피 굴뚝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배출될 탄소라면 이를 모아 한 번이라도 더 필요한 곳에 쓰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기술이 마침내 상용화로 걸음마를 뗀 셈이다.
정작 이산화탄소가 필요한 곳에서는 탄산이 없어 난리다. 탄산은 조선(용접)·반도체(세정용 특수가스)·유통(드라이아이스)·농업(성장 촉진제) 등 산업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공급량이 널뛰며 가격이 급등했다. SGC에너지는 액화탄산 기술을 활용해 발전소 굴뚝에서 만든 드라이아이스를 시작으로 식용 탄산, 반도체 세정용 탄산 등으로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권이균 한국CCUS추진단 단장(공주대 교수)은 “탄소를 모아 땅에 묻는 기술만큼이나 탄소를 우리 삶에 유용한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절실한 상황”이라며 “액화탄산을 넘어 앞으로 여러 탄소 활용 기술이 현장에 도입될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산=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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