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뵙겠다고 쓴 이순신의 절절한 편지, 아십니까

김성호 2023. 10. 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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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00]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성호 기자]

"회사에서 상사가 불의한 일을 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구하던 시절 얘기다. 어느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상사의 불의가 윗선에서 시킨 일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한국의 수많은 기업 가운데 불법을 저질렀던 곳이 한둘이 아닌데 불의를 고발하겠다는 지원자를 탐탁지 않아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장 상식적이라 생각하는 답을 내어놓았다.

"나라와 사회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익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사에게 넌지시 불의한 일을 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회사의 처리절차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이렇게 답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사회는 대체로 상식대로 돌아가며 장기적으로는 의로운 일이 승리하리란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돌아보면 그 시절 가졌던 믿음이 적잖이 흐릿해진 것만 같다. 조직적으로 법을 어기는 기업집단 뉴스가 수시로 들려오고, 공익제보자의 비참한 말로 같은 이야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탓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거쳐 온 여러 일터에서도 나는 수시로 부조리를 마주했었다. 몇 년 전까지 나는 한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내가 속했던 사회부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독자와 시민에게 이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하지만 보도는 수시로 벽과 마주쳤다. 때로는 광고수입에 지장을 초래해서, 때로는 소송위협과 맞닥뜨려서, 또 때로는 사내 어느 누구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이유로 중단되고 멈춰서기 일쑤였다.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공영방송이나 통신사가 아니라 해도, 공공의 그릇이라 불리는 언론이 시민과 독자를 배신해서야 되겠느냐는 목소리는 쉽게 짓밟혔다. 그보다는 사주와 광고주, 조직 내의 윗사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승진이며 인사에 영향을 받을까 모두가 굽히기 일쑤였으니 독자와 시민을 향한 보도를 외치는 이는 고지식하고 어리석다는 취급을 받고는 하였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그래도 충실히 일해 왔다 자부하지만 물러서 숨죽인 순간 또한 적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아프게 고백한다. 돌아보면 나는 그 순간들이 부끄럽다.

부끄러움 앞에서... 인간 이순신을 만나다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책 표지
ⓒ 가디언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는 이순신이란 인간의 이야기다. 광화문광장 복판에 선 영웅으로서만이 아니라, 수시로 고민하고 흔들리면서도 끝끝내 옳은 길로 나아갔던 인간의 이야기로 이 책은 내게 다가왔다. 전화에 휩싸인 조국의 바다에서 불패의 신화를 써나간 위풍당당한 장군이 되기까지 그가 겪어내야 했던 수많은 위기들이 있다. 상급자인 병조정랑 서익이 인사담당자로 있던 이순신에게 저와 관계가 있는 이를 참군에 천거하도록 강요한 순간이 있었다.

서익은 거부하는 이순신을 뜰아래 세워 힐책하기까지 하지만 이순신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발포 만호로 부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객사 앞뜰에 선 오동나무를 베어가려 하자 이순신은 "나라의 물건이라 사사로운 용도로 쓸 수 없다"고 심부름꾼 앞을 막아섰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상관을 우습게 안다'는 평판이 퍼져나가고, 그를 오해하는 이들을 수시로 마주해야 했다. 제 요구가 좌절됐던 서익은 훗날 이순신을 모함해 그를 파직시키기까지 한다. 순순히 따랐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적이 곳곳에 만들어져 저의 평안을 깨뜨리는 일이 거듭됐다. 아마도 현실 가운데 이순신과 같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 '꽉 막힌 사람', '저 혼자 잘난 줄 아는 이'라는 평판이 따랐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이라고 그를 몰랐을까. 조선 바다에서 왜군의 수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읽어냈던 장군이다. 소인배들의 앞을 가로막은 대가로 미움과 모함을 받을 것을 왜 몰랐겠는가. 그러나 이순신은 제게 닥칠 피해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것이 옳은 일이냐, 나라에 이로운 일인가를 따져 행했던 일이다. 책은 이순신의 이 같은 자세를 승지 최유해가 남긴 '행장'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략) 일찍이 하는 말이 "대장부 세상에 나와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말아도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라." - 책 13쪽

나는 이 대목에서 생을 대하는 이순신의 자세를 읽는다. 그로부터 그 자세를 이루는 그의 진중한 태도를 발견한다. 이순신은 임진년 첫날부터 사망하는 무술년 11월에 이르기까지 꼬박꼬박 글을 쓴다. 책이 말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일상의 기록은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을 정돈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감정을 생각으로 이끌고, 생각을 다시 붓 끝에 실어서 적어내린 정성스런 글들이 이순신이란 인간을 더욱 깊은 인격체로 만들어간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쓰이면 힘을 다해 충성하고 쓰이지 못하면 그뿐이라는 이순신의 자세는, 훗날 오직 최선을 다할 뿐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는 지극함으로 이어진다. 글로 다져진 귀한 인격을 삶 가운데 펼쳐낸 이순신이 어떠한 인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며칠의 휴가를 얻기까지

이쯤에서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직하던 이순신이 도제찰사 이원익에게 쓴 휴가청원서가 바로 그것이다. 끔찍하게 여겼던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1년여 전, 장군은 어머님의 쇠약함을 알고 만나 뵙기 위한 며칠의 휴가를 청원한다. '살피건대 세상일이란 부득이한 경우가 있고 정에는 더할 수 없이 간절한 대목이 있는데, 이러한 정으로써 이러한 경우를 만나면 차라리 나라를 위한 의리엔 죄가 되면서도 할 수 없이 어버이를 위하는 사정으로 끌리는 수도 있는 듯합니다'로 시작하는 긴 문장이다.

이순신이 남긴 많은 글이 대개 간단하고 명료한데 반해, 이 청원서의 문장들은 드물게 길고 유려하며 많은 장식이 엿보인다. 나는 이것이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마음과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를 읽은 이원익은 '지극한 정이 나옴이야 피차가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이 글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러나 공적인 일에 연관된 일이니 감히 제가 그리 하시라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을 보내온다. 그리고는 휴가 대신 두 달의 출장을 준비하여 이순신과 모친의 상봉을 돕는다.

삼도수군통제사의 지위라면 단 며칠의 휴가쯤은 충분히 만들어 다녀올 수 있었을 테다. 때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의 휴전기로, 진중을 비우는 게 불가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토록 절절한 글을 지어 저의 효를 다하고자 한다. 공 앞에 사를 세우지 않겠다는 원칙 앞에 저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부득이함과 간절함을 이야기하는 첫 문장이 특별하고 절절하게 읽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는 역사의 표면에 가려진 이면, 즉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옳은 길로 가면 부러지고 부서져서 끝끝내 목표에 이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누구보다 험난한 상황 가운데서 정도로 지극한 지점에 이른 사내가 먼저 살아갔던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 또 전 국민이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고, 광화문 복판에서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희망이라 믿는다. 그로부터 나는 결심한다. 남은 생 가운데 부끄러움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운이 좋아 쓰임을 얻는다면 장군이 그러했듯 죽을힘을 다해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부산여해재단이 주최한 '제7회 이순신 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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